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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 수업 - 최옥정

책소개/자기계발

by gyaree 2019. 4. 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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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정

글 속에 답은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스스로 묻고 대답하다 보면 그 문제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흥미로운 여정을 직접 발로 걸어보는 것,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글쓰기다. 사느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중요한 순간들, 언젠가 다시 만나야지 하면서 지나쳐버린 사람들, 이번 생에 이룰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버리지 못한 꿈들이 하얀 종이 위에 오롯이 존재를 드러낸다. 치유나 성찰, 감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쓰는 행위 자체로 치유가 되며 읽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나 역시 실수투성이의 인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나서서 변호해주는 것이 인문학의 정점인 글쓰기다.

"머릿속 콘텐츠는 어떻게 원고가 되고 원고는 어떻게 책이 되는가?"

 

 

 

 


어느 날 오십 세가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날 오십 세가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날'이라는 무서운 말이 있다. 어느 날이 내 인생에 찾아온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어느 날이 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었던가. 가장 가까운 날은 언제였던가. 마흔아홉 살을 뒤로 하고 쉰 살이 된 어느 날,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꼈다. 더 이상은 젊지 않고 무엇이나 생각나는 대로 저지를 수도 없는 나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깊은 잠을 자던 밤, 갑자기 눈을 뜨고 어둠을 바라보다 다시 잠들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내 앞에 놓인 생이, 어렴풋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는 나의 미래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여축없구나. 도망갈 수 없구나. 앞으로도 알량한 몇 가지 능력을 가지고 애써 삶을 꾸려가야 한다. 그렇다 해도 행복하거나 평안한 인생을 보장받을 수 없겠지.

이 깨달음 앞에서 특별히 고통스럽거나 절망스럽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던 거다. 예감하고 있었고 몸으로도 실감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올올이 낱낱이 실체와 대면한 것이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정면으로 바라보고 나니 답을 찾은 듯 마음이 한갓졌다. 알았으니 이제 그대로 살면 된다. 오십이 넘으면 몸도 바뀌고 마음도 바뀌고 정신도 바뀐다. 늙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보았던 내 미래의 모습은 가끔 나를 찾아온다. 어깨가 구부정하고 조금은 겸손해진 채 삶을 두려워하면서도 완전히 투항하지는 않았다. 죽을 때까지 손에 꼭 쥐고 갈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는 나를 데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하루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하루의 무게를 느낀다. 시간과 공간의 결을 섬세하게 느끼는 감성도 갖게 되었다.

언덕을 넘어섰다. 돌아갈 길은 없다. 다른 언덕이 또 기다리고 있고 이따금 다리를 쉴 수는 있지만 꾸준히 가야 한다. 두렵지 않다. 그동안 살아온 맷집이 있는데 새삼스럽게 엄살떨고 싶지 않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을 낱낱이 기록하리라. 몇 년 후 펼쳤을 때 쿵 내 가슴을 칠 이 사연들, 속내들을 놓치지 않으리라. 그것이 내 삶을 사랑하는 나의 방식이다.


 

 

 


내 나이도 어느덧 오십 세.

링 위에 올라가 1라운드 인생도 제대로 뛰지 못했는데 벌써 2라운드 인생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다. 내게도 언젠가는 들이닥칠 '어느 날'. 그 어느 날이 두려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깊은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눈이 떠지는 밤이 잦아진다. 이것도 나이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최옥정 작가가 말하는 '어느 날'의 의미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작가의 말처럼 내게도 '어느 날'은 무섭다. 두렵다. 어두컴컴하다. 언뜻 떠오르는 단어는 대부분 부정적인 느낌뿐이다. 나의 1라운드 인생이 멋지게 꾸려졌다면 아마도 '어느 날'은 어릴 때 보았던 가을 하늘, 푸르다 못해 아주 진하게 파랬던 하늘. 깊고 높은 공간감을 주던 그런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강렬했던 파랑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칠해지지 않았을까. 

 

캄캄한 새벽 자꾸만 눈이 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몸이 예전만 못해서. 체력과 기력이 떨어져서. 물론 그 부분도 간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내 앞에 놓인 생이, 미래가, 무서운 '어느 날'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가시들이 돋아나는 느낌 때문이다. 해답은 정해져 있다. 무엇 하나 준비해놓은 것 하나 없는 1라운드 인생.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적자투성이 1라운드 인생을 메꾸기 위해서는 2라운드 인생을 잘 꾸려야 한다. 살아 있다면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어느 날'은 다가온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느 날'은 지금 나의 이야기다. 물론 여러분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쉰 살이 아닌 오십 세라고 말하는 최옥정 작가. 2라운드 인생을 멋지게 펼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글로써 다음 생을 준비하는 것이 그나마 좋은 선택지라고.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돈 들지 않는 작업. 1라운드에서 많은 적자를 낸 인생이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작가는 여기서 해답을 제시했다. 아주 간단하다. '꾸준함' 꾸준함이라고 미리 정답을 가르쳐준다. 이 꾸준함에 대해서는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도 그의 저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무엇이든지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해답 안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간단 명료한 걸 알면서도 참 실행하기가 어렵다. 나는 꾸준하게 금방 포기해왔다. 포기만큼은 꾸준했다. 이것저것 시작도 빨리했다가 포기도 시작만큼 잽싸고 속도는 그것에 배는 더 되는 삶이었다.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으니 두렵기도 했고, 이것을 끝까지 해야 하는가. 수없이 많은 의문의 들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미래의 나에게 이득이 있을까?'라는 의심은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지속성이 결여된 도전을 시작한 채로 꾸준히 밀고 나가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성찰을 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과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지 말고 꾸준하게 밀고 나가기.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 버리는 나의 인생이 싫다면 글을 써야 한다. 글로써 허무하게 흘러가 버리는 인생과 생각, 감정을 붙들어 맬 수 있으므로.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글로써 남겨 놓지 않은 생각은 허상에 불과하다. 오십 가까이 인생을 살아왔지만 정작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렁찬 목소리로 답할 자신은 없다. 순간순간의 삶을 어딘가에 적어놓았더라면, 글쓰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런 후회들은 몇십 보따리는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잘 못 쓰는 글이라도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적어놓는다면 먼 훗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찾고자 했던 해답 안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서 2라운드 인생에 활발한 기운을 불어넣는 연료가 될 수 있으리라 상상한다.

 

이 책은 나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다시 사는 인생의 가르침을 주었다. 여러 글쓰기 책을 읽었지만, 이 만큼 울림을 준 책은 없었다. 저자가 세상을 빨리 떠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금 더 최옥정 작가의 글과 말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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