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이종각]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역사는 '민비가 일본 사람에게 죽었다' 정도였다. 그것도 일본 낭인들에게. 낭인의 뜻은 일본의 방랑 무사로 나와 있다.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도는 칼잡이 정도로 풀이하겠다. 이런 일본 칼잡이들에게 우리 조선의 왕비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다. 1895년 10월 8일을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10월 9일 국군의 날은 알아도 그 하루 전날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배운 역사는 '을미사변'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혀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을미사변이라는 단어보다 '명성황후시해사건'이라고 바꿔 말하고 싶다. 을미사변이나 명성황후시해사건이나 같은 뜻이지만, 을미사변이라 하면 왠지 그 의미가 부정확한 느낌이 든다. 역사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을미사변보다는 명성황후시해사건이 더 확실한 의미 부여가 되리라 생각한다.

조선의 왕비가 일본 정부의 주도로 암살당한 사건이 명성황후시해사건이다. 이것이 팩트고 진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에 관련해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은 그저 일본 낭인들이 '민비'를 죽였다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감추고 있는 일본이 근원적인 잘못이 있다면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우리의 교육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에 관련한 기록을 날조해왔고 감추고 있다. 122년이 지난 일이라 민 황후의 암살범을 찾아낼 수 있는 증거 또한 찾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민 황후를 죽인 인물이 일본군 소위 미야모토 타케타로(宮本竹太郎)라는 주장을 한다. 일본이 지금까지 주장하는 민 황후의 암살은 일본 낭인이었다는 거짓을 뒤집는 이야기다. 일본 정부는 명성황후시해사건 현장에 일본 군인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으로 해야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정세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실재로도 모든 가담자에게 입막음한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을 조선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벌어진 '조선내란사건'으로 포장했다. 당시 영사였던 우치다 사다쓰치가 본국 외무차관 하라 다카시에게 보낸 최초 극비 서한에 "왕비를 살해한 자는 우리 수비대의 어느 육군 소위"라는 대목이 있다. 작가는 이 우치다 보고서를 기초로 민 황후를 죽인 자가 미야모토 타케타로(宮本竹太郎)이며 여러 가지 정황을 찾아 설명한다. 민 황후 암살 당일(1895년 10월 8일) 최초 극비서한이 하라 대신에게 전해지고 세 차례 더 이어지며 보고서의 내용이 점차 바뀌어 나간다. 최초 암살자를 일본 군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일본 정세에 나쁜 영향이 미칠 것을 염려해 육군 소위에서 어느 낭인으로 최초 암살자가 바뀐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민 황후를 누가 살해했는지 정확하게 밝힐 수 있는 자료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은 일본 정부가 미리 계획했다는 사실은 많은 자료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천황이 시종을 통해 미우라 고로에게 전한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가" 라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미 그들은 이 사건을 계획했었다고.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일본 낭인들이 죽였다.라는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

페이지 80 / 미우라, "조선도 드디어 일본 것이..."

공사는 "아니야, 이로써 조선도 드디어 일본 것이 되었다. 이제 안심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한 일본 정부. 그 참혹한 시해 사건을 주도한 인물 미우라고로(三浦梧楼) 주한 공사. 1895년 10월 8일 민왕후의 살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우치다 영사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한다. "이로써 조선도 드디어 일본 것이 되었다." 일본 군인 소위가 민 황후의 직접적인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우치다 영사. 그는 이 사건이 밝혀지면 일본이 입을 피해를 생각해 미우라 공사에게 해결책을 강구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우라고로는 우치다의 의견을 묵살하고 조선 정부의 내란 사건으로 위장시킨다. 우리는 명성황후가 그 옛날 일본에 살해당했다고만 배워왔다. 또 그렇게 알고 있고. 우리의 역사 인식은 이것에서 끝이다. 그냥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으로 끝내버리려 한다. 일국의 왕비를 죽이고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려 했던 일본의 만행은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더 분개한 사실은 따로 있다. 이런 역사를 일본 측 역사 자료에서는 '조선내란사건'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아무 잘못이 없고 단순히 조선 정부의 대원군과 민 황후의 알력 다툼으로 포장한다는 사실. 역사적 사료의 제목을 '조선내란사건'으로 정한 것부터가 122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증거다. '조선내란사건'이 아닌 '민 황후 시해'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의 군인이 살인한 것이 아니라 낭인에 의해서 살해당한 것이라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미우라고로의 입을 찢고 싶을 만큼 그의 입에서 내뱉은 말. "이로써 조선도 드디어 일본 것이 되었다." 이 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페이지 143 / 일본패의 두목은 사진 한 장을

