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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는 삶 [중고서점에서 배우다]

일상

by gyaree 2017. 10. 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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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는 삶

채우는 삶이 아닌 비우는 삶의 시작.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곳 / 중고서점

어느 중고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앞에서 서성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둘의 이야기에 문득 인생을 돌아보는 깨달음을 경험했다. 


친구 관계인 듯한 두 여자의 대화는 이랬다.

여자 A가 말한다.

"나는 내가 산 책을 아까워서 팔지 못하겠어."

여자 B도 동조한다는 듯 대답한다.

"나도 그래."

"내 책을 판다는 게 너무 아까워."

다시 여자 A

"나에겐 다 소중한 책들인데 어떻게 팔아치울 수 있어!"


아무래도 책이란 걸 사보면 사봤지 팔아본 적이 없는 젊은 처자들이 중고서점의 풍경이 신기했던가 보다. 그리 긴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아이에서 청년을 거쳐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거느려야 할 식구가 한둘씩 늘어난 삶을 살아보니 채워도 채워도 모자라게 느껴지는 것이 삶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직선 두 개가 서로 의지하며 지탱하는 것이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다. 사람은 나의 반쪽을 찾아 모자란 부분을 채워간다 할 수 있다.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하면 그래도 인생에서 하나는 채웠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모자란 것들이 더욱더 많이 늘어난다. 이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엄마 아빠는 밤낮없이 일하는 집이 많다. 남들에 뒤처지지 않게 차곡차곡 쌓아간다. 무엇이 됐건. 꽉꽉 채워도 모자랄 판에 어느 시점이 오면 비워내야만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간단한 예로 아이가 생기기 전엔 책장의 모든 공간은 나의 책을 채우는 장소로 활용된다. 아이가 생기고 긁을 읽을 정도로 자라기 시작하면 책장에 꽂혀있던 나의 책들은 한 권 두 권 자리를 빼앗겨 나간다. 한 곳을 비우기 시작해 두 곳, 세 곳, 네 곳.... 점점 사라지다가 어느샌가 책장 전부가 아이들의 책으로 꽉 차게 된다. 그동안 나의 소중했던 책들은 갈 길을 잃어 볕도 들지 않는 곰팡이 핀 창고에 처박히던가 라면박스로 직행한다.


"읽지도 않는 책들 얻다 치워!"라는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자리도 없어 죽겠는데 이 책들 어떻게 좀 해!"     

아내의 이런 말은 버리란 얘기가 아니라 깨끗하게 정리하라는 뜻인 걸 알지만 누군가에게 처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아이들이 있는 집의 책장엔 대부분 아이의 책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위인전을 시작으로 동화, WHY 시리즈, 마법 천자문 등등 온천지가 아이들 책이다. 뭐 돈이 많아서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으면 모를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뻔한 사실. 나는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가서 깨끗한 종이박스를 뒤적거리고 있다. 나의 소중한 책을 그나마 깨끗한 종이박스에 담아주려는 마지막 배려의 차원에서 말이다.

어느덧 아이들이 자라면서 책장도 한둘씩 늘어나고 더는 책을 꽂아 둘 공간은 없어진다. 순서대로 진열한 책장은 이미 넘쳐나는 책들로 뒤죽박죽 되기도 하고, 작은 틈새라도 꽂히는 책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는 책장을 벗어나 바닥에도 책이 쌓이는 시기는 금세 다가온다. 그런데 위에서 얘기했던 여자 A의 말처럼 아까워서 책을 처분하거나 팔지 못하고 그대로 쌓이기만 한다. 모두 다 우리의 돈을 들여 산 책들이다. 아깝다는 생각이 머리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까. 나도 내 책을 버리지도 처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결혼해서 모든 걸 채워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산처럼 쌓여만 가는 책. 이제는 거실 한편을 차지해 움직일 때마다 발에 걸리기 일쑤다. 어디 쌓이는 게 책뿐일까.



비우는 삶

이제는 용기를 내야만 하는 시기가 왔다. 채우는 삶이 아닌 비우는 삶의 시작으로.

곰팡이 피는 창고보다는 차라리 중고서점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여유로운 주말 시간을 이용해 종이박스에 담아 놓은 책을 꺼내 백에 담았다. 토요일 오후 오른쪽 어깨에 책이 한가득 담긴 백을 메고 중고서점을 찾는다. 어깨 휘어지게 무겁게 들고 간 열 권의 책을 판매한 금액으로 다시 내 손에 들어오는 책은 두 권 정도다. 내 백의 물리적 무게는 확연히 줄었지만, 새로운 책을 가슴속에 새길 기대감의 무게는 몇 배는 더 크게 느껴진다. 홀가분하지만 왠지 묵직한 느낌이랄까. 처음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차츰차츰 가져간 책을 모두 팔았을 때의 느낌들이 서서히 익숙해진다. 낡고 오래된 것을 자꾸자꾸 비워내는 데 오히려 내 안에 기쁜 마음은 더 충만하다. 그렇게 돈이 많았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정작 그의 집엔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만 놓아두었다는 일화를 그의 자서전에서 보았다. 넘치고 넘치게 욕심을 채우는 삶이 아닌 가볍게 비워내는 삶을 살았던 잡스의 일화는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책장에 책이 가득 넘치듯이 비우지 않고 채워만 가는 삶에는 새로운 것이 스며들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소중한 보물이고 내 돈을 들여 장만한 물건이지만 때로는 비워내야 하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헌 것을 보내고 새것을 드리는 기대감과 기쁨은 비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의 두 젊은 아가씨의 대화로 돌아와서 나는 끝에 한 문장을 더하고 싶다.

"나는 내가 산 책을 아까워서 팔지 못하겠어."

"나도 그래."

"내 책을 판다는 게 너무 아까워."

"나에겐 다 소중한 책들인데 어떻게 팔아치울 수 있어!" 

"나에겐 다 소중한 책들인데.... 조금 용기를 내어 떠나보내면 새로운 기쁨이 생길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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