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석촌역 사거리. 오랜 기간 지하철 공사의 여파로 인도가 없어진 지 오래. 아직도 교차로 바닥은 직사각형 철판으로 덮여 있다. 철판 사이사이로 공사 중인 땅바닥 아래가 드문드문 보인다. 교차로 횡단보도 근처에는 족히 건물 5층 높이는 돼 보이는 커다란 크레인 서너 개가 철근을 나른다. 그 바로 아래에서 안전모를 쓴 아저씨 홀로 통행하는 사람들에게 비켜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혹시나 저 기다란 철근이 내 머리를 때리지나 않을까 횡단보도 앞에 서 있어도 크레인으로 시선이 꽂힌다. 내가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안전모를 쓴 아저씨의 사인만 가지고는 믿음이 안 가 내 시선이 그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
저녁 6시 45분. 아직은 한참 더울 때라 겨울 하늘처럼 컴컴하지 않고 밝은 저녁.
공사 중인 석촌역 1번 출구 옆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서 있다. 버스를 타려면 이 횡단보도를 건너 한솔 아파트 앞으로 가야 한다. 어제 비가 내려서 인지 하늘이 깨끗하다. '아, 그냥 깨끗하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하던 중. 내 옆에 서 있는 어림잡아 60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 백발과 검은색이 섞인 머리, 등은 이미 땀으로 반쯤 젖어 하얀색 반소매 티셔츠에 살갗이 비쳐 보인다.
잠시 뒤 핸드폰을 꺼내더니 하늘을 찍는다. 그냥 비가 와서 깨끗하다고만 생각했던 하늘인데, 아저씨의 핸드폰을 따라 하늘로 고개를 드니 나도 모르게 "우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저씨가 찍는 하늘이 핸프폰 액정에 나타난다. 나도 덩달아 그 핸드폰 액정으로 시선이 따라간다. "찰칵찰칵" 아저씨의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은 핸드폰 셔터음이 바로 옆 내게도 들린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사람들이 건너간다. 나도 횡단보도를 거의 건너가고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다. 아저씨는 아직도 횡단보도 중간에 서 있다. 신호가 바뀌면 바로 달릴듯한 기세로 엔진을 달구며 멈추어 서 있는 승용차와 버스들. 신호등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 바로 앞에 서서 하늘을 찍고 있다. 횡단보도 중간에 버티고 서서 하늘을 찍는 아저씨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똑같은 하늘을 보고도 나는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을까?'
미세먼지가 심한 서울에서 이런 하늘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내겐 감성이 부족한 거야" 저렇게 이쁜 하늘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고 마니.
아저씨가 찍은 하늘이 너무 이뻐 나도 같이 따라서 찍어보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의 카메라 아이콘을 눌렀다. 그런데 왠지 아저씨가 근처에 있어 따라 찍는 행동이 창피하다. 다시 카메라 앱을 닫는다. 횡단보도를 빨리 뛰어나와 아저씨와 멀어져 안 보이는 곳까지 갔다. 다시 카메라 앱을 켰다. 이렇게 소심한 하늘 사진 한 컷이 내 핸드폰에 담겼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솜사탕 하나를 두고 서로 먹겠다는 아이들의 티격태격 쟁탈전. 기어이 동그랗고 커다란 솜사탕을 길게 잡아당긴다. 아이들이 잡아당긴 솜사탕을 하늘에 뿌렸을까. 파란 하늘 한켠에 자리 잡은 솜사탕 구름. 가느다란 하얀 솜사탕 실타래 사이로 보이는 파란색 저녁 하늘. 그리고 우주 왕복선이 지나갔을까? 하얀 연기 자국 구름이 가늘고 길게 이어진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노을빛에 아파트는 노란색으로 물든다.
탄천의 노을
버스를 타고 탄천을 건너 학여울 방향으로 가는 도중. 타이밍 좋게 노을이 저 멀리 고층 건물 꼭대기에 걸려있다. 횡단보도에서 하늘을 찍던 아저씨의 여운이 남아서 일까.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재빨리 핸드폰 카메라 ON!
"찰칵찰칵"
"찰칵"
다리를 건너는 사이 건물 뒤로 숨은 노을. 나와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는 듯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한다.
노을빛이 들어온 버스 안은 사이키 조명이 깜빡 깜빡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고 이쁜 물건을 보았을 때, 혹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을 때 "아, 이쁘다!" "아. 아름다워라!"처럼 말로 그치지 말고 한 번쯤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보자. 비싸고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도 좋다. 이런 순간의 포착이 말 한마디보다 아름다움이 오래 지속되고 여운이 남는다. 물론 아름다운 경치는 카메라의 액정에 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긴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찰나의 짧은 시간으로 지나간다면 사진으로 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름 모를 아저씨가 보여준 예상치 않은 장소에서의 한 컷이 내게 많은 울림을 준다.
'왜, 똑같은 하늘을 보고도 나는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