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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책소개/에세이

by gyaree 2018. 3. 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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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행복하게 살자!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

서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인나미 아쓰시의 [1만 권 독서법]에서 말한 '독서의 신은 한 문장에 깃든다'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가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행복감은 뇌가 느끼는 쾌감이라고 한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같은 감정들. 이러한 모든 감정에서 느끼는 쾌감의 원천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낀다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대체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에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자!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집단, 공동체가 개인에 우선시 되고 개인은 이를 위해 기쁘게 헌신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되는 순간 개인의 삶은 집단 속으로 매몰돼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집단 내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로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잘못된 사회의식이 땅속 깊숙이 뿌리 내리는 비극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런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합리적 개인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합리적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찌 보면 법을 다루는 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인 것 같다. 그의 직업 자체가 누구에게나 공정한 규칙을 적용해 옳고 그름을 판정해주는 일이다 보니. 정말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특히 서민들(약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공정한 룰은 더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나만 느끼는 건지는 몰라도 공정해야 할 룰이 특정 집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 우리 모두가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이런 공정한 룰이 지켜져야 할 텐데. 실상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에서 많은 비애감을 느낀다. 똑같이 빵 하나 훔쳐도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따라서 내려지는 형벌은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그런 상황은 일어나고 있고.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 개운했던 것은 저자의 사회적 지위다. 우리 사회에서 판사라 하면 그 신분의 높이는 말할 필요 없이 검증되고 인정받는 사회다.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의 기득권자 또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아닐까. 예를 들자면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나랏일을 하는 고위직 공무원들. 사회적 약자가 공정한 룰을 만들지는 못한다. 오로지 공정한 규칙은 그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 관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 약자를 보면 보듬어주려 하는 사람,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벌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런 기본적인 사회의식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딸 잃은 슬픔에 단식 농성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유민 아빠 옆에서 폭식 퍼포먼스를 하는 젊은이는 누가 보더라도 비뚤어진 인간상이다.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런 엇나간 사회구조나 인식이 '잘못됐다'라고 정확히 말하는 저자가 고맙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나와는 다르지 않다는 것에 많은 위안이 된 책이다. 저자의 전작 [판사 유감] 또한 이와 비슷한 이야기다. 이 책은 [판사 유감2]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책. 특히 저자와 같은 세대라서 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던 책이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인간 세상에 정답은 없고 현실에서 유토피아는 대체로 디스토피아로 실현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합리적 개인주의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중략)

내가 프롤로그에서 무려 '인간 혐오'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고백한 것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개인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과 억압이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란?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

'남들 보기에 번듯한지' '어떤 급인지'가 실체적인 중요성을 가진 사회인 거다. 나이 오십대 중년들의 사회에서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모임에 나타나는 것은 메시지가 다른 것이다. 고위직 판사들이 기사 딸린 차로 나타나다가 어느 날부터 낡은 자가용을 자가운전하여 나타나기 시작하면 청렴한 집단이라고 좋은 평가를 받는 플러스 요인보다 사회적 위상이 예전보다 못한 집단으로 평가받는 마이너스 요인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외관이 실질을 좌우하는 사회다.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 SNS

페이스북은 참 묘한 매체다. 독백체로 글을 써도 사실 그 글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페친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방자와 향단이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는 이몽룡과 춘향이 같다. (중략)

그럼 나는 왜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걸까. (중략) 결국 재미있어서 쓰는 것 같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들이 많을 것 같다. 특히 내 경우에는 나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데서 큰 재미를 느낀다. MRI 같은 거다.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소재)에 대해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글을 써봐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중략) 

글이란 묘해서 어떤 목적이 앞서거나 읽는 이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앞서는 듯 보이는 글은 감흥을 주기 어렵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MRI에 '뽀샵'을 하고 싶은 욕구가 앞설 때 쯤이 글쓰기를 집어치워야 할 시기일 듯하다.






자기계발의 함정

<위플래시> 성취, 성공에의 열망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를 '나는 저만큼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걸까?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는데....'라는 식의 자기계발 강박증으로 소비하는 것은 위험하고 유해한 감상법이라고 본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글을 몇 가지 검색해보니 젊은 관객들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증후군이다.





