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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정희재]

책소개/에세이

by gyaree 2018. 2. 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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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정희재]

살면서 답답함으로 가슴 한편이 먹먹할 때

고달픈 삶으로 마음 한구석에 구멍 하나 뚫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딘가를 찾아가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고 싶어도 이런 마음을 받아 줄 사람이 곁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힘들고 힘들어서 찾아간 곳이 정신과 상담 의사일 수도 있고, 용한 점집이라 소문 난 청년 동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안 된다면 꼭 이 한 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 한 권 읽는 것이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당신들의 상처 난 마음을 조금이라도 원상복귀 시켜줄 것으로 생각한다. 


행복에 대해 겸허해지로 했다. 드릴 기도라곤 오직 "감사합니다"뿐임을 깨닫자 더 자주 행복해졌다. 어쩌다 하루 행복을 공치는 날이 있어도 오래 불행하지 않았다. 다음날 벌어 다시 따뜻해지면 되니까.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남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내 자식이 다른 집 자식보다 공부를 더 잘해서 행복하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주 작은 물건 하나 늘 보던 사물에서 낯선 표정만 잘 포착해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행복은 천차만별이다. 행복에 겸허해지기로 했다는 저자 정희재의 말이 솔직히 확 와닿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가진 것은 요만큼이니까 그냥 이걸로 만족하며 살자는 듯이 들린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행복이 없는 날이 있어도 크게 불행하지 않다는 말은 이해가 될 듯하다. 행복을 공친 날, 다음날 벌어서 다시 행복한 날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나의 주제도 모르고 많은 것을 바라느라 오히려 몸이 망가지고 마음을 다친 채 살아간다. 인생은 힘들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오늘 행복이 없으면 내일 벌어서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다짐을 해본다. 








네가 스며들자 나는 번져갔다

이 책에 담은 건 그 편린들로 맞춘 인생이라는 퍼즐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략) 이 책이 누군가에게, 마음 한자락 실어 날려 보내는 새의 역할을 해 준다면 더할 수 없는 보람이겠다.

책에 적혀있는 말은 전부 작가의 말이다. 수백 페이지나 되는 분량의 이야기가 모두 작가의 글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도 나는 '작가의 말'이라 쓰인 페이지가 있는 책이 좋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말을 쓰는 작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다. 책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썼기에 뭐하러 또 '작가의 말' 페이지를 추가해 쓰느냐고 말할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페이지는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압축기로 찍어 눌러 가장 중요한 작가의 생각을 짜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나에겐 이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잡지를 한 권 샀을 때 부록을 하나 얻은 느낌이랄까. 작가가 쓴 이야기에 작가 자신의 더 깊은 속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작가의 말' 페이지가 아닌가 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독후감을 쓸데도 유용하고,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감지할 수 있어서 좋다. 특히나 글과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책일 경우는 더없이 좋은 것이다.

아주 사소한 삶의 작은 순간이나 조각들조차 놓치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담아내는 작가의 필체와 글솜씨는 정말 감탄하게 된다.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쳤던 찰나의 순간들, 잊힌 기억들의 파편들 그런 순간을 담아 독자에게 가슴 뭉클함을 전한다.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감정들. 다시 말해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은 인간이라면 살면서 무수히 반복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힘들고 버거웠던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고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들도 다시 한번 꺼내어 볼 수 있는, 마치 먼지 쌓인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 보았을 때 잊고 살았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고마운 선물일 것 같다.


   


당신, 참 애썼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이 글을 읽고 곰곰이 생각했다. '당신'은 바로 '나'가 아닐까.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이 글에서 '당신'은 '나'가 아니라 '나의 아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마지막 3행에서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라는 문구. 이곳의 당신이 나의 아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혼해서 이제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말 애쓰며 살아왔고, 사느라 힘들었고, 살아 내느라 버거웠다. 아직도 컴컴한 긴 터널의 어디쯤인가를 달리는 그 끝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 시간이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라고 희망한다.




왜 당신은 늘 괜찮다고 말하나요?

"넌 '됐다'는 말을 자주 쓰더라. 상대의 호의를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 봐. 잘 받는 사람이 잘 줄 수도 있는 거야."

