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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WHEN BREATH BECOMES air

책소개/에세이

by gyaree 2017. 12. 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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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WHEN BREATH BECOMES air


숨결이 바람 될 때 

이 책을 읽으면서 딱 두 가지 포인트에 감정이입이 된다. 첫 번째는 항암 치료로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폴과 루시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다. 주인공이 심각한 폐암 선고를 받기 전 그의 아내 루시와의 부부 관계는 멀어져 있던 상태였다. 가족 중 한 명이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 때 남은 가족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사이가 더 돈독해지거나 뿔뿔이 흩어지거나. 폴과 루시는 서로를 더 사랑하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아이를 갖겠다는 결정은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폴이 살 날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정확히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은 머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과연 내가 폴의 입장이라면 아니 반대로 아내 루시의 입장이라면 아이를 가질 용기가 생길까? 의문이 든다. 세상에 엄마나 아빠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은 많다. 하지만 직접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 어느 한쪽만 없더라도 아이와 살아가는 세상이 녹녹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엄마 아빠가 다 있어도 살아가기 힘든 것인데.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했다."라는 폴과 루시의 선택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죽고 이 세상에 없는 상황에서 아내와 아이 둘만 살아간다는 상상을 하면 왠지 불쌍할 것만 같은 느낌만 든다. 남겨진 아내와 아이가 행복하게 잘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50대 50의 확률. 나는 솔직히 남겨진 아내 혼자 힘든 짐을 지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였다면 주인공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폴에겐 이 세상에 자신의 아이 하나는 남겨 두고 가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자 아내 루시에게도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가 신경외가 의사로 살아온 삶 자체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을 찾아 문학을 공부했고 철학을 공부한 그에게 마지막 종착역은 신경외과 의사의 삶이었다.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들을 살리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상황도 수없이 겪으며 끊임없이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한 모습에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성공한 의사가 아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진짜 의사라는 느낌. 

아빠 얼굴 기억조차 심어주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심정. 딸 케이디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는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장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딸 케이디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나이까지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작은 바람. 이 한 구절을 읽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거대한 소망도 꿈도 아닌 그저 딸이 아빠의 얼굴이라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이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아른거리며 가슴이 뛴다. 소설이 아닌 진짜 말도 못 하는 어린 딸을 두고 떠나는 아빠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두 번째는 의사에서 환자로 주체에서 객체로 주어에서 직접 목적어로 돌아온 폴의 삶이다. 나도 어린 시절 병원 생활을 오래 해 의사들이 환자를 대한 태도에 많은 불만을 겪은 보호자들이 의사와 드잡이들 하는 일을 많이 봐왔다. 아픈 그들의 자식들을 의사들은 병을 고친다는 미명하에 함부로 대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부모들은 꾹 참거나 의사들이 하는 대로 보고만 있어야 했다. 결국엔 참지 못하고 폭발해 병원 복도에서 싸움도 자주 벌어지곤 했다. 환자가 얼마나 심한 고통을 말하든 그들은 의사로서 병이 낫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식. 그 냉정함에 환자의 보호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폴도 의사였을 때 환자들의 고통이 정말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의사의 경험과 경력으로써 그 정도의 병이면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될 거고 그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 죽을병에 걸린 환자의 신분으로서 의사였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을 경험한다. 자신이 의사인 만큼 왜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건지 알면서도 극심한 고통은 2년 차 레지던트의 이상한 처방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병을 고치는 신분이 아닌 환자의 신분으로 자신이 해왔던 그들의 일상을 말해주는 부분에 공감하게 된다.

세상에 남겨진 아내와 딸에게 책 한 권 남길 수 있는 삶을 살았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른여섯 짧은 인생이었지만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숨결이 바람 될 때] 이 한 권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 급해지고 짧아지는 그의 거친 숨결은 바람이었다. 



페이지 48

책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내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책에 흥미를 불어넣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 시스템에서는. 나도 공부보다는 책에 재미를 붙이는 교육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주인공의 엄마가 아들에게 한 것처럼. 책을 가까이하는 삶은 책과 담벼락을 쌓은 삶보다는 적어도 자신의 인생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확률은 더 높다. 책과는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 해서 가난하고 풍요롭지 못한 삶을 사는 법은 없다. 하지만 책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닌가 한다. 남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책과 친해지지 못한 나의 과거가 미래의 나의 모습을 더 좋은 방향으로 끌어주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또 그 세계를 자신의 삶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페이지 64

하지만 이 길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을 찾아 그가 선택한 것은 의학이었다.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더는 책에서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까.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그리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도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주인공. 결국엔 의사가 아니라 암 말기 환자의 신분으로서 죽음을 목전에 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삶의 심오했던 문제는 그 자신이 죽음과 가까워지며 답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페이지 93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나는 전공으로 신경외과를 선택할 생각이었다.

