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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은유]

책소개/에세이

by gyaree 2018. 1. 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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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은유]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이 책을 읽으며 노트에 적는 글이 하나하나 늘어난다. 다이어리에 베껴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하는 마음을 건드리는 말들이 쭉쭉 이어진다.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소개하고 그 글에 대한 은유 작가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잘 버무려져 있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누군가는 글쓰기가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하얀 공책과 볼펜을 받았을 때, 그냥 망막한 심정이 든다. 무엇을 적어야 할까, 어떻게 써야 할까, 글감은 어디서 구하는 건가 등등... 노트 한 페이지가 아니라 한 줄 채우기도 버겁다. 글은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글쓰기 강좌에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글을 쓰며 가장 좋은 것은 나 자신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자존감이 떨어져 조금은 우울한 기분이 들 때, 잘 쓰는 글은 아니더라도 다이어리 한 페이지 채워 보니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전해진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도 아니건만 마치 지금 열여섯 사춘기로 돌아간 나를 발견하는 느낌이 든다. 조금 더 글을 써 보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주 조금은 저 아래에서 움틀 거리고 있다.     


행복한 책읽기 - 김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행복한 책읽기]에서 만난 김현의 고백은 부끄럽고 초라해도 자기 색깔을 만들어 가도록 등두드려 주었다.

나만의 색깔을 가진 글을 쓴다는 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다 바라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내가 가진 색깔이 있을까? 이런 의문이 생긴다. 한 번도 내가 가진 색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에겐 없는 것이 내게는 있을 리도 없고 오히려 내겐 없는 것이 그들에겐 많았던 기억뿐이다. 그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그것이 나의 색깔이 될까. 40년 넘게 살았지만 입대까지 나의 색깔을 만들지 못했다. 이젠 김현 작가의 말대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나의 색깔을 만들어 보자.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디즈니, 픽사가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색깔들의 향연처럼 화려함만 있는 것이 아닌 화려함과 조화로움에 사람들이 감동하듯이. 나만의 색깔을 찾아서. 




 진솔한 글쓰기

"솔직할 것, 정확할 것, 숨김없이 투명하게 보여 줄 것, 모호하게 흐려선 안 된다" 같은 타협 없는 문장을 떠올리며 한 번 더 글과 씨름했다.

글을 쓸 때 꼭 이것만 다짐하리라. '솔직, 정확, 숨김없이 투명, 모호하게 흐리지 않기.'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에는 빠져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짓 없이 솔직한 글, 정확한 사실에 기반을 둔 글,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보여 주기, 뭉뚱그려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기. 이 네 가지만 잊지 말고 기억하자. 이런 기준도 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니 창피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주관 없이 살다가

살다 보니 때를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 엉망이 되어 버린 것, 말이 되지 못하는 것이 쌓여 갔다. 자주 숨이 찼다. 참을 인 자로 가슴이 가득 찰수록 입이 꾹 다물어졌다. 토사물 같은 말을 쏟아 내긴 싫었던 것 같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더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린다면 삶의 풍경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미련이 내게 준 선물이다.

줏대도 없이 뚜렷한 가치관도 없이 살았다. 그러다 보니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 엉망이 되어 버린 것, 말이 되지 못하는 것이 빚이 차곡차곡 쌓이듯이 자아를 채워갔다. 그냥 사는 게 인생이려니 편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결국에 남는 것은 난지도 쓰레기장에 쓰레기 산처럼 빚만 남았다. 글을 쓰며 삶의 풍경을 하나씩이라도 바꿔나가 내 몸에 쌓인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소멸될 게 분명했다." 생존의 글쓰기. 글이 나를 쥐었다.

사노라면 나의 존재감이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보다 못한 것에 화가 날 때가 있다. 회사에서도 중요한 일로 더는 내 앞에 놓은 수화기의 벨이 울리지 않는 날이 온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사회인이 되고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며 일했던 초창기 신입사원 시절에 나에 대한 존재감은 확실했다. 나를 부르는 상사의 목소리가 거칠게 나와도 그냥 좋았다. 내 이름을 부른다는 자체에 존재감을 느꼈으므로. 사회생활도 올라갈 계단에 끝까지 오르니 그때부터는 존재감이 서서히 줄어든다. 굳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회사 일은 잘 돌아간다. 회사에서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됐다. 기계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반복되며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여줄 기회가 없다. 자꾸자꾸 내가 소멸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잘 쓰는 글은 아니지만 조금씩 나를 드러내 보이고 허접한 글이라도 꾸준히 쓰다 보니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직은 생존 글쓰기까지는 아니어도 소멸하여 사라지는 나를 막아주는 글쓰기에 많은 보람을 느낀다.





