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젊은 청년이 있다.
스물다섯 청년 A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한국에서 천만 원을 모아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 그의 꿈은 스시 요리사. 이미 한국에서 요리 경력이 있고 스시의 본토인 일본에서 스시 장인이 되고자 하는 확고한 꿈이 있는 청년이다.
스물여덟 청년 B는 자신의 꿈을 찾아보려고 일본에 왔다. 한국에서 젊음의 방황을 끝내고 조금은 늦은 나이에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떠밀리듯이 일본으로 온 청년.
JR 야마노테센 신오오쿠보역 _ 이미지 출처 구글
한 끼 줍쇼는 왜 신오오쿠보를 선택했을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림들. 개그맨 이경규 뒤로 보이는 신오오쿠보(新大久保) 동네의 맨션과 길거리는 24년 전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군데군데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떤 것은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어 어렵지 않게 “아아 저기구나!” “저기가 저렇게 변했어?” 오히려 변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하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 당연한 결과다. 신오오쿠보 역 개찰구를 나와서 바로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있었던 나의 단골이었던 빵집은 아직도 남아 있을까? 내가 살던 곳은 이 동네는 아니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거나 할 때 들리는 주요 경유 지점 중 한 곳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추억이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얽히고설킨 실타래 끄트머리를 찾아 살짝 당겨보니 조금씩 딸려 나오는 느낌이 든다.
신오오쿠보 역 건너편 단골 빵집은 사라지고 한국 PC방이 보인다 _ 이미지 출처 구글
밥 한 끼를 얻어먹기 위해 신오오쿠보(新大久保) 동네를 땡볕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돌아다닌다. 일본 날씨는 대체로 더운 날도 습기가 많아 걸어 다니면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경규의 머리는 이미 땀으로 머리를 감아 축 늘어진 상태. 일본의 보통 주택가의 모습은 맨션이나 단독 주택이 오밀조밀하게 몰려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냥 골목같이 보여도 이 좁은 길로 차가 지나다니고 사람들도 딱히 인도라 할 것도 없는 길에 요리조리 잘 지나다닌다. 맨션은 높아 봐야 5층 정도, 대부분 2, 3층 건물의 형태로 되어 있다. 조금 잘 사는 듯 보이는 단독 주택은 아주 작아도 깔끔히 정돈되고 현관 앞에는 작은 나무나 꽃을 장식해 작은 집과 참 잘 어울리는 조화로움을 자아낸다. 대체로 집의 크기가 한국보다는 작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한국의 빌라를 맨션이라 보면 될 듯하다.
신오오쿠보(新大久保)는 부촌은 아니다.
24년 전의 그 동네는 일본의 평균 레벨보다 떨어지는 사람들이 주거하는 동네였다. 주로 한국인을 비롯해 동남아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동네였으니 부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일본 보통의 동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내 기억 한 곳에 남아 있다. 돈 없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다 보니 집세도 낮았을 터이고 당연히 주택도 낡고 헌 맨션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이 놀러 가기 꺼리는 동네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네를 지나 큰 도로(왕복 4차선) 하나만 건너면 야쿠자와 룸살롱, 일명 크라부(클럽)라 불리는 가게들이 즐비한 가부키초 2초매(歌舞伎町二丁目) 밤의 환락의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에 있었던 곳이었으니까. 골목골목 사이로 많지는 않아도 한국 음식점과 비디오테이프 대여점(한국으로 돈을 보내는 환전소 역할도 했다), 한국 식료품점이 있어 한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코리아타운이 형성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한국인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일본 동경의 중심지 중 이만한 곳은 없다.
신오오쿠보역 주변은 여전히 낡은 그대로 _ 이미지 출처 구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두 한국 청년의 이야기를 해보자.
고생 끝에 찾아낸 2층짜리 작은 맨션의 2층에 사는 젊은 한국인 유학 청년 둘. 아마도 이런 맨션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유학생이거나 돈 없는 나홀로족일 것으로 추측된다. 유학생들은 보통 일본어 학교를 통해 이런 숙소에 자리를 잡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유학생을 위한 방 하나만 달랑 있는 곳도 있다. 방송에 나온 방은 에어컨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공간은 좁아도 저 정도면 충분히 좋은 편에 들어간다.(한국에 있는 부모님들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
MC 이경규의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등등 유학생에게 궁금한 기초적인 질문들. 그중 꿈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일본으로 유학까지 왔는데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외국으로 유학을 왔다는 것은 당연히 꿈이 있어서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해 요목조목 잘 설명하는 청년 A에 비해 한 템포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꺼낸 꿈을 찾아보려고 왔다는 청년 B의 자신감 떨어지는 화면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초점은 한국에서도 자신의 전공이 있었고 그 전공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일본에 온 청년 쪽으로 맞춰졌다. 확고한 신념이 있는 젊은이에게 포커싱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반면 꿈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청년 B는 왠지 모르게 루저로 비춰지는 느낌이다. 청년 B 또한 한국에서 나고 교육받았기에 이런 상황에 부닥치자 자신도 모르게 죄인 모드가 되는 것 같다.