내 인생 가치관 중 하나는 '남에게 도움받지 말고 살자'이다. 난처한 일을 당해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왠지 부끄럽고 싫다. 그 사람들에게 괜한 빚을 지는 것 같아서. 내가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줘야 할 텐데 어떤 방식으로 갚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서툴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호의를 받는 일. "잘 받는 사람이 잘 줄 수도 있는 거야"라는 말을 들으니 그도 그런 것 같다. 여태껏 살면서 먼저 부탁을 해 본 일은 많이 없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먼저 준 적도 없었다. 타인과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다. 호의를 받는 걸 두려워하니 주는 것 또한 못한다. 잘 받지는 못해도 줄 수 있는 삶은 되어야 할 텐데. '오랜 동안 마음에 새겨진 일정한 패턴은 문신처럼 지우기 어렵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의 오래된 습관, 아니 케케묵은 가치관 하나도 쉬이 떨쳐내기 어렵다. 그냥 쉽게 받고 쉽게 주면 되는 것인데 잘못된 버릇과 가치관은 버려 보자!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

"늬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더 잘해 줬을 텐데, 불쌍한 우리 딸....."

오늘도 아침 출근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한 줄 한 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가의 신경 세포들에게 이상한 반응이 온다. 두 눈을 강하게 조이는 듯한 느낌. 이 기분은 가슴에서 울컥한 게 올라올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늬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더 잘해 줬을 텐데, 불쌍한 우리 딸......" 이 문장이 왜 이리도 아저씨의 눈에서 눈물을 빼게 하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어릴 때 엄마를 여의고 대학교 선배 집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의 엄가를 '엄마'로 부르게 되었다는 작가. 선배의 엄마는 철이면 철마다 시골에서 가지가지 음식을 종이박스에 넣어 보내준다. 마치 친딸처럼. 작가 또한 친엄마는 아니지만, 그 엄마와 친딸처럼 지내는 사이다. 시간이 나면 엄마 집에 가서 쉬기도 하며 여느 집의 딸과 다름없다. 어느 날, 엄마가 동네잔치에 갔다가 술 한잔 마시고 흔들거리며 들어와서는 흐느껴 울며 했던 말. "늬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더 잘해 줬을 텐데, 불쌍한 우리 딸...." 자기가 나은 딸이 아닌데도 이렇게 잘 대해주고 있는데 엄마의 마음속에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진심. 술기운을 빌어 말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친엄마보다 더 따스한 애정이 담겨 있다. 이런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럴 때는 그냥 눈물을 흘려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옆에 누가 있든지.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

그날 나는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어떤 글을 써 왔죠?"와 "앞으로 어떤 들을 쓰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비슷한 단어들의 조합인데도 두 질문이 너무나 다른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쪽이 과거와 성취 중심이라면 다른 한쪽은 미래와 기대가 담겨 있었다.

나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다. 인터뷰 가서 쫓겨나던 날. 유명한 매체하고만 인터뷰했다는 어떤 작가. "어떤 글을 썼죠?"라고 묻는 물음에 자신 있게 반박할 글은 내게는 없었다. 지금 다시 그 질문을 받는다면 그때보다는 조금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명하지는 않아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있으니.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있어야 '잘 쓰이는' 삶을 살 수 있다.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내가 이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은 점점 줄어든다. 입사 초기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개 발에 땀나듯이 뛰어다녔다. 무리해서라도 나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그러다가 회사에 적응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나의 존재가 꼭 필요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잘 쓰이는' 삶을 사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 젊을 때야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도 괜찮아 보이지만 나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니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가르침이 현실 생활로 이어져 보다 윤택한 삶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일에 대한 지극히 소박한 진실


"그거 알아요? 정말 뭔가에 정신을 쏟으면 눈물이 나는 거? 슬퍼서도 아니고 서러워서도 아니고 그냥 눈물이 나요. 화장실이 아니라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더란 말이죠. 아, 그걸 뭐라도 표현해야 할지..... 내 안에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할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한테 감동한 거였어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슨 일이든."