간절하게 원하면 지금 움직이세요. - 노희경

"간절하게 원하면 지금 움직이세요. 노희경입니다. 2005. 6"

살아가면서 간절하게 원했던 적이 없다. 삶이 그렇게 풍족하지도 않았는데 뭐든 간절한 게 없었다. 부모가 부자여서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되고 싶어서 피나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삶에서 간절함이 빠지니 그저 그런 인생이 된 것 같다. 2, 30대에 삶의 간절함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후회를 해봐야 소용없다. 간절함을 느낀다면 지금이라도 움직이라는 말. 이제는 흘려들을 나이는 아니다. 지금은 글쓰기에 도전한다. 인생 2막을 위해서 간절하게 한 걸음 나아간다.




 시는 그것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을 받아 내는 그릇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 이성복

글쓰기가 자기를 겉꾸미고 남의 삶을 끌어다가 왜곡하고 자기 편의대로 가공하는 수단이 되는 게 어쩐지 가슴 아프다. 약한 것, 모자란 것, 초라한 것을 가리고 누르는 수단이 되는 게 너무도 쓸쓸하다. 무시나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옹호의 글쓰기는 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일까.

정말 글을 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일깨우는 문장이다. 남의 삶을 끌어다가 왜곡하고 자기 편의대로 가공해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마치 진실인 양 덮어씌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글감이 부족해 타인의 삶에 해를 끼치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내 안에 파고들지 않은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 황현산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글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심오한 뜻을 생각하며 쓰지 않았다.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라고 말한 저자의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는 정말 진지하다는 느낌을 준다. 글이 삶을 초과한다는 말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글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은 얄팍하게 아는 지식을 뽐내기 위해 편협한 시각으로 쓰고 싶을 때, 다시 한번 이 말을 되새겨 보면 좋겠다.




적절한 장소에 찍힌 마침표만큼 심장을 강하게 꿰뚫는 무기는 없다. - 이사크 바벨

그런데 읽는 사람 입장이 되면, 끝나지 않는 글이 고역이다. 중언부언 반복되고 추상적이고 장황하고 어수선한 글은 매력 없다. 빤한 얘기로 채워진 글은 지루하다. 정보만 많은 글은 눈이 뻑뻑해진다. 그걸 알기 전까지 연애 초보처럼 굴었다. 이젠 점검한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주례사 같은 글을 쓰고 있지는 않는지. 적절한 자리에 마침표가 딱 찍힌 글인지.

끝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낙화 같은 글을 쓰는 연애 고수가 되고 싶어서, 자주 되뇐다. 독자는 연인이다.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말자.

내 글도 언제쯤이면 적절한 자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점 하나 찍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똑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짜증이 난다. 그런데 내 글이 그렇다는 걸 잘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간다. 타인의 중언부언은 금방 알아채면서 자기가 쓴 글에는 관대하게 넘어간다. "이 정도는 괜찮아!"라며 스리슬쩍 내 삶도 넘기며 살았다. 글을 쓰며 삶도 다시 배운다. 삶도 적절할 때 마침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 이태준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 이태준

'과유불급' 나는 아직도 쓰면 쓸수록 글의 양이 늘어난다. 없어도 좋을 말을 찾아내는 눈이 아직 내게는 없다. 아직도 글쓰기의 길은 멀었다. 쓰면 쓸수록 늘어나니 말이다.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데 내가 쓴 글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다. 이 말을 잊지 않도록 꼭꼭 싸매둬야지.





나는 언어가 살아 있는 한 언젠가 자기 모습을 드러낼 모든 독자들을 위해 쓴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된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도 그렇고 어른이 되어서도 나의 힘든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힘든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왠지 내가 힘들었던 과거를 말할 용기가 없다. 내 품을 다른 이에게 내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내 아픔을 드러내는 일이 창피한 것인가. 헷갈린다. 그런데 용기를 내지 않으면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나쁜 글이란?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 [이오덕]

내가 살아온 인생을 글로 쓰던 중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 하나 단호하게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거친 삶을 산 것도 아니어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이야깃거리도 없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남들이 볼 때 별다른 특징 없이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해도 그 안엔 여러 굴곡도 있었고 나 자신에겐 힘들었던 삶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글이 재미가 있을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얻을 것이 있는가? 이 질문에는 정말이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나는 재미있다고 착각의 늪에 빠진 건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문구다. 이오덕이 말한 '나쁜 글'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한 답을 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수만 번 질문을 던져 본다. 그러다가 썼던 글을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고 다시 쓰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만 맴돌고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망정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탄탄한 지구력이라도 길러야겠다.     