민간인인 그는 군용선이 아닌 여객선을 타야 했을 것이다. 만약 무라카미가 민 왕후 사진을 촬영했고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인 폭도들이 그 사진을 가지고 민 왕후를 살해하는 데 사용했다면, 일본 측은 을미사변 직후 그를 빨리 서울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득책이라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真)은 당시 조선으로 건너와 활동한 일본인 사진사다.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인 '전봉준'이 옥사에서 조선 법부로 호송되는 사진을 찍은 유일한 사진사다. 전봉준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민 황후의 암살을 위해선 자객들에게는 민 황후의 얼굴 사진이 필요했으리라. 낭인 아다치 겐조가 조선 황실 촉탁 사진사인 무라카미가 찍은 민 황후의 사진을 건네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사진사, 강상규 1985) 아직 무라카미가 조선 황실 촉탁 사진사라는 정확한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가 민 황후의 사진을 찍었다는 증거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살해범들이 민 황후의 사진을 들고 다녔다는 증언이 몇 건의 기록에서 나타난다. 그중 조선에서 망명한 김옥균, 우범선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스나가 하지메(須永元)의 기록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우범선이 장사들이 사진과 왕비의 얼굴을 대조하는 것을 목격했다.' 라고. 명성황후시해사건 직후 일본은 민 황후 살해에 가담한 주요 인물들을 군용선에 태워 일본으로 환송한다. 이런 군용선엔 민 황후 살해를 주도한 미우라 고로 공사를 시작으로 고위 관료나 군인, 낭인들을 태워 보냈다. 그런데 민간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이 군용선을 타고 일본으로 환송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당시 그가 군용선을 타야만 했던 이유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민 황후의 사진을 촬영했다는 추측이다. 일본 공사관의 지시로 민 황후의 사진을 찍어 낭인들에게 전달했다는 가설만이 그가 군용선을 타고 황급히 서울에서 사라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감추기 위해서 민간인 신분이었던 무라카미 텐신마저 군용선에 태워 보낸 더럽고 치밀함에 치가 떨린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우리에겐 없다는 것이 분할뿐이다.

페이지 214 / 천황,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가"

미우라가 먼저 "폐하께 심려를 끼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인사를 했다. 이에 대해 시종은 "아니, 폐하께서는 그 사건을 처음 들으셨을 때,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미우라 회고록 345~346쪽)라고 천황의 뜻을 전했다. 이 말은 천황이 이웃나라 왕비를 참살한 미우라의 행위를 양해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명성황후시해사건 관련자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 동경에 도착한 미우라 고로에게 메이지 천황의 시종이 찾아왔다. 당시 천황은 민 황후 암살에 관련된 상황을 전부 보고 받고 있었다. 미우라 고로가 조선 공사로 부임하기 전에 이미 민 황후의 암살은 일본 내각에서 결정된 상태였다는 것을 그의 회고록에서 말한다. 일본 천황의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가"라는 말은 그들의 죄를 인정하는 중요한 구절이라 생각한다. 명성황후시해사건을 일본 정부에선 '조선내란사건'이라는 거짓말로 일관하는 것을 뒤집는 천황의 미우라에게 전하는 한마디는 중요한 증거가 아닐까. 일본은 대원군과 민 황후의 권력다툼으로 벌어진 조선 내부의 살인 사건으로 역사를 감춰왔다. 이미 일본 천황은 을미사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의 회고록에서 내각에서 전부 결정된 비밀 사항인데 미우라는 자신이 재판을 받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