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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과 할머니

갸리365일

by gyaree 2018. 5.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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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인연


5월의 장마라 할 만큼 요 몇 주 우산을 펼치는 날이 잦아졌다.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보면 전생에서 무수한 인연을 맺었을 법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전생에 셀 수 없는 인연을 쌓아야 현생에서 한 번 그냥 스친다는데, 내 앞이나 옆 또는 뒤로 한 번의 스침을 뒤로한 채 만나지 못하는 무수한 사람들. 매일 아침 이런 인연들을 멀뚱하니 쳐다본다.


아침부터 쏟아붓는 굵직한 빗발. 우산을 써도 튀는 빗물에 청바지와 신발은 축축. 조금이라도 피해보려고 아직 열지 않은 식당의 차양막 아래에 서 있다. 길바닥 위로 여섯 계단 올라간 곳에 식당 입구가 있다. 평지보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잠시나마 전망대라도 올라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그들도 모르게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 이제는 얼굴의 생김새마저 기억할 정도로 시야에 들어온 사람이 있다. 아침마다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운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 항상 버스 정류장 근처 인도가 끝난 곳과 도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손사래를 친다. 비닐봉지에 담긴 무게감이 느껴지는 짐들이 서너 개. 할머니는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짐꾸러미를 발 밑에 두고 서 있다. 볼 때마다 위태로운 심정은 나뿐일까. 차도에 서서 택시를 잡으려는 노파의 손짓. 왠 짐을 저렇게 많이 가져왔을까. 이 근처에 시장도 없는데, 항상 같은 곳에 있는 할머니를 보게 된다. 전생에 얼마나 인연을 쌓았기에. 

그런데 오늘은, 비바람이 심상치 않다. 같은 곳에서 같은 짐을 발아래에 두고 또다시 기다린다. 전봇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 옆으로 젊은 청년 하나가 우산을 들고 서 있다. "손자인가?" 아닌 듯하다. 항상 할머니는 혼자였으니까. 자신은 비를 맞으며 할머니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고 있는 청년.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행위는 자신에게도 피해가 되는 일이다. 넓지 않은 우산 속 공간에 둘이 들어와야 한다. 우산으로 가려지지 않는 자신의 왼쪽 어깨는 내리치는 비로 흠뻑 젓게 되니까.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우산을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뜻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장면이거늘. 이 신(scene)을 놓치지 않으려고 재빨리 핸드폰 카메라 앱 버튼을 눌렀다. 나는 왜 이 순간에 카메라 버튼을 눌렀을까? 할머니를 돕는 아름다운 청년의 마음씨에 감정이 움직였던 것인가. 


그냥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맺으려면 전생에 수없는 만남을 이루어야 한다는데, 그 청년은 자신의 우산까지 나눠 주었으니 둘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출근길의 길지 않았던 시간. 둘은 전생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인연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비 오는 날 아침에 혼자서 재미난 상상을 해본다. 


마지막 반전은 할머니를 도우려는 또 한 명, 전생의 인연이 나타났다는 것. 

그들은 삼각관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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