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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책소개/소설

by gyaree 2018. 3. 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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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사람들이 애초부터 '학생'(재료)들을 그렇게 고약하게 취급했느냐 하는 거예요." 

주인공 캐시는 이 질문 하나를 풀기 위해서 내달린다. 왜 자신들의 존재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는 몸서리치는 이유가 되는지. 

'나를 보내지 마' 책을 읽는 내내 이 제목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주인공 캐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Never Let Me Go'가 '나를 보내지 마'이다. 아이들은 '헤일셤'에서 양육되고 나이가 들면 제2의 장소 '코티지'로 옮겨간다. 우리로 치자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급하는 과정쯤이다. 그런데 이들이 두 번째로 옮겨진 곳은 교육기관과는 좀 많이 다르다. 아직 더 배워야 할 소년소녀들.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보호받고 제대로 교육받아야 할 아이들의 처지는 왠지 버려진 느낌을 받게 한다. 세상에 홀로 떨구어진 고아처럼. 그렇다 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자란 시설엔 교사들과 아이들, 그리고 마담이라는 여자만 보인다.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다. 보통의 일반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종족. 이들은 이곳에서 '사육'된다.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헤일셤에서 교육받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마담이라는 여자가 선택해서 가져가면 그 보상으로 토큰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 토큰은 아이들이 필요한 물건을 바자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무언가 한쪽으로만 치우친 수업이라는 느낌. 일반적인 교육기관에서 하는 수업이 아닌 강력하게 통제되고 실험실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책을 완독하기 전까지는 이 그림 수업에 대해 조금 잘못 이해를 했다. 어차피 이 아이들의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창의적이거나 똑똑하거나 지성이 높으면 안 되는 거로 생각했다. 이들은 클론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인간보다 더 뛰어난 두뇌를 가지면 안 되기에 마담은 아이들의 그림을 수거해 가고 그 그림을 분석했다고.


아이들은 서서히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간다. 보통의 인간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 일반인들이 자신들을 혐오한다는 것. 그들이 태어난 목적대로 루스와 토미는 기증자가 되고 캐시는 간병사가 된다. 기증자는 인간의 삶을 연장하기 위한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장기를 기증해서 일반인을 살리는 역할. 다시 말해서 의학 재료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다 헤일셤에서부터 떠돌던 소문 하나.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기증을 유예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을까. 네 번째 기증을 앞둔 토미. 서로를 사랑하는 캐시와 토미. 일말의 희망을 안고 둘은 마담을 찾아 나선다. 이 질문에 유일한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인물. 힘들게 만난 마담이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죽음에서 조금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오히려 더 참혹한 진실을 알게 된다.


캐시나 토미도 그들 앞에 놓인 삶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 인간들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 적어도 자신들의 존재가 그렇다면 오히려 인간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 또한 캐시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인간의 질병을 고치기 위한 존재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거늘. 하지만 캐시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궁금증. '왜? 사람들이 자신들을 벌레 보듯 했을까'에 대한 대답. 아마도 클론들과 공생할 수 없다는 인간들의 이기심. 인간의 병을 고치는 재료일 뿐이라는 통념. 헤일셤에서 사육된 아이들은 그나마 감사해야 한다는 마담의 말. 그동안 타 기관에서 사육된 클론들은 정말로 인간이 아닌 가축을 사육하듯 길러졌다는 것. 클론도 보통의 인간들처럼 창의적이고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클론들을 사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던 헤일셤. 설사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한들 결국 클론의 일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되려 영혼을 가진 클론의 존재가 더 슬프게만 다가온다. 그들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데.


나를 보내지 마! 저 죽음의 구렁텅이로. 아마도 캐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복선?

"언젠가 우리한테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이야. 기증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야."


"창의적으로 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얘기 말이야."

토미의 이야기에 '기증'과 '창의적'이라는 단어에서 무언가 암시를 주는 느낌이 든다. 창의적인 행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 창의적인 행동을 한다는 건 의식의 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똑똑하거나 명석한 아이에게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창의적으로 되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에 과연 어떤 뜻이 담겨있을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우리는 마담과 다른 사람인가?

페이지 59

우리가 어떻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우리의 손이 자기들의 손에 스칠까 봐 겁에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자신을 그런 이들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일별하는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등줄기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걸어 지나가며 비쳐 보던 거울에 갑자기 뭔가 다른 것, 혼돈스럽고 기괴한 뭔가가 비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신들의 존재가 마담이나 선생님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마담에게 혐오스러운 존재였다는. 아직은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혼돈스럽고 기괴한 느낌이라 표현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처음 나타나는 시점. 분명한 것은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더 혼란하다.




