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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추격전

갸리365일

by gyaree 2017. 8. 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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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여러분! 우리 버스가 저놈을 쫓아가도 될까요?”


버스 앞부분에서 뽀글뽀글 파마머리 아줌마의 다급히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앞에, 앞에, 앞에” 


그러자 또 다른 양복바지에 반소매 티셔츠 입은 남자 아저씨 승객이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뻗어 외친다.   


“저기, 저기, 저기 있어요.” 


버스 기사 아저씨의 머리가 이쪽저쪽 움직이며 무언가를 쫓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 거 어디 갔지?”


버스 앞부분에 있는 승객 한 사람을 시작으로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 저기 보여요. 저기, 저기” (승객들) 

“저기 신호등에 걸린 거 같아요.”


“요놈 잘 걸렸다.” 라며 기사 아저씨의 발에 힘이 들어가자 “부웅” 소리와 함께 저 앞에 멈추어 서 있는 검은색 스포츠카가 점점 커져간다. 갑자기 속력을 내는 버스. 앞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승객들의 부르짖는 목소리가 하나 둘 이어지더니 뒤에 서 있던 승객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앞쪽으로 이동한다. 



그날도 역시 버스의 제일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나는 항상 버스에 타면 뒷문 뒤쪽에 있는 자리를 좋아해 버스 제일 끄트머리에 앉을 때가 많다. 앞쪽으로 자리가 비어 있어도 앉는 것이 꺼려진다고 할까 앉아도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든다. 솔직한 심정은 어르신들이 들어오면 자리를 비켜드려야 하는 압박감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 있는 사람들이 꽤 보일 정도의 승객은 있었다. 편도 4차선 도로에서 3차선으로 달리고 있던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정차하기 위해 정류장이 있는 4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 시점. 버스가 들어서야 할 곳에 검은색 스포츠카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비키라고 경적을 눌러도 비킬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뭔 배짱으로 외제차는 버티는지 꿈쩍하지 않는다. 택시라면 승객이 그쪽에서 내리기도 하고 태울 수도 있어 조금은 이해하지만, 이놈에 검은색 벤츠 스포츠카는 버스 경적이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결국, 할 수 없이 스포츠카 앞으로 비스듬히 새워 승객을 내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버스 앞문으로 승객이 내리니 스포츠카도 앞으로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부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버스가 핸들을 돌려 다시 3차선으로 나가자 갑자기 속력을 올린 스포츠카가 버스 바로 앞으로 나오더니 천천히 달리며 길을 막아선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열이 받기 시작했지만 승객을 위해서 다른 차선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이놈의 스포츠카 더티 하게 똑같이 버스가 달리는 차선으로 변경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또 길을 막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기사 아저씨 옆에 서 있던 승객들도 이런 광경에 어이없어하며 이제는 승객들도 덩달아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일시에 승객들과 아저씨의 입에서 더는 참지 못해 욕지거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저, 또라이 같은 XXX”

“저놈 뭐야?”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버스에 탄 사람들이 열 받아 욕설을 퍼붓고 있는 사이 스포츠카가 갑자기 멈춘다. 아저씨는 버스의 경적을 울려보지만 움직이지 않는 스포츠카. 할 수 없이 버스를 세우고 기사 아저씨가 그놈한테 따지러 가기 위해 내렸다. 앗 그런데!


“앗, 이런 미친놈이 있나.”

스포츠카 놈의 엔진에서 “쿠앙” 하는 큰 굉음을 내더니 달리는 것이 아닌가! 



기사 아저씨가 다시 버스에 올라 승객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승객 여러분! 우리 버스가 저놈을 쫓아가도 될까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버스 안의 사람들도 어리둥절하다. 기사 아저씨와 같은 심정으로 저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놈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승객들은 저마다 가야 할 곳이 있는 형편. 당연히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승객들은 대동단결!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남자, 여자 구분 없이  


“기사 아저씨, 저 놈 쫓아갑시다.”

“갑시다.”

“쫓아가요.” 

“잡아서 혼구녕을 내줘요.”


정말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운전기사 아저씨의 한 마디에 찬성표를 던진다는 것. 승객들이 탄 커다란 버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은 스포츠카를 쫓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정말 기사 아저씨가 쫓아갈까? 의심 반 재미 반으로 걱정보다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추격전이 시작되는 건가?”


승객들의 동의에 힘을 얻은 버스와 얍삽하고 질 나쁜 스포츠카의 도시 추격전이 시작했다. 

버스 앞부분에 서 있는 승객들은 하나같이 스포츠카가 도주한 방향을 가리키며 기사 아저씨에게 실시간 상황 중계에 들어간다. 기사 아저씨보다도 저 싹퉁머리 없는 놈을 잡아 혼을 내주고 싶은 마음에 응원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제는 뽀글뽀글 파마머리 아줌마가 기사 아저씨 바로 옆에서 서서 코치한다.

“아저씨, 저기 저기 신호등 넘어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어요.” 


승객들의 생중계에 힘을 얻어 기사 아저씨도 조금씩 속력을 내고 급히 따라갔다. 골목으로 우회전했더니 저 멀리 앞으로 스포츠카 꽁무니가 보인다. 다시 스포츠카의 엔진에서 굉음이 나더니 저 멀리 도망간다. 자꾸자꾸 스포츠카가 시야에서 작아져만 간다. 


이번엔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 목소리가 더해진다.


“아저씨, 저기 저기”

“골목, 골목으로 꺾으려고 해요.”  


쿵쿵 쾅쾅 덜컹덜컹 위아래로 흔들리며 버스도 계속 추격하며 달린다. 


그런데 이놈의 스포츠카가 버스가 따라오는 것을 눈치채고 자꾸만 좁은 골목으로 도망친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간 덩치 큰 우리 버스는 더는 따라갈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탄 모든 승객에게서 아쉬움의 탄성이 나온다. 기사 아저씨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어투로  


“자, 이제 우리 버스는 다시 노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호응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노선에서 벗어나서.”


한편 아쉬워하는 승객들의 답장도 이어졌다.


“아유, 저 싹퉁머리 없는 놈을 잡았어야 하는데.”

“아쉽군” 

“아쉬워”

“기사 양반 애썼어요.”


내가 가는 목적지까지 조금은 늦었지만 승객과 기사 아저씨의 일심동체로 아주 익사이팅하고 즐거운 추격전 레이스였다. 아쉽게도 검은색 스포츠카를 잡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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