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출발 선상은 이토록 차이를 보인다.
24년 전 내 모습은 어땠을까?
나도 구체적으로 어떤 꿈이 있어 그 꿈을 이루고자 일본에 온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 있게 나의 꿈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 꿈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할 것이며 어떻게 열심히 노력할지 내 머릿속 청사진은 없었다. 한국에서 그래픽을 배웠고 일본이 우리보다 선진국이었고 그리고 친척이 일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에서 그래픽 관련 공부를 하겠다는 막연한 그림뿐이었다. 그냥 뜬구름 잡기가 어울릴 듯하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방황하지 않았고 부모 말은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다는 것만 빼면 결과적으로 나의 경우 청년 B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열심히 하면 무언가 보이겠지 하는 막연함.
“나도 꿈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청년 A처럼 확고한 꿈이 세워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물음에 정확한 답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일본으로 왔을 때의 상황은 지금의 청년 A, B와 매우 달랐다. 내가 제일 먼저 걱정해야 할 것은 꿈을 찾는 일보다도 돈이 먼저였다. 집안이 부유해서 유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기에 제일 먼저 돈이 필요했다. 빨리 자리를 잡아 한국으로 부모님 생활비를 보내야 했고, 내 학비며 일체의 생활비를 유학생의 신분으로 벌어야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유학 생활의 기본 관념이지만, 나에겐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였기에 공부보다는 돈 버는 일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꿈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돈 벌기와 꿈을 찾는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시간이었다. 정신과 육체 중 하나만이라도 괜찮다면 어떻게 해볼 텐데.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바닥에 떨어지는 생활은 나날이 늘어만 갔고 두 가지를 같이 하기엔 버거웠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4~5시까지 일하고 아침에 학교에 가서 졸던 기억이 나의 유학 생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생활에도 일본에 오기 전엔 없었던 꿈이라는 것이 내게도 차츰차츰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유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함이 내게는 커다란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유학’이라는 단어에서 반드시 공부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한국에서 못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못 하면 더는 꿈을 꿀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컸다.
내게도 청년 B처럼 확고한 꿈은 없었다.
청년 A가 멋들어지게 차린 김치볶음밥. 스시 장인이 되고자 한 청년에겐 이미 요리사 경력이 있었고, 그 실력을 십분 발휘해 MC 이경규는 물론이고 그걸 보는 시청자인 내게도 그냥 단출한 볶음밥이었을 뿐인데 그 청년의 앞길을 상상하게 한다. 확실하게 자신만의 꿈이 있는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차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타인에게 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그렇다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청년 B처럼 갈팡질팡 자신의 꿈이 없는 것을 안 좋게만 볼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꿈이 있는 청년 A와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MC 이경규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냐’라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 같은 중년 세대의 많은 사람은 청년 B처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은 확고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부모님이 공부하라니까 공부했고, 가라는 학교 가라 해서 부모님의 의도대로 움직인 세대일 것이다. 개중엔 부모 말 안 듣는 청개구리가 있는 것은 당연. 아마도 대부분 20대 젊은 시절 확고한 꿈이 있는 아이들은 몇이 안 되리라 생각한다.
한 끼 줍쇼에서 비춰지는 두 젊은이.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물론 더없이 훌륭하고 좋게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꿈이 무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젊은이를 보면서 쯧쯧쯧 혀끝을 차거나, ‘저놈은 집안의 문제아였을 거야’로 보는 듯한 시선은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확고한 꿈을 안고 가는 인생은 남보다 좀 더 빨리 자신이 원하는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방황하다 드디어 꿈을 찾으려는 인생의 험로에 뛰어든 청년 B는 좀 더디고 느려도 자신의 꿈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인생이란 꿈이 정확하게 있든 없든 삶을 살아 나가면서 언제든지 상황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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