의문은 의심이 되고

"선생님, 그런데 마담은 왜 우리가 만든 물건을 가져가시는 거죠?"

아이들은 서서히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마담이 왜 가져가는가. 마담에게 선택받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런 즐겁고 좋은 일에 하나씩 물음표가 더해진다. 비로소 그 물음은 이내 의심으로 바뀌려 한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내가 만든 물건은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 쓰이는가. 마담에게 선택받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닌 듯한 느낌은 아이들에겐 두려움의 시작이고 공포로 다가오는 것 같다.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

페이지 118

페이지 119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어. 아무런 꿈도 꾸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나와는 다른 존재야 너희들은. 루시 선생은 피터 J가 고든에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대화를 듣고 아이들의 존재를 확인시킨다. 성인이 되면 장기 기증을 해야 하므로 함부로 다른 삶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고.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없는 아이들. 각자가 태어난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




근원자

페이지 195

"걔들의 판단에 따르면 그 사람이 '근원자'라는 거야. 나의 근원자 말이야." (중략) 

우리 각자가 일반인에게서 복제된 개체인 만큼 바깥세상에는 우리의 근원자가 살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의 근원자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밖, 즉 시내나 쇼핑센터, 휴게소 같은 곳에 나가면 줄곧 신경을 곤두세워 자기나 친구들의 근원임직한 사람들, 곧 '근원자'를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우리는 부랑자나 인간쓰레기, 창녀,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정신병자나 죄수들로부터 복제된 거예요. 그게 우리 근원이에요. 우리 모두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말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죠? 아까 본 그 여자요? 이런, 그래 맞아, 토미. 그저 재미 삼아 해본 것뿐이야. 소일 삼아 해 본 거라고. 거기에 있던 또 다른 여자, 그 여자의 친구인 화랑의 노부인은 우리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부인이 우리 정체를 알았다면 그런 얘기를 들려 주었을 것 같아요? 부인은 우리를 쫓아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누구든 자신의 근원자를 찾고 싶다면, 진짜 그 일을 해내고 싶다면 빈민가로, 쓰레기통으로, 화장실로 가야 한다고 말이에요.

루스의 근원자라고 믿고 따라간 어떤 부인. 이들은 자신들의 근원자가 사회적으로 신분이 인정되는 계급이라 믿고 싶어 한다. 인간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들. 깨끗한 오피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믿고 따라간 여인은 루스의 권원자가 아니었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들의 근원자는 사회 밑바닥에 있는 부류의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 하고 싶지 않다. 근원자를 찾으려면 사무실이나 화랑으로 올 것이 아니라 빈민가로, 쓰레기통으로, 화장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





헤일셤의 정체

페이지 358

우리는 주류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영향력 있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기존의 기증 프로그램 진행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했단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인간적이고 교양 있는 환경에서 사육된다면 '학생'들 역시 일반인들처럼 지각 있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세상에 증명했어. 헤일셤 이전에 클론들은, 우리는 너희를 '학생'이라고 부르는 게 더 좋지만, 그저 의학 재료를 공급하기 위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단다. 전후 초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희를 그런 존재로 생각했어. 시험관에 들어 있는 베일에 싸인 물질로 말이야.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

페이지 360

장기 교체로 암을 치유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어떻게 그 치료를 포기하고 희망 없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겠니? 후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지. 사람들은 너희 존재를 거북하게 여겼지만, 그들의 더 큰 관심은 자기 자녀나 배우자, 부모 또는 친구를 암이나 심장병이나 운동 세포 질환에서 구하는 거였단다. 그래서 너희는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었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그것이 우리의 작은 운동이 시작되기 전의 실상이었단다. 우리가 무엇에 맞서야 했는지 알겠지?




페이지 363

"우리가 아니었다면 너희가 훨씬 참혹한 삶을 살았을 거라는 인식 말이야."

"고맙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 우리 뒤에서 마담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어째서 저들이 우리에게 감사 같은 걸 하겠어? 저들은 뭔가를 더 얻기 위해 여기에 왔어. 그 세월 동안 우리가 저들을 대신해서 한 모든 싸움, 저들에게 준 것에 대해 뭘 알겠어? 저들은 그걸 신에게서 받은 거라고 여기고 있어. 여기에 오기 전까지 저들은 아무것도 몰랐잖아. 이제 저들이 느끼는 건 실망감뿐이야.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데도 그 이상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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