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명품도 사본 놈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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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aree 2017. 7. 27. 11:06

살면서 명품 하나 몸에 걸치고 싶지 않은 여자가 있을까?

그냥 아이쇼핑만 할 뿐

모든 여성이 명품을 원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일생에 하나쯤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여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우리 주변만 유심히 관찰해도 금방 알 수 있다. TV 홈쇼핑에서도 판매를 시작해서 2만 9천9백 원에 3개를 준다는 티셔츠나 연예인의 함박스테이크 10팩 구매하면 1팩 더 주는 단돈 2~3만 원짜리 제품 광고만 보던 나의 눈도 혹하지 않을 수 없게 현혹당한다. 나도 정말 명품을 살 수 있나? 잠깐 착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나오는 가격의 0의 이어지는 행렬을 보는 순간 지구 위에 떠 있는 달까지의 거리감이 확 느껴진다. 땅바닥에서 달까지 가려면 우주선을 타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 명품은 우주선 한 대쯤은 필요한 물리적 거리감을 통감하게 한다. 명품에 관련해선 이미 성의 장벽이 무너진 지도 오래. 명품은 여성만의 점유물이 아니게 됐다. 명품 문외한인 나도 흔히 들어봤을 루이뷔통, 샤넬, 구찌를 시작으로 나와는 다른 세상 높은 곳에 있는 이름 모를 명품은 세상에 널려 있고 내가 아는 명품의 개수는 늘어만 가고 있다.

나이 40이 넘으니 길거리나 대형 쇼핑몰에만 가도 3~40대 결혼한 여성들 또는 그 이상의 여성들 손에 매달린 명품 백이나 가방에 자주 눈길이 간다. 나야 명품에 별 관심이 없어 누가 명품을 차고 다니든 들고 다니든 상관없다.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의 명품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동창들 모임에 나가면 친구의 와이프 손에 들린 명품 백을 보면 평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40이 넘으면 어느 정도 사회에 자리를 잡아 경제 기반이 다져져 명품 백 하나쯤은 어깨에 걸쳐줘야 중산층이라 말할 수 있는 웃지 못할 조사를 본 적이 있다.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2,000cc 이상은 굴리고 다녀야 중산층이라는 인식. 프랑스인이 생각하는 중산층(1개 이상의 외국어를 할 수 있는가?,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는가?, 1개 이상의 악기를 다룰 줄 아는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색다른 요리가 있는가?, 사회적 분노에 공감하는가?, 약자를 돕는 봉사활동 참여하는가?) 기준과는 많이 다른 게 우리 현실이다. 내가 바라보는 명품은 그저 하나 가지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그 하나를 가지고 있으므로 해서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더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도 이제 중산층 정도의 위치에는 있어”라고 외쳐보고 싶은 마음이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실상은 밑바닥 저 아래에 있으면서도….

명품 백 구매 도전기

나의 첫 번째 책인 [나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 원고 작업을 하면서 인세 받으면 와이프에게 명품 백 하나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즘 ‘알쓸신잡’에 나오는 김영하 작가처럼 스타 작가도 아닌 주제에 솔직히 무슨 용기로 명품을 사준다고 했는지 어처구니없을 정도다. (대출 원금은 줄어들지도 않는 판에) 집 밖으로만 나가도 동네 아가씨나 아줌마들이 들고 다니는 백을 보면 나 같은 명품 문외한들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의 명품 가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가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명품을 대표하는 무늬와 로고가 붙은 물건들이 그녀들의 팔이나 허리 아래로 걸려있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물며 장 보러 가는 장바구니 백에도 명품 무늬가 붙어 있으니.

언젠가는 울 마누라의 손목에도 저런 걸 하나쯤은 걸쳐줘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데…

[나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내 인생에서 처음 쓰는 책이라 출판사에 폐나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받는 인세로 과연 명품 백을 살 수나 있으려나? 최소한 2쇄는 찍어야 그나마 저렴한 명품이라도 살 수 있을 텐데. 벌써 회사 생활을 한 지 20년이 됐지만, 명품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벌이와는 거리가 멀다. 명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와이프의 손가락은 이미 핸드폰 액정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이번엔 나도 돈 나올 구멍이 있으니 와이프의 핸드폰을 만지는 손놀림이 겁나지만은 않는다. 나처럼 작은 회사에서 주는 쥐꼬리만 한 월급만 받는 사람은 목돈을 만져 볼 기회가 없다. 목돈은커녕 매달매달 이번 달 대출 이자는 4.14%, 3.27%, 4.41%, 3.85%라는 문자만 꼬박꼬박 날아오는 판국에 내 인생에 ‘명품’이라는 글자를 이번 기회에 새길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검색하더니 드디어 괜찮은 놈을 찾아낸 와이프. 일단 내가 받을 인세를 생각해서 대충 적당한 놈으로 후보를 골랐다. 백화점과 병행수입, 명품 프리미엄 아웃렛의 가격 비교까지 하면서 만반의 준비는 끝난 상태. 돈 많은 부자야 바로 백화점에 직행해서 현찰 다발을 내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더 싼 곳을 손가락 품을 팔아서 찾아내야 한다. 명품을 사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 정말 무리하면 이번 기회에 명품을 하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오히려 내가 더 높았다.

