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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 첫 월급은 65만 원

아소사잡

by gyaree 2017. 7. 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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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최저 시급 7,530원

7,530원. 


작년보다 16.4% 인상된 최저 시급. 2018년부터 한 시간 일하고 7,530원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제 법으로 정해졌어. 노동하고 돈 받는 처지에서는 매달 20여만 원이 더 들어오니 얼마나 좋아.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그런데 사업주로서는 반드시 줘야만 하는 금액이 올랐으니 돌아버릴 지경이 됐지.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힘들고 가게 문을 닫냐 마냐의 문제로 하루 마감 영수증을 계산하다 보면 사장보다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간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어. 2018년부터 적용되는 걸 한 달 치로 계산하면 1,573,770원. 올해까지는 1,352,230원만 줘도 되는데 내년부터는 똑같은 시간 일을 시키고 매달 22만 원이 더 빠져나가니 업주로서는 죽을 맛이지. 



주로 최저 임금 하면 사람들의 머리에는 편의점, 카페, 식당 아르바이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같아.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편의점에서 일하는 친구들만 포커싱을 맞춰 보도하는 거야. 그들의 시선에서 그냥 하찮은 일, 어렵지 않은 일, 주목받지 못 하는 일, 전문성 떨어지는 일등을 하는 친구들을 초점을 맞춰 너무 많이 올려주는 거 아니야?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인터넷이나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 이렇게 되면 다 같이 죽자는 식이냐고 떠들썩하지.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르바이트생뿐만 아니라 번듯한 직장을 잡고도 최저 임금의 턱에서 매달 시달리는 친구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한국에는 그 유명한 삼성이나 현대 같은 큰 기업만 있는 건 아니잖아. 왠지 최저 임금 하면 무능력하고, 학벌이 떨어지고, 단순한 노동만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너희는 조금만 받아도 충분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니면 ‘지금도 충분히 많이 주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 어릴 때는 나도 몰랐는데 지금은 이런 말을 듣거나 하면 정말 구토라도 해서 내장 깊숙이 고인 녹색 신물이라도 꺼내 발라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야.


밥 한 끼 먹으면 끝이야




이렇게 시끌시끌하게 올린 2018년도 최저 임금을 보니 갑자기 나의 옛날 첫 월급이 떠오르네.


1997년 스물여섯의 여름. 


서울에서 얻은 내 인생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은 65만 원이었지. 동기들에 비해서 스펙이 달렸던 나의 월급은 그들보다 대략 10만 원 정도를 덜 받은 거로 기억해. 


“너는 대졸이 아니라서 차이가 나는 거야” 

“니가 아는 게 뭐가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라는 팀장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어.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었지. 



애니메이션 업계의 월급 수준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20대 사회 초년생 젊은이에게 월급의 액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회사에 나가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시절. 동료와의 월급 차이로 서운함은 있었어도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됐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65만 원이라는 월급은 세월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4인 가족이 밥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어. 집안에서 돈 버는 사람은 나와 누나였고 그나마 정규직은 나 혼자였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기술 하나 없던 일본 유학 생활 시절 더 많은 돈을 벌었기에 한국에서의 쥐꼬리보다 못한 월급으로는 정말 한 달 생활을 해 나갈 수 없을 정도였지. 기회가 되면 나의 일본유학 생활 시절의 돈벌이에 관해 얘기하겠지만,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 아니라서 다음 기회로 미룰게. 아무튼, 유학 시절 수입은 한국으로 치면 매달 400만 원 가까이 벌었으니까.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니까 오해 없길 바라. 



