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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고

갸리365일

by gyaree 2017. 8. 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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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2일 개학.


더위가 끝난 줄 알았는데, 딸내미 손 잡고 가는 아침 등굣길에 내 등을 콕콕 찌르는 햇살. 저절로 등 뒤로 손이 넘어간다. 따끔 따끔 한 부분을 긁는다. “아우 따거” 

그렇게 몇 번을 긁다가 도대체 아침 해가 얼마나 센지 궁금해 힐끔 돌아본다. 당연하다는 듯 아침 햇살은 뜨거운 광선을 발사해 눈꺼풀조차 들지 못하게 한다. 결국,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저 뜨거운 태양을 감히 누가 쳐다볼 수 있겠어.


오늘은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이다. 아이들에겐 슬플 거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딸내미는 어젯밤 설렌다고 말한다. 예전 내가 딸내미 나이였을 때는 방학 끝나기 하루 전날이 너무 싫었다. 방학 동안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되고, 귀찮은 이빨 닦기도 매일매일 하지 않아도 되고, 늦은 시간까지 TV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니 개학이 싫은 것은 당연하다.


“딸내미, 너는 학교 가는 게 좋아?”

“아빠, 나는 학교에 가서 좋아.” 

“내일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아들, 너는 어때?”

“나? 나는…. 그냥 뭐….”

“그냥 뭐가 뭐야?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개학 바로 하루 전날 저녁이 되면 방학 동안의 내 행적 때문에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밀린 방학 숙제라는 큰 바윗덩이가 내 몸을 짓누른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는 그래 봐야 일기 정도다. 이쯤 되면 울며불며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다 내 잘못인데 눈물은 왜 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제대로 된 일기가 써질 리는 만무하다. 기껏해야 두세 줄로 하루 일기가 끝난다. 


“~~ 와 놀았다.”
“~~ 을 먹었다.” 


내 일기의 대부분은 위의 문장으로 끝이 난다. 늦은 밤 이렇게라도 밀린 일기가 끝날 수 있으면 천만다행. 하루하루 일기 내용이 거의 비슷한 복사 붙여 넣기 수준인 그야말로 허접한 일기가 되고 만다. 왜? 이렇게 일기 쓰기가 어렵고 힘든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나의 아들, 딸내미가 쓴 일기를 보면 바로 이해된다. 그 어떤 숙제보다도 하기 싫고 어려운 숙제다. 특히나 책을 싫어했던 나에게는 일기 쓰기가 곤욕이었다.


2017년 여름방학이 끝나는 마지막 날 저녁. 역시나 집안은 시끌시끌하다. 집 현관 번호키를 누르는 사이, 아들내미가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와이프의 울화가 치미는 문자가 들어온다. 이미 상당히 열을 받은 상태라는 것이 문자만 봐도 충분히 전해진다. 며칠 전부터 숙제 다 했는지 점검하라는 와이프의 말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은 아들내미. 아니나 다를까 숙제 검사를 해보니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씩씩거리는 와이프. 아들내미 때문에 머리 위로 ’ 피구왕 통키의 불꽃 슛’처럼 열꽃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일 정도다.


‘어쩌면 내 어릴 적 모습과 그렇게 똑같을까!’ 왠지 내가 혼나는 느낌이 든다. 내심 뭐라 혼을 내야겠는데, 내 초등학교 시절과 똑같으니 아들에게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다. 나의 DNA가 고스란히 아들에게로 넘어갔는데, 내가 어찌 혼낼 수 있겠는가. 열 받은 와이프를 위해 조그마한 목소리로 “어이구 그럴 줄 알았어!”라는 멘트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방학이 끝난 아침 등굣길. 학교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가까이 가면 벌써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시끌시끌. 방학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등에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어도 전혀 무겁지 않다는 듯 있는 힘을 다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오르막길 앞에서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아들내미 친구들. 사내놈들의 시합에서 전혀 꿀리지 않고 입술을 악다물고 절대 질 수 없다는 눈빛을 발산하는 키 작은 여자 꼬마가 눈에 띈다. 사내놈 중 골목대장처럼 보이는 아이의 여동생은 키는 작지만 결국 그 레이스에서 1등을 한다. 매일 아침 딸내미 등굣길에서 보는 광경이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뜀박질에 집념을 담아 매번 1등을 한다. 나도 모르게 작은 꼬마 여자아이에게 응원하게 된다. 레이스 하면서도 여자아이 오빠는 “쟤는 도대체 이길 수가 없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방학 내내 조용했던 오르막길 앞이 다시 달리기 트랙으로 바뀌는 날이다. 


“이놈들 다시 돌아왔구먼!”

“오늘도 달리네!”

“달려라 달려!” 

혼잣말로 응원의 목소리를 더한다. 


방학 동안 나 혼자만의 길이었던 아침의 학교 오르막길 근처. 시끌벅적하지만 조용하고 스산한 아침 출근길보다 활기가 느껴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좋다. 딸내미와 오르막길에서 해어지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는 길. 이상하게 이날은 도로에 자동차도 더 많아 보인다. 아이들이 개학했다고 더 많은 어른이 출근하는 것도 아닐 텐데. 정류장 근처에서 유치원에 가기 싫은 남자아이는 엄마 손에 질질 끌려 울면서 딸려간다. 방학이 끝나서 좋아하는 딸내미와는 다르게 방학이 끝난 것이 싫다는 이유를 몸소 느끼게 해준다. 정류장에도 방학 동안 보이지 않았던 엄마 손을 잡은 유치원 아이들과 교복 입은 중학생들로 북적댄다. 


“아, 오늘 버스 안은 또 꽉 차겠군.”


시끌시끌한 아침 출근길이 적막했던 방학의 정류장보다 활기 넘쳐 나에게도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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