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지루하고 짜증 나고 살기 힘든 요즘같이 척박한 세상. 각자 나름의 활력소를 찾으려 이곳저곳 기웃거리거나 웃을 거리를 찾게 된다. 필자는 이런 웃을 거리를 웹툰에서 찾게 되었다. 웹툰을 접하게 된 지 2년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웹툰 독자로서는 초보에 불과하고 독자 지망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윤태호 작가의 ‘미생’을 시작해 차츰차츰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즐기며 출근 버스 안에서 불혹이 넘은 아저씨가 혼자 낄낄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받기도 하며 또 때로는 나와는 맞지 않는 작품을 접할 때는
“이것도 만화야!”
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떤 작가들은 일주일에 두 번 연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 또한 만화와 비슷한 사촌지간인 애니메이션 업계에 오랜 시간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작업 패턴이 어느 정도 머리에 그려졌다. 글과 그림이 같이 있는 것이 만화다. 보통 1회 분량이 7~80컷은 되어 보이는 창작물을 그리려면 얼마나 힘든 노동이 필요할까 가 제일 먼저 머리에 계산되기 시작했다.
웹툰 작가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와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의 생활이 궁금하기 시작했다. 가끔 보이는 휴재 공지에서 독자들에게 미안해하는 작가들의 모습에서 돈을 받는 프로니까 독자에게 죄송한 마음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모습이 왠지 짠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게도 무언가 말하지 못할 속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웹툰 작가를 지망하거나 웹툰을 좋아하는 팬에게 작가들의 뒷 이야기를 써나가면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겠다는 각오로
‘40대 중반의 뚜벅이 아재의 착한 인터뷰’는 시작하게 되었다.
살기 힘든 세상 남을 헐뜯고 비판하는 이야기보다는 작가를 조금이라도 더 친근하고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즐거운 이야기,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욕으로 필자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수다 떨기의 정석이라 보면 좋을 듯하다. 애초에 유명 언론사나 잡지사의 인터뷰 프로 기자나 Writer가 아니었기에 전문적인 지식으로 포장된 뛰어난 어구를 사용하는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필자로 하여금 수다를 떨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정곡을 찌를만한 질문을 할 줄 아는 프로 인터뷰어가 아니었기에 인터뷰이(작가)의 입장에서는 인터뷰 자체를 허술하다 느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인터뷰를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작가 위치에서는 자신이 내뱉는 말이 어느 매체에 실리고 얼마나 공신력 있는 곳에서 소개가 될 것인가에 관해 의심의 눈초리를 주는 것도 당연하다. 그냥 하찮은 개인 블로그에 소개되는 자신의 이력에 필자의 기준이 못 미친다는 당연한 논리와 주장에 돌아서기도 했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계기로 작가와의 수다 떨기에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된 것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세상은 이런 초보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로 수다 떨기를 흔쾌히 허락해주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국민학교 시절 (지금은 초등학교) 국어 시간 원고지 한 장을 채워야 하는 글쓰기 수업에 두 줄을 넘기기도 힘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나이 먹은 지금까지도 글이라고는 써 본 적도 없는 내가 과연 인터뷰 글을 쓸 수 있을까?
아직도 의구심이 줄어들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작가는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원래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이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인터뷰라는 것이 글이 논리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어야 하고 읽는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단어와 문장 구사력이 필수라는 것은 많은 설명이 필요 없다.
이런 필자에게 그래도 아주 쪼금이나마 바람을 불어넣어 준 사람은 다름 아니라 어느 여성 작가였다. 작가와 만나서 이야기 나눈 것을 정리해서 보내 줬더니
“글을 참 편안하게 쓰시는 것 같아요.”
그냥 상처받지 말라고 나에게 건넨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머릿속 ‘자신감’ 세포는 국민학교 시절 칸을 채우지 못했던 원고지의 많은 빈 공간의 ‘두려움’ 세포를 떨쳐낼 수 있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다. 논리적이며 고급스러운 문장의 구사력은 아직은 부족하더라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인터뷰 글을 써 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필자의 인터뷰는 작가와 수다 떨기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카페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셔가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질문지가 준비된 것도 아니고 마구잡이식 두서없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가끔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며 잠시 전화가 들어와 하고 있던 얘기를 까먹는 일도 허다하다.
인터뷰를 끝내고 “아! 이거 빼먹었네! 물어봐야 했는데” 이런 경우도 비일비재.