1997년 최저 시급이 1,400원이었고 한 달 근로시간 226시간에 최저 임금 316,400원이었어. 단순히 숫자만 놓고 본다면 내 월급 65만 원은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야. 그러나 실상을 파고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계산 결과가 나오지. 당시만 해도 주 6일 근무였고 일요일 출근도 늘 있는 일. 아침 9시 반에 출근해 저녁 6시 반이 퇴근이지만, 그냥 규정된 퇴근 시간이 있을 뿐이지 보통 11시까지 근무하거나 날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어. 대략 하루 15시간 근무에 주 6일 또는 그 이상이지만 적게 잡아 6일로 잡고 계산해 보면 90시간이 나와. 한 달 대략 360시간 근무해서 65만 원의 수입. 시급 1,805원을 받으며 회사에 다녔지. 아마도 실제 근로시간을 다 따지면 시급 1,400원도 안 됐을 거야. 상황이 이런데도 매달 기록을 경신하는 야근비가 많게는 20만 원을 넘긴 것에 마냥 즐거워했어. 참 어이없는 일이지. 야근비가 많다고 좋아했으니 말이야. 워낙에 적은 월급에 몸이 부서져라 회사에 충성한 결과는 다크서클이 생겨 ‘판다’라 불리기까지 하면서도 얼마 되지도 않는 야근비는 가뭄의 단비였어. 이때 얻은 다크서클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의 눈 아래 자리 잡고 있지.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많은 일을 시키고도 회사는 법정 시급보다 400원이나 더 준 꼴이 됐지. 그 나머지 400원마저 뽑아내려고 회사는 모텔까지 잡아가며 직원들은 귀가하지 못한 채 몸에 남은 한 방울의 노동력까지 빨아 먹었어. 자 그럼 400원을 더 받아서 행복하냐고? 그저 야근비가 많아서 좋아라했지. 몸이 부서지는 건 모른 채. 허탈한 쓴웃음만 나올 뿐이야. 



20대 젊은 사회 초년생에게 시급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최저임금이라는 단어는 회사 동료 누구의 입에서도 나온 적이 없어. 그냥 일이 필요했고, 일을 하고 싶었고, 번듯한 직장을 갖고 싶다는 열망만이 회사에 들어가는 목적이었어. 뭐 스펙이 되는 애들이야 당연히 이것저것 따지겠지만, 나 같이 특기 하나 없는 애들은 쥐꼬리보다 못한 월급도 ‘황송하옵니다.’ 하고 받았지.   



내년도 2018년 1,573,770원을 받고 한 달 생활이 가능할까? 꾸려야 할 가족이 없는 1인 혼밥족을 위주로 한 기준으로 정한 최저 임금으로 밥 먹는 입이 하나라도 늘어난다면 마이너스의 생활은 불 보듯 뻔해. 20년 전 최저임금의 두 배나 받은 내 첫 월급으로도 한 달 생활은 가당치도 않았어. 제대로 된 문화생활은 고사하고 일상생활도 근근이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빚만 자꾸 쌓이는 수준이었어. 매달 22만 원이 오르는 내년 최저 임금으로 뭐를 할 수 있을까? 점심값을 7천 원으로 계산하면 한 달 점심값 정도가 빠졌다고 보면 될 것 같아. 그냥 점심 한 끼 더 먹게 해준 것일 뿐. 밥 한 끼 더 먹을 수 있게 된 건데 시급 1,060원이 올라서 사회 분열이 일어날지 모른다. 집값이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말하고 있지. 편의점에서 컵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친구들이 겨우겨우 식당에 가서 밥 한 끼 먹게 된 것이 그들의 거창한 논리로 나라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를 꺼내 꼰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20년 전의 상황보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더 어렵고 힘든 시기가 온 것 같아.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나도 그때 참 매우 힘들었고 지금도 그다지 변한 건 없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모두에게 첫 월급은 모두 다 다른 의미가 있을 거로 생각해. 내게는 벼룩의 간만큼 적은 월급이었고 반달만 지나도 빈지갑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월급봉투였어. 아직은 최저 임금도 만족할 수준은 못 되지만 조금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야. 어두운 동굴에서 길을 잃어 계속 걷다 보니 아주 작은 빛이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야. 지금은 아주 미미한 빛이지만 태양을 온전히 볼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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