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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쿠니야 서점(紀伊国屋)

일본

by gyaree 2017. 6. 3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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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 길고 지루한 이야기는 싫고, 간단하고 짧게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도 그나마 많이 읽지 않는 시대. 스마트하고 하이 스피드를 요구하는 세상. 옛날 옛적 이야기를 꺼내면 고리타분하니까 듣고 싶지도 않고 아예 하지 말라고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니고 고작 24년 전의 추억 하나 꺼내려고 한다.


최근 일본의 대형 서점으로 유명했던 신주쿠의 '키노쿠니야' 서점(紀伊国屋)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보게 되어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해외여행은 쉽게 갈 수 있는 시대라 '키노쿠니야’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일본을 한 번쯤은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한다.


일본의 대표 번화가 중 하나인 신주쿠 역 남쪽 출구로 나오면 멀지 않은 곳에 이 서점이 있다. 신주쿠는 한국의 명동으로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 7층 규모의 건물 전부를 분야별로 나누어진 책이 진열된 신주쿠를 대표하는 서점이다.


1993년 이 서점을 처음 찾아갔을 때의 느낌은 우리나라의 종로서적이 딱 떠올랐다. 규모도 그렇고 건물 모양새도 그렇고 책이 진열된 진열장과 층으로 구분된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아! 종로서적이네” 


첫인상은 이랬다.


종로서적이 '키노쿠니야’를 롤모델 삼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흡사하다는 기억을 지울 수가 없었다. 종로서적도 그렇지만 당시 '키노쿠니야’도 책을 파는 또는 지식을 파는 상점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책 한 권 마음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고 오로지 넘쳐나는 책으로 가득 찬 책장에 압도당할 뿐. 그런 모습을 고스란히 베껴 한국의 서점들도 그런 모양새를 갖추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미 일본 사람들이 우리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리는 뉴스에서 들었지만, 직접 일본에서 내가 가장 쉽게 일본과 한국의 독서량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였다. 1993년이면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 기기는 더더욱 없었던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어른이건 젊은 이건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신기했다. 뭐 만화책도 많이 읽지만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조그만 사이즈의 단행본 책을 보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그냥 ‘많다’라는 단어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심심하고 따분하고 남는 시간에 그들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내가 알던 한국의 지하철에서는 주로 신문 보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 일본의 지하철에서는 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의 독서는 지하철, 버스뿐만 아니라 동네 조그마한 식당으로까지 이어진다. 동네 허름한 식당을 가도 테이블 어딘가엔 항상 책이 놓여 있다. 물론 만화책이 대부분 차지하지만, 밥 먹으면서 그 짧은 시간에 책을 손에 쥔다. 24시 편의점만 가도 쉽게 만화책과 도서를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사람들 가까이에 책이 놓여 있으니 독서가 실생활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하다. 


무엇보다도 서점을 바라보는 그들의 조금은 다른 시각을 말하고 싶다. 당시 ‘키노쿠니야’ 서점이 있었던 곳은 그야말로 일본의 백화점과 화려한 유명 쇼핑센터가 가득한 중심가에 있었다는 사실. 명동 한복판에 교보나 종로서적이 있는 것과 같다. 대형 서점이 유명 브랜드와 쇼핑 천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독서’라는 단어가 명품으로 치장하고, 좋은 물건을 쇼핑하는 즐거움에 못지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공이 방송 그래픽이다 보니 한 달에 두세 번은 ‘키노쿠니야’ 서점 3층을 들렀다. 다양한 컴퓨터 관련 서적과 디자인 그래픽 서적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여러 번. 당시 한국에서는 구할 수도 없었던 매킨토시 전문 잡지도 여러 권 나와 있어 나에겐 '키노쿠니야’를 들리는 재미가 충분했다. 일본 유학 초기라서 어려운 소설까지는 못 읽어도 컴퓨터 관련 전문 잡지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즐거움을 제공했던 곳이 그곳이다. 외국인인 나에게 그들의 서점은 한국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좋은 책을 살 수 있는 곳이었고, 또 한 편으론 종각에 있는 종로서적을 떠오르게 하는 익숙한 장소였다. 


인터넷과 스마트기기가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 인구는 줄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에서 이렇게 유명했던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은 약간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인은 ‘다독’이라는 관념이 깨지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그들도 스마트폰의 발달에 서점을 멀리하는 인구가 늘어나 우리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키노쿠니야’가 시대에 따라가지 못해 문 닫았듯이 종로서적 또한 시대에 떠밀려 문을 닫았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다시 열기는 했지만)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의 서점도 서서히 변화하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의 서점이 순전히 책을 파는 공간, 지식을 파는 1차원 적인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교보나 여타 다른 서점을 가면 조금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 것 같다. 그냥 편하게 앉아서 책 한 권 보면서 쉴 수 있는 곳, 커피 한 잔을 하거나, 아기자기한 이쁜 물건을 사거나 등등…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서점 = 책’ 이 아닌, '서점 =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느낌. 

스마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서점의 고육지책 일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방향으로 변모해 가는 분위기다. 굳이 책만 보러 가는 곳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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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서점에 놀러 간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 놀러 간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비록 책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은 아니지만, 문화가 바뀐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간다면 다시 독서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이 변신하듯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신비롭고 즐겁다. 앞으로 다른 서점도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책의 판매량도 올라가지 않을까? 책 읽는 문화가 아닌, 서점을 즐기는 문화로. 정말 서점이 즐겁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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