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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책소개/소설

by gyaree 2017. 12. 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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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100살 할아버지 알란 칼손이 왜 편안하게 여생을 지낼 수 있는 요양원을 도망쳐 나왔을까? 자신의 100번째 생일에 창문을 넘어 도망친다. 이미 그 나이가 되면 감히 혼자 어디를 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인간이 200년을 사는 동물이라면 인생의 반쯤 왔으니 어디론가 자유를 찾아서 훌쩍 떠나보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야기는 그래서 초반부터 흥미롭게 전개된다. 과연 저 꼬부랑 할아버지가 탈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의 작가는 스웨덴 태생이다. 긴 여행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알란이 그의 특기인 폭탄 기술로 여우 한 마리를 잡으려다 실수로 다시 집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폭파된 집에서 덩그러니 홀로 남은 100살에 가까운 노인. 여기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말하지 않고서는 알란이 요양원으로 들어간 이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북유럽의 나라는 복지가 잘 된 나라라는 것은 TV나 뉴스에서 많이 들어왔다. 홀로 남겨진 독거노인에게 스웨덴 사회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100살의 노인이 좀 더 안정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요양원에 자리를 마련해준다. 한국이었다면 노인 하나쯤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을 텐데 복지정책이 잘 된 덕택인지 알란은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곳에서 지내기 위해선 원장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밥 먹고 규율을 지켜야만 편안한 생활이 보장된다. 1세기를 자유분방하게 세계를 떠돌며 살았던 그에게 요양원 생활은 가당치도 않다. 책을 읽는 독자도 알란이라는 인물이 왜 요양원에서 도망쳐야 했는지 읽다 보면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밖에는 말할 길이 없다. 허황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지만 외면할 수 없다. 그저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알란이 부러울 뿐이다.


이야기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2005년 현재 시점과 1905년 알란이 태어나 현재까지 다다르는 여정이 펼쳐진다. 알란의 여정에 세계사 한 편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돈 가방을 훔쳐 달아난 알란의 일당과 알란이 살아온 삶을 지켜보는 재미. 요양원에서 도망친 알란은 갱단의 돈 가방을 손에 넣어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 가방 안엔 5천만 크로나가 들어있었다. 한국 돈으로 64억 원가량의 어마어마한 금액의 현찰이다. 이 가방을 들고 첫 번째 만난 인물 70살의 노인 율리우스. 평생을 도둑질하며 산 인물이다. 그와 만나 바로 친구가 되어 가방에 거액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반씩 나누자는 결론을 낸다. 이렇게 둘은 돈가방을 들고 다시 여정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친구가 하나씩 늘어난다. 핫도그 장사 베니는 운전수가 되고 이쁜 언니와 코끼리, 원수지간이 된 베니의 형인 보세, 돈가방의 주인 갱단의 두목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쫓던 형사까지 같은 일당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들 일당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정말 근본적으로 악인들이어서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닌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난다. 이 일당을 쫓는 형사와 검사가 이들을 잡기 위한 행동도 볼만하다. 전부 감옥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리고 알란의 세계 역사로 이어지는 여행이 조금은 황당하고 우연이 넘치지만 즐거움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시작해 히로시마 원자폭탄과 소련의 붕괴, 대한민국의 625 전쟁까지 작가의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전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한 인간이 각국의 원수와 친분을 쌓으며 세계 역사의 한가운데 서게 되는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터'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알란의 여정엔 두려움이 없다. 그 앞에 펼쳐진 세계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즐긴다. 


100살 할아버지 알란의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용기와 열정이 있으면 인생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굳이 용기나 열정이란 말은 하지 않는다. 누워 잘 수 있는 침대와 세끼 밥과 술, 그리고 인생은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된다고.




페이지 202

"이로써 세 놈이군!" 율리우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란 일당의 세 번째 희생자가 된 갱단의 두목. 부하 둘이 실종됐다고 생각해 자신이 직접 알란 일당을 찾아 돈 가방을 돌려받으려고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알란 일당을 태운 노란 버스가 자신이 쫓으려는 돈 가방을 들고 튄 일당이라 생각해 잡으려고 급하게 차를 틀어 버스 앞에 세운다. 총을 꺼내 버스 안으로 쳐들어가려는 순간. 코끼리까지 태운 버스는 무게와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갱단 두목의 BMW를 그대로 뭉개버린다. 그는 즉사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율리우스가 한숨을 내쉬며 내뱉는 대사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코미디 소설도 아닌데 웃지 않을 수 없다. 알란 일당에게 당한 갱단의 세 명이 왠지 가엽기까지 하다. 분명히 살인을 저질렀는데 이 소설에서는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자신들이 죽인 갱단의 마지막 현장을 같이 방관한 일행은 죄의식이나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조차 없이 묘사된다. 갱단 세 명이 죽은 상황 자체가 우발적으로 벌어지고 그들이 직접 살해한 것은 아니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첫 번째 희생자는 냉동고의 전원을 깜박 잊고 끄지 않아 얼어 죽게 하고, 두 번째 희생자는 코끼리 엉덩이에 깔려 죽고, 마지막 갱단의 두목은 버스에 치여 죽었다. 독자는 이들이 잔악한 살해범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 그래도 사람 하나 죽는 것에 너무나도 처연하게 대처한다. 길바닥에 개미 한 마리 발로 밟아 죽인 것마냥. 멍청한 갱단의 어이없는 죽음에 "이로써 세 놈이군!"하는 대사는 실소를 자아낸다.      