과연 가난한 아저씨는 명품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휴일. 우린 바로 백화점 입구에 들어섰다. (우린 백화점에 거의 안 감. 아니 갈 형편이 못 되는 게 솔직함) 촌놈이 서울 구경 온 마냥 백화점 1층은 다른 층보다 유독 더 화려해 눈동자 돌아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화장품 코너를 지나니 슬슬 비싸 보이는 물건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싼 물건들은 이미 디스플레이부터 다르기 때문에 저 멀리에서부터 풍기는 기운이 다르다. 큼지막한 전면 통유리 안에 화려한 명품들이 그들만의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샤넬, 구찌,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등 각자의 단독 룸을 가진 이 세상 무엇보다도 존귀한 존재라 뽐내듯이 진열된 명품 아래에 붙은 가격표에 쓰여 있는 ‘0’의 개수. 일일이 세어봐야 얼마인지 알 정도로 숫자 0이 주는 공포감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숫자 0의 존재감에 절대 뒤지지 않는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백화점 명품 코너는 아주 크거나 적당한 크기의 문이 없는 열려 있는 입구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문이 없는 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압박감은 문이 달린 입구를 들어가는 것보다 조심스럽고 어렵다. 보이지 않는 투명막이 “너희 같은 하층민은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라고 준엄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나도 그렇지만 와이프도 문밖에서 감히 발을 들여놓을 자신이 없어 슬쩍 눈치만 볼뿐이다. 우리와는 맞지 않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릴 때 재밌게 봤던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같이. 처음부터 명품을 사려고 백화점을 찾은 건 아니고 모델만 구경하려고 했지만, 실제로 명품 코너를 마주하고 보니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누가 들어오지 말라고 막는 것도 아닌데. 지레 겁먹게 하는 투명막의 존재.

용기를 내 드디어 룸 안으로 들어갔다. 백화점 명품 코너의 룸에 들어가면 직원들의 옷차림에 다시 한번 머뭇거리게 된다. 바깥 코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인다면, 이 룸 안에 있는 정장의 슈트를 쫙 빼입고 하얀 손 장갑을 낀 직원들의 포스는 정규직의 아주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의 향기가 풍긴다. 이 사람들의 눈을 보면 우리는 이 비싼 물건을 살 사람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지는 않아도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쉽게 알아차리는 듯했다. 용케 발은 드려놨지만 자신 있게 직원에게 다가가 물건에 대해 질문도 하지 못한 채 직원들이 가까이 접근하면 그냥 멀리 떨어져 직원들이 없는 곳만 둘러보고 잽싸게 조용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역시 지금의 내가 발을 들일 곳은 아니라는 것이 그 옛날 죄인의 몸에 인두 도장을 찍듯 내 머릿속에도 아주 찐한 도장이 새겨졌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명품도 사본 놈이 사는 것 같다.

송도 프리미엄 아울렛은 우리를 반겨줄까?

그리고 몇 주 후. 우리는 송도 프리미엄 아웃렛을 찾았다.

백화점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급이 낮으니까 우리도 적응할 수 있으려는 기대감을 품고…. 과연 그럴까?

백화점 명품 코너보다 중압감은 덜했지만, 이곳 역시 나란히 이어진 숫자 0을 세어 보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정말 이곳에서만큼은 명품을 구매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이곳저곳 많은 명품 매장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만 반복할 뿐 와이프의 입에선 쉽사리 구매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명품을 갖기 전까지는 즐거운 마음이었지만, 명품을 손에 넣고 카드를 긁는 순간 그 즐거움은 바로 사라지고 다음 달 날라 올 카드 값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명품은 자신의 물건이 되기 전에는 기대감과 즐거움으로 가득하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그다음이 더 큰 고민거리로 다가오는 것 같다. 없는 살림에 큰마음먹고 와이프에게 명품 하나 사주려 했지만, 우리는 명품샵을 뒤로한 채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쇼핑하느라 지친 몸을 끌고 식당에서 허기만 채우고 돌아섰다. 눈과 머릿속에 남는 건 오로지 ‘0’의 행렬.

한국에서 부채 없는 30평 아프트, 월 500만 원 이상 급여, 2,000cc급 중형차, 1억 원 이상 예금, 연 1회 이상 해외여행은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명품 하나 정도는 사치를 부려보고 싶었던 가난한 작가의 명품 답사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내 집 마련의 꿈은 멀고도 멀고, 대신 명품 하나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 사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