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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라인의 굴욕

갸리365일

by gyaree 2017. 7. 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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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리버스 365일


저 멀리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올라타는 모습이 보인다. 어젯밤 내린 눈은 아침에 기온이 더 떨어져 길바닥의 보도블록을 얼음판으로 만들고, 특히 정류장까지 가는 통로는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라서 더 꽁꽁 얼어붙었다. 저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뛰어야 하는데 미끌미끌한 길을 뛰어야 할지 말지 순간 갈등이 일어난다. 저 버스를 놓치면 오늘처럼 어깨까지 오그라들고 온몸이 경직되는 추위에 벌벌 떨며 2~30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노선버스는 자주 오는 편인데 유독 내가 타는 버스만 배차 간격이 들쭉날쭉. 내가 버스에 앉아서 가느냐 서서 가느냐는 나와 버스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버스의 뒷문과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 9할 5푼 이상은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다. 이 편안함을 위해 지각을 각오해야 할지. (아침엔 내리는 승객이 없어도 뒷문 열어 주는 기사님이 많다.)


그런데 오늘같이 멀리 있는 버스에 타려고 달려드는 날엔 역시나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스트레스받는 출근 버스가 된다.


아! 이게 뭐라고 후회가 밀려든다. 그냥 기다렸다 다음 버스에 탈걸…


만원 버스의 동그란 손잡이가 내 볼에 닿는다. 사람들에게 쪼이고 밀리다 보니 나의 두 발은 점점 가까워져 거의 붙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그렇게 계속 밀리다 보면 어느샌가 둥그런 손잡이 안으로 내 양쪽 눈이 다 들어오고 묘하게 작은 손잡이 안으로 보이는 바깥의 풍경이 망원경을 통해 보는 기분이 든다. 이젠 망원경이 된 손잡이 링을 잡고 살짝살짝 방향을 틀어 본다. 흔들리고 빽빽한 버스 안에서 망원경 놀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그나마 불편한 자세를 피하려고 목을 살짝 왼쪽으로 기울이고 손잡이를 오른쪽 얼굴 바깥으로 밀어 보지만 내 얼굴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오른쪽 얼굴에 계속 걸쳐 있는 그림이 연출된다. 기사 아저씨가 급브레이크를 밟기라도 하면 발은 제 위치에 있고 손은 천장 봉을 잡은 상태에 상체만 떠밀려 자연스럽게 S자 몸이 된다. 발이라도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허리라도 덜 아플 텐데, 옆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의 몸은 점점 휘어지고 짜증 나는 승객들의 탄성이 터진다. 이놈에 S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숨 막히는 공간 때문에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다.


하아! 또 한 번 후회가 밀려온다. 다음 버스에 탈걸…


이대로 내릴 때까지 둥근 손잡이는 내 얼굴 오른쪽에 걸쳐있다.


이래서 아침 출근 저 멀리 버스가 오면 갈등이 시작된다.   


S 라인을 얻고 지각을 면할 것이냐? 다음 버스로 편안하게 좌석에 앉아 지각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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