사람을 웃기고 울려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기다리게 해라. [찰스 디킨스]

사람을 웃기고 울려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기다리게 해라. [찰스 디킨스]

모리사와 아키오의 '붉은 노을 맥주'를 읽다가 정말 배가 아플 만큼 버스에서 혼자 깔깔대며 웃었다. 혼자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작가의 여행기를 적은 에세이다. 문체가 가볍고 읽기 편하게 쓴 자전 에세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웃음과 재미를 주는 이야기가 듬뿍 담겨있다. 작가는 낚시에 관해서는 전문가다. 어느 시골 마을 바닷가 방파제에서 낚시하고 있었다. 그날은 유독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아빠 따라와 낚시하던 아이의 눈에 작가는 초보자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한 마리도 못 잡고 있던 작가가 불쌍했는지 하나하나 참견하며 낚시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코치한다. 어쨌든 고기를 못 잡으니 뭐라 할 말은 없고 낚시 전문가인 자신이 이런 꼬맹이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니 분하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작가는 아주 코믹하고 웃음이 터지지 않고는 못 배기게 표현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깔깔대지는 않더라고 최소한 "그렇구나"라고 한 마디 공감의 말만 얻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아직은 내 글을 읽으며 깔깔대며 웃게 할 자신은 없다.

 




너의 마음에 드는 장소는 .... 정열적으로 묘사하면 안 되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묘사해야 한다. - 체사레 파베세

너의 마음에 드는 장소는 .... 정열적으로 묘사하면 안 되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묘사해야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바로 삶의 현장이고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체사레 파베세]

정말 간과하고 지나쳤던 말이다. 좋은 곳에 놀러 가거나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여행이라도 가면 그곳의 감상을 적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나의 짧은 지식을 총동원해서 환상적인 단어는 모두 다 갖다 붙인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흥분하곤 한다. 내가 그렇게 흥분하며 말했던 그 장소가 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채. 간결하고 명확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말에 반성문을 써야 할 기분이 든다. '효리네 민박'이 다시 떠오른다. 방송이 나가고 관광객들은 그렇게도 효리네 집을 찾아간다는 뉴스를 봤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그들은 가봤겠지만, 그곳은 엄연히 사적인 공간이다. 그와 그녀의 삶의 터전인 것을 간과하고 몰래카메라를 들이밀듯이 엿보는 사람들. TV에서 비친 모습 때문에 궁금증이 도져 발걸음이 향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쓰는 글도 이 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가 본 곳이 황홀한 느낌을 준다고 하더라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너무 과장되게 묘사하는 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문장이다.


 

에세이의 결정적 기술은 글쓴이가 자기 노출을 절묘하게 통제하는 데 있다. [웬디 레서]

내 경험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가. 뻔뻔한 자랑이나 지지한 험담에 머물지는 않는가.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거나 확장시키는 메시지가 있는가. 이리저리 재어본다. 자기 만족이나 과시를 넘어 타인의 생각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자기 노출은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 돈 내고 들으려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내 경험을 글로 풀어내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물음에는 정답을 내리기 어렵다. 나의 경험담이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고 확장하는 메시지를 담은 글. 내가 쓴 글에는 그런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글을 전부 버려야 하는지 고민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나의 답답함을 풀어놓기만 했지 남에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전부 엎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수전 손택]

글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에 학인들에게 말한다. "작가로서 자의식을 가지세요.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은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어루만지는 동안 아마 계속 쓰게 될 거예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도움이 안 된다면 위로라도 줄 수 있는 글. 위로라도 주려면 글쓰기 공부가 먼저다.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글이 삶을 초월하지 않게.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리베카 솔닛]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 [리베카 솔닛]

글을 써 보니 알겠더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결국은 모두가 알게 된다는 것. 이상하게 친한 사람에게도 속말을 꺼내기 힘들다. 글이란 놈은 내 몸에 썩어 문드러진 생각의 파편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준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을 다시 빛을 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우리 시대 웹툰작가들의 생존기 - STYING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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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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