행복도 과학이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

서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유엔 발표 [2015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 1위에서 5위는 스위스, 아이슬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캐나다다. 대만은 38위, 일본 46위, 대한민국 47위다. 역시 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심리학계의 연구 결과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고,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는 높은 소득보다 개인주의적 문화 때문으로 본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들이 모여 있는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다. 집단주의로 인한 압력에 짓눌리지 않고 각자 제 잘난 맛에 사는, 서로 그걸 존중해주는 개인주의 문화의 강력함이다. (중략)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개인주의자의 소소한 행복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건 자랑이 아니라 권리 위에 잠자는 어리석은 자임을 자백하는 소리다. 그렇다고 모두가 정치인이 될 필요는 없다. 시민으로서 투표하고, 여론 형성에 참여할 의무를 다하면 족하다.






개천의 용들은 멸종되는가

"이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 실력, 세련된 매너, 수준 높은 교양, 원만한 성품.... 얼마나 갖춰야 할 게 많아요?"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창의적 인재여야지 교과서 달달 외워서 시험만 잘 치는 기계가 되면 안 되죠." "우리나라도 이제 안정된 사회인데 더이상 평지돌출로 상고 출신 대통령이 나오고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인성이 불균형할 수밖에 없죠."

그리스적 전인교육은 노예제의 기반 위에 귀족들에게 적용되었던 혜택이다. 음악, 미술, 체육에 웅변, 논술, 뛰어난 외국어 능력 등 중산층 가정 이상의 뒷받침 없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경쟁하기 힘든 분야의 능력을 자꾸 대입제도에 도입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벌써 신분 이동이 어려운 쇠퇴기의 사회가 되어가는 징표 아닐까 싶어 두렵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역사가 증명하듯 근본적 기반이 흔들린다. 모든 곳에 희망이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기 경험의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결국 나 또한 과거의 나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이 기회를 빼앗기는 것에 가장 분노하는 것이다.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뿐아니라 다수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사실 더 중요하다. 또한 사회에는 공부 잘하는 것 외에 다양한 재능이 필요하다.





20년 만에 돌아온 신림동 고시촌

고시촌의 풍경이 변한 것처럼 법조계의 풍경도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비록 멀리서 보면 변한 것 없어 보이겠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변화의 흐름이 보인다. 폐쇄적 특권 집단에서 사회에 필요한 많은 직업군의 하나로.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흐름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발전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무엇에 주목하느냐의 문제라면 나는 이왕이면 발전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싶다. 냉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이 흉기다

특히 인터넷은 그 흉기를 죄의식 없이 휘둘러대는 전쟁터다. 단지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모욕을 가하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 발언에 대해 사회적 제재를 가한다. (중략)

데이의 [세 황금문].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인천의 비극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되어 쫒겨날 처지에 놓은 장애인 가장이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놓은 채 분신자살했다. 그리고 10월, 15평짜리 낡은 빌라엥서 일가족 세 명이 '마이너스 인생으로 살다 간다'는 유서를 남긴 채 연탄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했다. (중략)

이 두 사건에 관하여 어리석다, 욕심이 과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많다. 맞다. 어리석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원래 어리석은 존재다. 특히 희망 앞에서 눈이 어두워진다. 반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다가 아이들에게 햇볕 들어오는 방을 줄 수 있다는 희망 앞에 가장은 눈이 멀고 만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 목소리들이다.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선거와 같은 큰 세력 다툼의 시기를 전후하여 집단 내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조정 달인의 비결

당사자를 '○○○님'이라고 부른다. 판사가 이렇게 부르면 곧 서로 그렇게 부르게 된다.

재판 시작 때 첫인사를 이렇게 한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원고가 얼마나 화가 났을지, 피고가 얼마나 좌절했을지 충분히 이해함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한다.

당사자의 고통을 경청한다. " 어느 부분이 제일 억울하세요?"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잘 해결될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믿음을 준다. "저는 원고도 모르고 피고도 모릅니다. 사건을 상세히 말씀해주시면 제가 올바르게 판단하겠습니다."

당사자는 이성적이기 힘들다. 분쟁에서 감정을 분리하고 얽매여 있는 명분을 내려놓도록 설득한다.






지상천국은 존재하는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북유럽사회에서 배울 것은 정치나 제도 이전에 먼저 그들의 문화적 전통이 아닐까 한다. 스웨덴의 문화적 전통 중 중요한 것으로 '라곰Lagom'이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적당히'라는 뜻이다. 바이킹 시대 술통을 돌려가며 마시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마셔버리면 다음 사람이 마시지 못하니 적당히 나눠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잃은 것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시대 웹툰작가들의 생존기 - STYING ALIVE
국내도서
저자 : 박인찬
출판 : 다할미디어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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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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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인찬,박세기
출판 : 혜지원 20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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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 [책소개/에세이] - 판사유감 [문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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