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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내가 만족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

아소사잡

by gyaree 2017. 8. 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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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월드


나도 좋은 카메라만 있으면 잘 찍을 수 있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는 연예인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진을 찍어봤지만 남편 ‘이상순’이 찍어준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유명한 프로 포토그래퍼, 값비싼 카메라, 멋진 배경, 화려한 메이크업, 그야말로 황금 비율의 정확한 구도로 잡아낸 셀 수 없이 찍었던 상업용 사진보다 남편 핸드폰 액정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이효리. 일부러 멋 내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모습이라도 남편이 누르는 셔터에는 자연스러움이 묻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모습을 알고 순간을 잘 포착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 담긴 남편의 디카로 찍은 사진과 일로 묶인 관계가 담아내는 프로페셔널 사진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정말 그 사람이 이쁘고 사랑스러워 찍은 사진에서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구도가 조금 어긋나거나 포커스가 나가도 결과물에서 보이는 따스함과 아름다움은 전문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을 넘어서는 만족감을 준다.


찍는 쪽과 찍히는 쪽. 찍히는 쪽에 있었던 이효리는 어떻게 하면 이쁜 사진이 나오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른쪽 얼굴이 나와야 이쁜지 왼쪽 얼굴이 나와야 이쁜지, 어떤 메이크업이 적당한지, 또 빛은 어디서 때려줘야 하는지도…. 사진을 많이 찍어본 사람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하는지 수만 번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그리는 프레임 안에서 그녀의 거짓된 포즈는 없다. 부러 이쁘게 찍히려고 옷매무새를 고친다거나 카메라 렌즈를 향해 이쁘게 나오려고 자세를 돌리거나 하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필요 없어 보인다. 그냥 찻잔에 차를 따르는 평범한 모습, 반려견과 뒹구는 모습, 밥 먹는 모습, 침대에 누워 헝클어진 머리도 상관없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남편의 카메라에 담긴다. 우리같이 일반인이 찍는 사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 핫플레이스에 놀러 가 즐겁게 노는 모습. 일상적인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리들과 비슷한 모습을 담는다. 그런데 그의 카메라는 조금 다르다. 관심과 애정을 담은 그의 셔터는 상대방(이효리)의 이쁜 순간을 정말로 잘 잡아낸다.




정말 사랑과 애정이 담긴 앵글은 어떤 앵글 일까?


나는 우리 집에서 찍새다. 우리 가족 대부분의 사진은 나의 핸드폰 G5 카메라가 담당한다. 나도 이효리의 남편처럼 아내가 만족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소원이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사진사와 아마추어 피사체는 사진을 찍는 일도 찍히는 일도 어색하다. 사진 한 번 찍으려면 "자, 찍는다."라고 입 밖으로 내뱉고 나서야 셔터를 누르게 된다. 아이들에게 이쁜 자세를 취해보라고 닥닥을 하며.... 특히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 사진 같은 경우엔 흔들리지 않은 사진이 최고다. 훌륭한 구도나 아이들의 표정과 애정은 담을 여유가 없다. 포커스가 나가지 않은 사진이라도 건지면 다행. 스마트폰의 특성상 빛이 약하거나 움직이는 피사체를 제대로 담아낸다는 것은 무리. 놀이공원이나 외부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을 피해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친다.


“빨리빨리 서봐”

“사람들 없을 때 찍어야 돼”

“여기 봐봐 여기”


찍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찍는 사진이 이쁘게 나올 리 없다. 사랑이 듬뿍 담긴 사진은커녕 다른 사람이 앵글에 들어오기 전에 빨리빨리 셔터를 눌러야 하는 촉박함밖에는 없다. 아이들의 표정은 웃고 있는지 눈을 감았는지 카메라 렌즈를 보고 있는지 따질 겨를이 없다.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한 장이라도 건지려면 무조건 누르고 봐야 한다. 가족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는다기 보다는 이곳에 놀러 왔으니 증거물을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선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아내에게 내밀면 뻔한 대답이 바로 날아온다.


“오빠는 아이들 생각은 안 하고 무조건 누르고 봐”

“애들이 눈을 감았잖아”

“구도가 이게 뭐야”


핀잔의 연속이다. 그래도 나름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찍었다고 자부했는데 아이들의 눈은 감겨 있고, 사팔이가 되든가, 어정쩡한 구도의 사진만 나온다. 스마트폰의 한계라고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오빠는 맨날 그래”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아흐으으 나도 사랑이 듬뿍 담긴 이쁜 사진을 찍고 싶다고요’ 
’ 이상순처럼’ 

와이프의 핀잔에 입속에서 독백만 맴돌 뿐.


이상하게도 정말 정말 와이프와 아이들의 모습을 이쁘게 담지 못해 매번 혼나고 만다. 내가 찍은 와이프의 사진 99%에서 매번 똑같은 멘트가 돌아온다. 


“오빠는 사람을 생각 안 해” 

“무조건 누르지 말고 사람 상태를 보라고”

주인공은 흔들려 알아볼 수 없다




아무래도 내게는 '이상순'이 이효리를 바라보는 사랑의 눈이 모자라서 그런가? 남편이 찍어주는 사진이 가장 이쁘고 마음에 든다는 그녀.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는 와이프의 멘트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보기도 한다. 핸드폰 카메라가 후져서 그렇다고 일단은 장비 탓으로 돌려본다. 사진 감각 없는 사람들이 종종 둘러대는 핑곗거리다. 


‘나도 좋은 카메라만 있으면 잘 찍을 수 있다고’


그럼 '이상순'이 찍은 이효리의 사진에는 있고, 내가 찍은 와이프의 사진에는 없는 것은 무엇 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행동은 똑같다. 다만, 이상순의 셔터에서는 무언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의 카메라는 단순히 피사체를 찍는 기계로 보이지 않는다. 별다른 감정이 담기지 않은 나의 마구잡이 셔터와 이효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엔 감정과 따스한 사랑이 보인다. 그렇다고 나도 내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단순한 동작 하나에 결과물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 


'관심이 부족해서 일까?' 


이상순의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다’가 아니고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의 감정을 기록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내가 누르는 마구잡이 셔터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대로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겠지만, 와이프나 아이들이 만족하고 좋아하는 사진이 될 것 같은 예감은 들지 않는다. 무조건 증거로 남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관심 없다. 오로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우리 집안의 찍새라는 의무감으로 놀러 간 곳의 증거를 남기기 위한 카메라가 된다.


   ‘나도 좋은 카메라만 있으면 잘 찍을 수 있다고’라는 말은 허세에 불과할지 모른다. 


급급한 마음과 일부러 추억을 남기려는 마음만 없다면, 나도 이효리 남편 이상순의 카메라 셔터가 담아내는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다.’


무엇보다도 여유로움과 상대방을 생각하는 감정이지 않을까.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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