그렇다고 질문지를 뽑아가 일일이 체크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싫다. 그냥 취조하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인터뷰라 하기보다는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편이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크거나 주위가 시끄러우면 녹음이 잘 안 될까 걱정이 앞선다. 일부러 조용한 카페를 찾기 마련이다. 거기다 작가의 목소리가 작기라도 하면 작가에게 더 가까이 핸드폰을 디밀곤 한다. 이렇게 짧게는 1시간 반에서 길게는 3시간 정도 이야기 나눈 것을 정리하는 데는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반디앤루니스
이 인터뷰는 가족의 슬픈 이야기, 꿈을 위해 대학을 가지 않거나 자퇴, 공부만 해왔던 삶, 다양한 능력을 갖춘 능력자, 막노동, 아르바이트, 업종 전환, 인문학, 자녀들의 이야기, 도전, 사회 약자 등등 웹툰 작가의 작업에 관련한 이야기를 넘어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어찌 보면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털어내는 작가라는 호칭보다는 먼저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이가 어려서 삶의 경험이 적어서 말할 거리가 적다는 편견은 해당하지 않는다. 많으면 많은 대로 경험과 경륜이 쌓여 재미나 인생살이가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런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온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전문 직업을 가진 아티스트로서 일반 보통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나에게는 공감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고난과 역경을 뚫고 프로페셔널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담겨있어 이 분야를 모르는 사람에도 도움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작가와의 수다가 전부 다 기억에 남지만 그중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것을 소개한다면 맛있는 저녁 식사와 커피를 곁들인 만남이다. ‘악플’ 악플이라 하면 보통 연예인이 떠오른다. TV에서 보도되는 누구누구 연예인 악플로 누구누구 고소. 심할 때는 스토커까지 따라붙었다는 연예뉴스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 만화 업계에도 악플로 고생하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웹툰 업계는 댓글이 허용되는 플랫폼과 그렇지 않은 플랫폼으로 나누어져 있다. 댓글이 허용되는 플랫폼의 작가들은 독자와 좋은 교류가 되는 한편, 많은 악플로 시달림을 받는 예도 있다.
이 작가의 경우 인신공격과 악성 댓글도 모자라서 개인 블로그에까지 쫓아와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x로 인해 깊은 정신과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에 필자의 입에서도 육두문자가 나올 뻔했다.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많은 팬과 교류하는 지점에서 댓글은 훌륭한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댓글은 작가에게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쏘아대는 장풍이나 슈퍼맨의 초능력과 같은 힘을 실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몇십 미터가 넘어가는 해일이 몰려와 일순간에 무너지게 만드는 힘도 가지고 있다. 만화, 웹툰을 좋아하는 독자의 마음에서 작가들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게 이런 유치한 악플을 다는 행위는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더러운 악플로 인해 작가의 크리에이티브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면 그 피해는 작가뿐만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미친다는 사실. 작가에겐 스토리가 재밌거나 그림이 훌륭하다는 칭찬의 댓글 하나하나가 일주일의 쌓인 피로를 한 방에 날려주는 효과를 준다는 것.
전국 서점에 있습니다.
필자가 인터뷰하면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젊음’이다. 필자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 위치의 중간 관리자로 18년간 많은 구직자의 면접관으로서 필요한 인력을 뽑아왔다. 그중 대부분은 회사에 입사해서 새로 교육을 시키고 배워야만 우리가 하는 작업을 따라올 수 있었다. 물론 타 분야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 이리라 짐작한다.
그런데 젊은 웹툰 업계는 20대 초반의 작가들이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 독자에게 보여주고 소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경험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의 경우는 최소한 1년은 가르쳐야 제대로 업무에 따라올 수 있는데 이쪽 웹툰은 이미 작품을 만들어 자신을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고 오히려 부럽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비해 파릇파릇한 젊은 작가들의 인생살이와 프로 작가로의 발걸음에 겪었던 시행착오도 필자에겐 그저 대단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그들의 인생살이 듬뿍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있어 전 세대에 아우르는 재미난 이야기를 보여 줄 수 있는 웹툰 업계는, 기존 출판 업계의 화려한 경력과 실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작가들의 비옥한 토양이 거름이 되어 젊은 세대가 마음껏 무럭무럭 자라 튼튼한 성인 나무가 될 수 있게 바쳐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몇 해 전 베트남이 아시아에서 주목받는 나라로 소개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젊은이의 나라, 20대 젊은 인구의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많다는 것이 미래에 발전할 수 있는 나라로 소개되고 있었다. 웹툰 작가의 인터뷰를 하면서 젊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에 문득 이 업계가 베트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독창적으로 만들어 가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어 웹툰 업계는 젊은 열기로 가득 찬 생동감이 느껴진다.
지망생에게는 웹툰 작가로서 데뷔가 중요한 쟁점이겠지만 한 작품을 끝낸 작가에겐 그다음이 문제라는 것을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 온 작가들의 입에서 공통으로 표현한다. 이종범 작가의 “작가는 스타트업이다”라는 말에서 웹툰 작가의 처지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리서치, 공부가 필요하며 신입사원이 모든 것을 새로이 배워야 하는 처지라 말한다. 새롭게 준비한 작품이 대박이 날 수도 쪽박을 차서 팬에게 잊힐 수도 있는 존재가 작가라는 것. 이런 의미에서 작가란 독자에게서 멀어지지 않게 매일매일 자신들의 뇌를 파먹어 가며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는 불완전체라고.
이렇게 힘든 작가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나이가 많건 적건 흙수저 건 금수저 건 관계없다. 웹툰 업계는 오로지 독자의 판단으로 인정받는 세계라는 것.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 투자한다면 로또의 1등 당첨과 같은 신세계를 열어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힘들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도전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로또 당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지망생에게는
성실함
근성
투쟁심
만화가 전부는 아니다.
이 4가지 문구를 권하고 싶다.
“성실함은 나에게 다음 기회를 만들어 줬다.” (오영석 작가)
“나를 최고로 만들어 준 것은 근성과 투쟁심” (김성모 작가)
“작가는 만화만 그려서는 안 된다. 다른 인생을 즐겨라” (이종범 작가)
뚜벅이 아재의 착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모든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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