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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책소개/소설

by gyaree 2017. 12. 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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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엄마 아버지는 왜 그토록 1번만 찍을까?

내 나이 40 중반을 넘어섰지만 7, 80년대의 활발했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때는 나이가 어렸고 1987년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당시도 열여섯의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박종철이라든가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으니 정치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말할 필요도 없다. 참 이상하게 생각이 드는 건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그 엄혹했던 시절을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1970년대 초반 태생들이 그렇지 않을까. 유신이라든가 긴급조치 9호라는 말은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세대의 사람들은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는 전부 부모에게서 듣고 자란 세대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느냐는 아버지의 한 마디로 결정 난다. 


"빨갱이 새끼들 잡아다 때려죽여야 돼." 

"대학생 놈으 새끼들이 공부는 안 하고 만날 데모만 해대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 

"전라도 인간들은 상종도 하지 마라." 

"박정희 대통령은 훌륭한 분이야." 

"김대중은 나쁜 놈."


자라면서 우리 집에서 자주 듣는 말이었다. 이 책의 저자 서명숙 또한 부모로부터 저런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인식이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을 차지하니 아버지의 생각과 말대로 나도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라의 선거가 있는 날이면 무조건 1번을 찍었던 아버지와 엄마. 다른 번호는 볼 필요도 없었다. 동네에서 민정당 후보가 방문해 밥을 얻어먹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당연시되던 그때. 나의 엄마도 빠지지 않았다. 동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면 1번 민정당 후보를 지지하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한쪽으로 편향된 정치 이야기만 듣고 자랐으니 민주화 운동을 하는 많은 젊은이에 대한 인식도 내게는 그저 공부 안 하는 대학생 정도였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쇠뇌인지 알지 못했다. 무조건 엄마 아버지가 말하는 게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 그토록 엄마 아버지는 1번 만을 지지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집은 지식인과는 거리가 먼 집안이었다. 배움의 끈도 짧았던 부모. 두 사람이 세상 뉴스를 접하는 유일한 수단은 TV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신문. 흔히들 말하는 조중동을 열렬히 사랑하는 세대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 군사 독재 시대에 제대로 된 진실을 보도하는 미디어는 아무 곳도 없다. 오로지 정부, 박정희나 전두환을 위한 뉴스만 시청하는 나의 엄마 아버지가 정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매일매일 그들은 찬양하고 데모하는 사람은 빨갱이 간첩으로 취급하는 뉴스. 세상의 한켠에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진실은 묻어둔 채, 아마도 나의 부모도 광주 사태가 벌어졌을 때 진상을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독립적인 시각을 갖기 전까지 나의 세상을 보는 시각도 편향되어 있었다.


영초언니는 주인공 서명숙이 박정희의 유신 시대를 거쳐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살면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잘못된 시대를 비판하는 약자가 어떤 고초를 겪고 살아왔는지 보여준다. 그 시절 좋은 대학에 입학한 사실만으로도 동네에 플래카드가 걸리는 세상에 주인공도 성공적인 미래를 예상했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잘못된 사회의 모습이 눈이 들어온 그녀는 저항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 같다. 조금 더 배운 지식인으로서 무언가 사회에 도움이 되려는 인식. 이것이 그녀의 삶을 순탄치 않게 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싹터 지금의 촛불이나 제대로 된 시민의식이 자리 잡아 나갈 수 있었다는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쪽으로 편향된 사회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사회는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페이지 67 / 구로동의 헬조선

"가르치는 건 좋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과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야학에서 배운 여러 지식 때문에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잘못이 아닌가? 차라리 그들이 당장 원하는, 계층 상승에 도움이 되는 검정고시 공부를 시켜주는 게 그들을 위해 더 나은 봉사가 아닐까?" (A교사)

"우리 사회의 거대한 모순을 직시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그들의 '신분 상승 욕구'에만 영합해 교과목만 가르친다면 굳이 야학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들을 궁극적으로 기만하는 행위 아닌가? 당장은 더 고통스럽더라도 모순된 현실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고 변화할 수 있지 않은가?" (B교사)

1970년대 우리나라 공장 근로자의 실태를 그대로 전해주는 대목이다. 작업 현장에서 '숨 쉬는 기계'로 취급받았던 그들의 열악한 환경. 야학은 그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고 부당한 대우에 굴하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는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나도 70년대에 태어나 자랐지만 이런 근대사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없다. 군사 독재 정치하에 억압받고 닫혀있던 시민 의식을 그나마 일깨워주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열어준 곳이 야학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위 내용을 토대로 본다면 야학 교사들 사이에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검정고시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이 옳을지, 근로기준법을 가르쳐 모순된 현실을 일깨워줘야 하는지 어떤 것이 그들에게 좋은 방향일지는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B 교사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2016년 겨울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매운 수많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민들의 깨어있는 의식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물결을 만들어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니 당장 앞에 놓인 현실보다는 미래를 위해 잘못된 현실을 알게 해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옳지 않을까.


  

페이지 179 / 개털 중의 개털, 소녀 장발장들

대체 저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어 들어왔느냐는 물음에 옥주가 픽 웃었다.

"뭐 별것도 아닌 거.... 배고파서 가게에서 소시지나 빵 같은 거 훔친 애도 있고, 화장실에 떨구고 간 지갑, 주인한테 안 돌려줘서 잡혀온 애도 있고. 한마디로 돈 없고 빽 없고 가족들도 쌩까니까 구속까지 된 거지 뭐."

1979년 5월 16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서영숙. 5.5평 공간엔 17명이 수감되어 있다. 2017년 박근혜가 호화스러운 감옥 3.2평의 공간을 혼자 사용하면서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독재하던 시절의 시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감옥에서의 대화 장면이다. 교도소 교정에서 저자의 눈에 들어온 어린 소년 소녀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어 어린 친구들이 감방에 들어왔는지 묻는다. 감방 동기인 옥자의 "뭐 별것도 아닌 거…."라는 말에 그 시대가 어떤 세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굶주림에 지쳐 빵 하나 훔친 아이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시대였다. 돈과 힘이 없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던 시대. 그런데 지금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감옥에 수감돼도 바로 풀려난다는 사실을 뉴스에서 접한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그 누군가에게는 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70년대가 별것도 아닌 거에 잡아 가두었던 시대라면 지금은 별것이 많아도 자유의 몸이 되는 시대다. 나라를 망치는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그들의 권력은 아직도 살아있어 "누구누구의 영장이 기각되었습니다."라는 뉴스를 자주 들어 허탈감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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