솔직히 눈물이 날 만큼 뭔가에 정신을 쏟아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 감정이 어떤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그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눈물까지는 아이라도 이렇게 일하다가는 죽겠다는 생각은 두어 번 해봤다. 하지만 그때는 뿌듯함이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과는 아예 달랐다. 할 수 없어서. 이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져도 해야만 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공부하며 돈 벌며 집안 생계를 책임지며 나의 20대 초반은 그렇게 살아왔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은 없었다. 가슴이 벅차올라 흘린 눈물이 아니라 힘들고 지쳐서 흘린 눈물이라면 모를까. 그냥 힘든 나날을 혼자서 버텼다. 홀로 버텨낸 것이 아마도 내 안에 엄청난 힘이 있어서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정신을 쏟은 후에 흘린 눈물은 삶의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앞으로 눈물이 날 만큼 정신을 쏟을 일이 있을지...


 



일에 대한 지극히 소박한 진실

치열해야 할 때 마음껏 치열해지는 것도 아름답다는 소박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이 뭔가에 몰두한 끝에 흘리는 눈물에 대해서, 그 맑고 투명한 힘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초라한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물 나도록 힘이 솟게 하는 뭔가를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 인생에서 치열해야 할 때 마음껏 치열했던 때는 딱 세 번이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의 밤낮없이 바빴던 삶, 첫 회사에 들어가서 동료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썼던 삶, 회사를 옮기고 팀장으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했을 때의 삶. 이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 청년 B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니 혼자서 치열했다. 성공을 위해서 치열하게 달렸다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내가 감당할 만한 일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의 눈이 개으르다는 말이 있다. 정작 해 보지도 않고 눈앞에 보이는 일이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다는 겁부터 집어먹게 된다. 그런데 그 일을 내가 직접 해 보고 나서 깨달았다. 감당하지 못할 일에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하나씩 차곡차곡하다 보니 어느샌가 그 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일의 처리 속도가 다소 느리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 안에서는 만큼은 아주 치열하게 임했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것은 누구나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 끝에 좋은 결과가 기다릴 거라는 확신은 품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한때는 치열하게 살았지만 내 삶이 내가 바란 만큼 나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실망해 봐야 나만 괴로울 뿐.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히 살았다고 자신에게 칭찬이라도 한마디 해주는 건 어떨까. 앞으로 남은 인생에 눈물 나도록 몰두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때를 위해서 눈물을 아껴두자.   




책을 읽는 소소한 즐거움

M이 사교술을 발휘해 사귀어 놓은 술집 주인이 생기면 우리도 곧 너나들이를 하며 친해졌다. 그 많은 술자리들, 우리가 치른 술값만 모았어도 술집 하나는 너끈히 차렸을 것이다.

너나들이 : 서로 '너', '나'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

아주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서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독서를 하다 보니 이런 즐거움이 생긴다. 나의 지식수준에서 모를 것 같은 단어를 만났을 때, 예전엔 그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며 그 단어의 의미를 알았을 때 기분이 좋다. 이런 것도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라는 걸.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작은 기쁨. 별거 아닌 게 웃음 짓게 하는. 내가 아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이런 것이 나에게 흐뭇함을 선사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살아 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

행복에 대해 겸허해지기로 했다. 드릴 기도라곤 오직 "감사합니다"뿐임을 깨닫자 더 자주 행복해졌다. 어쩌다 하루 행복을 공치는 날이 있어도 오래 불행하지 않았다. 다음 날 벌어 다시 따뜻해지면 되니까.






단순하고 가볍게, 너무 애쓰지 말고!

인생은 그렇게 고민할 가치가 없다. 그냥 살면 된다. 아무렇게나 산다는 뜻이 아니라 가볍게 그냥 산다는 뜻이다. 

인생은 아주 단순하다.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먹을거리, 햇빛과 추위를 가릴 의복, 몸을 가릴 지붕만 있으면 된다. 그 외의 것을 채우느라 오늘 그처럼 마음을 다쳤다. 

마음을 쉬어라. 자연은 빈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채워준다. 네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있다. 완전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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