페이지 271 / 16 1948~1953년

알란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반대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터, 쓸데없이 미리부터 골머리를 썩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알란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 인생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크게 두려워하거나 놀리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알란.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터"라고 생각하는 알란. 오랜 시간 도를 닦은 수도승 같다고 해야 할까. 그는 미지의 세계로 가더라도 절대 두려워하지 않고 그 상황에 적응해가며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이제는 중년의 길에 접어든 나는 새로운 세상에 접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기 어렵다. 이 알란의 나이와 현재 내 나이가 비슷한 시기인 것을 생각하면 나이는 중요치 않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현실에도 그와 같은 인물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본다.



페이지 302

알란 칼손은 인생에서 많은 걸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누워 잘 수 있는 침대와 세끼 밥과 할 일, 그리고 이따금 목을 축일 수 있는 술 한 잔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스탈린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말 한마디 실수로 블라디보스토크의 감옥에 30년 동안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인생을 살아가며 몇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알란 또한 세계를 돌며 여러 차례 좋은 기회가 왔지만, 그에 만족하고 눌러앉지 않고 새로운 길로 떠난다. 욕심이 없는 알란. 그의 인생에서 필요한 건 오로지 편히 잘 수 있는 침대와 세끼 밥과 할 일. 누구나 자기 인생을 180도 바꿀 놀라운 기회를 잡는다면 그것에 안주할 것이다. 그런데 알란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그를 계속해서 새로운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일까.     



페이지 308 / 17 2005년 5월 10일 화요일

그의 경험상 법이 기대만큼 정의로웠던 적은 거의 없었단다. 사람들은 곤들매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정의롭지 못한 법이 만에 하나 정의를 실현하게 되면 큰일이므로....

얼떨결에 알란 일당에 가세하게 된 갱단 두목 곤들매기의 입에서 "정의롭지 못한 법이 만에 하나 정의를 실현하게 되면 큰일이므로..." 이 대사에서 스웨덴의 선입관이 그대로 무너지는 부분이다. 알란 일당에게서 자수하자는 말이 나오자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갱단 두목. 우리에게 스웨덴의 인상은 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 잘 사는 유럽의 나라, 더불어 정치도 안정된 나라라는 느낌이 있다. 그들에게도 법이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것. 물론 갱단의 두목이 바라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다. 약자에겐 냉철하고 강자에겐 관대한 법 적용이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페이지 311 / 18 1953년

알란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한반도는 일종의 공백 상태에 있었다. 스탈린과 트루먼은 나라를 사이좋게 점령했고, 임의로 38선을 그어 남과 북으로 양분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 나라를 어떤 형태로 독립시킬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협상이 이어졌다. 트루먼과 스탈린은 정치적 견해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역사는 독일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 즉 미국이 남한을 세우자 소련은 북한을 만들어 응수했다. 그러고 나서 미국과 소련은 한국 사람들이 자기네끼리 알아서 하도록 놔두었다.

알란의 여정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등장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흥미로운 부분은 알란의 다음 여정은 어느 나라일까?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줄 것인가.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알란의 여정은 세계사를 알게 해주며 스웨덴 사람으로부터 한국의 이야기를 듣는 신선한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한국의 이야기가 나오니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과연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어떻게 양로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지. 정말 궁금하게 한다.



페이지 334 / 18 1953년

김일성은 1912년 평양 근교 지역의 한 기독교 가족에서 태어났다. 당시 모든 한국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강압과 전횡을 휘둘러 왔다. 수십만의 여인들과 소녀들이 붙잡혀 가 천황 군대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남자들은 강제로 징집되어 천황을 위해 싸워야 했다. 또 이 천황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 중 하나다. 스웨덴인 알란 칼손의 여정은 북한까지 다다랐다. 대한민국과는 물리적 거리도 먼 나라 스웨덴. 그 나라의 작가가 바로 된 역사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도 일본은 이 부분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스웨덴의 지식인에 속하는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글을 통해서 일본이 한국인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우리가 아무리 피해국으로서 떠드는 것보다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클 것으로 생각한다. 35개국에서 500만 부 이상 팔린 이 책에 정확한 우리의 역사를 심어 놓은 것이 고맙기까지 하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스웨덴의 10% 사람들과 세계 각국에서 책을 접한 사람들에게 일본이 우리의 소녀와 여인들을 잡아가 어떻게 했는지 알게 해주었으니. 작가의 글 한 줄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국가 간의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도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진 이들로 하여금 바로 잡아 나갈 수 있다는 것. 



페이지 364 / 20 1953~1968년

내가 살아 보니까, 옳은 것이 옳은 게 아니고 권위자가 옳다고 하는 게 옳은 거더라고....

이 대목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별 차이 없다는 걸 알게 해주는 문장이다.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세상. 하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옳은 것이 옳은 세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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