개인적 삶의 목적을 실현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명이다. 자신의 주장이 확실하다는 증거를 내세워 증명을 하는 법의 논리에서 말하는 소명과는 천지 차이다. 우리나라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교육 과정을 끝내고 직업을 선택하는 갈림길에 섰을 때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명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걸 이루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솔직히 20년 넘는 직장 생활에 아직도 내 직업은 소명이라고는 털끝만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밥 먹고 살기 급급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동료들이 편안한 생활을 위해 방사선과나 피부과를 선택했을 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신경외과를 선택한다. 미국 사회에서도 외과는 학부생들이 꺼리는 의학의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얼마 전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힘들어서 학생들이 외과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 이국종 교수와 주인공의 말이 중첩되는 것은 '소명'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것 같다. 외과의를 직업으로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소방 헬기 사용 비용을 자신의 빚으로 떠안으면서도 이국종 교수의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직업으로는 의사지만 그 안에는 강렬한 소명의식이 보인다. 단순히 직업이라는 인식 하나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모든 교육을 끝내고 첫 직업을 선택하는 시점에서 소명의식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소명의식 없이는 힘들지만 진정한 소명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생기는 듯하다.    



페이지 94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침대 곁에서 밤을 새우거나 하루종일 병원에 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아시겠죠?

현실에선 말 한마디 따듯하게 해주는 의사를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와 같다. 그들이 볼 때 환자가 사랑 때문에 죽고 못 사는 연인 사이는 아니니까. 환자의 신분으로 병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의사의 숙련된 기술보다 말 한마디 친근하게 해주는 것이 심적으로 큰 위로가 된다. 의학적인 치료를 넘어서 인간적인 측면에서 환자를 대하는 의사를 만나게 되면 왠지 더 안심이 되고 병이 빨리 나을 것 같은 기분. 고등학교 시절 나의 배를 가르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 중 한 명이 그런 사람이었다. 불치병은 아니었지만, 당시엔 심각한 상태여서 1년을 병원에서 살았으니 나름대로 우리 기준에서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나를 보면 웃는 얼굴로 따듯하게 대하는 의사 선생의 말 한마디는 내게 많은 힘을 주었다. 그렇다. 가족 중 한 명이 큰 병이 나면 그 집은 파산되거나 똘똘 뭉치거나 하는 것 같다. 가족이 붕괴되지 않게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라는 의사의 말. 환자를 하나의 실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인 측면으로 대하는 선배 의사의 자세가 주인공을 신경외과 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중요한 요인이다. 지금도 대학 병원에 가면 환자와 대화하기 꺼리는 의사를 자주 만나게 된다. 뭐 시간이 없어서 일수도 있고, 밤샘 근무에 지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는 전문가의 따듯한 한마디가 마음의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의사들은 알면서도 묵과하는 느낌을 받는다.


 

페이지 95페이지 102

페이지 120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수반하는 질병 판정을 받는다면. 과연 그 병에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질까. 아니면 듣지 않는 것을 원할까? 사람에 따라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얘기해달라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절망에 휩싸여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다. 악성 뇌암에 걸린 환자에게 주인공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해시키며 치료를 진행한다.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수술에 수반되는 사항들을 알려주며 차곡차곡 하나씩 풀어나간다. 바윗덩이처럼 커다란 비극을 잘게 잘게 쪼개어 환자가 소화할 수 있게. 이런 배려가 정신이든 육체든 조금이라도 그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다짐을 하며. 


    

페이지 174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항암 치료로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폴과 루시는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다.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마도 태어난 그들의 아이로 인해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 아닐는지. 


페이지 213



페이지 234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장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눈물 나게 하는 마지막 그의 말. 아빠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유언이 아닐까. 먼 훗날 케이디가 자라서 아빠가 이런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숨결이 바람 될 때] 이 한 권의 책은 그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이런 보물을 남겨준 폴의 인생은 짧았지만 많은 사람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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