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의 향기가 난다.
이렇게 가끔 버스 회사에서 새로 장만한 새 버스를 탈 때가 있다. 오래돼 퀴퀴한 냄새가 아닌, 새로 산 플라스틱 제품의 봉지를 뜯었을 때 풍기는 시큼한 플라스틱 냄새가 진동한다. 만원 버스에서 벗어나 다른 버스로 갈아탔는데 새 버스를 만나면 조금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플라스틱 냄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찌든 내 뿜는 오래된 에어컨 냄새보다는 나으니까. 구형 버스들은 제일 뒷자리에 하차 벨이 없다. 제일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벨을 누를 필요도 없다는 얘긴 건지. 나는 버스를 타면서 제일 불만스러웠던 것이 바로 제일 뒷자리에 하차 벨이 없는 것이었다. 하차 벨이 없다고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제일 뒷자리만 차별받는 듯한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다. 그게 뭐라고, 그냥 벨 하나 설치하면 끝나는 문제인데. 그렇지 못하다.
음 스멜! 신차에서 퓽기는 플라스틱 냄새
오늘 만난 신차에서도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구멍을 틀어막으려 왼쪽 위로 올려다봤다. 에어컨 통풍구 바로 옆에 하차 벨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반갑다!' '반가워!'
참, 사소한 것에 반갑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사소한 것이 지금까지 많은 버스에 없었다는 사실. 하차 벨 하나가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반론을 들어 100% 이해시킬 수 없다. 그런데 나의 버스 타는 습관을 예로 든다면 나에겐 크나큰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버스의 앞자리에 빈자리가 나도 앉지 않는다. 대부분 제일 뒷자리에 앉는다. 만약 뒷자리가 꽉 차고 바로 앞자리에 빈 곳이 있으면 앉기도 한다. 그러니까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제일 뒷자리의 양쪽 끝단이고, 그다음이 바로 앞자리가 된다.
버스 제일 뒷자리 하차 벨
버스 좌석에는 어떤 사람이 앉을까?
버스의 제일 앞부분.
기사 아저씨 바로 뒷자리와 바로 오른쪽 자리는 노약자석은 아니지만 거의 아저씨, 아줌마 또는 새파란 젊은이들이 차지한다. 버스 앞바퀴 바로 위에 있다 보니 나이 많은 어르신이 올라앉기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서너 줄이 노약자 배려석.
노란색 비닐 커버가 씌워진 의자가 있는 자리다. 이 자리엔 절대 앉지 않는다. 다른 자리는 다 차 있고 나 혼자만 서 있어서도 이 자리가 비어있는데도 앉지 않는다. 가령 앉는다 해도 노약자 배려석이라 써 붙인 노란색 시트가 내 등을 떠미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용기가 있는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새파란 젊은이들은 노란색 시트에 철썩철썩 잘도 앉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내가 꼰대가 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른들의 시선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 앉을 용기가 없다. 나도 이제 중년인데…….
자 그럼, 버스에서 남은 자리는 뒷문 후반부가 남는다.
이 자리는 누가 많이 앉을까? 특히 뒷문 바로 앞자리.
일단 노약자석에서 밀린 어르신들이 후보다. 노약자석이 꽉 차고, 앉을 곳이 없으면 주로 애용하는 자리가 뒷문 단말기가 붙어 있는 자리다. 내릴 때 가장 편리한 곳이기도 하고 교통카드를 찍기 아주 좋은 자리라 말할 수 있다. 유치원 아이를 동반한 어른이 같이 앉기 좋은 자리로 추천한다. 만원 버스에서는 특히 내릴 때 힘들어서 어린아이와 함께 탄다면 이 자리가 제격이다.
후반부 중 제일 뒷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두서너 줄.
이곳은 주로 20~50대까지 앉을 수 있는 자리라고 본다. 남녀 가리지 않고 그나마 맘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는 자리다. 서 있는 사람도 자리가 비면 앉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비좁은 통로가 있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버스 전반부는 자리가 비면 앉으려는 경쟁자가 많은 반면, 이곳은 통로가 비좁아 경쟁자가 기껏해야 한 명 정도. 그 한 명만 제치면 내 자리가 된다. 제일 뒷자리가 만석이면 나의 두 번째 선호하는 자리는 바로 이 좁은 통로가 된다.
드디어 대망의 버스 제일 뒷자리.
하차 벨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이 뒷자리가 뭐가 좋으냐고?
"음……. 넓다."
"내 키는 178."
"대한민국 남성 치고는 작은 편은 아니다."
그만큼 다리도 짧지 않다는 것. 다른 자리에 비해 두 다리를 쫘악 펴지는 못해도 조금은 더 뻗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다음은 특히 남자들은 잘 들어라!
어느 정도 쩍벌남이 허용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렇다고 남자끼리 붙어서 ‘쩍’ 벌리면 싸움 난다. 주의 요망!
세 번째, View가 좋다.
나의 뒤통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모든 사람의 뒤통수를 볼 수 있게 높은 곳에 위치한다. 버스 안의 모든 것이 보여서 좋다. 간혹 버스 뒤로 어떤 풍경이 보이는지 고개만 돌리면 확인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 이것이 내가 이 자리에 앉는 이유다.
어르신 눈치 보지 않고 맘 편안히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것. 양 끝에 앉으면 바로 앞에 어르신이 있어도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 굳이 자리 양보를 하려면 다리 한쪽 들이밀 공간 없는 옆사람을 뚫고, 허리와 머리를 숙이는 불편한 자세를 취하면서까지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어르신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 자리 양보가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가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자리는 “이놈, 늙은이가 서 있는데 감히 네놈이 안 일어나!” 하는 눈총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이곳엔 하차벨이 없다.
몇몇 버스에는 있지만, 신형 버스보다는 낡은 버스가 더 많아 없는 경우가 많다. 오늘처럼 바로 왼쪽에 하차 벨이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생각지도 않은 득템을 얻은 기분이 든다. 이곳에 하차 벨이 있으면 마음이 가볍다. 내가 내릴 곳이 가까워지면 언제든지 편안히 누를 수 있다. 내게는 하차 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심적인 안정감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내리는 곳에서 하차 벨을 누르기 위해 허둥지둥할 필요도 없고, 혹시나 졸다가 지나칠지 모르는 짧은 순간에 잠이 깨도 재빨리 기사 아저씨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버스를 타며 항상 불만 아닌 불만이었던 제일 뒷자리 하차 벨의 유무.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벨 하나에 불과하다. 왜 이런 벨이 그동안 제일 뒷자리에 없었을까? 의문이 든다. 다행인 것은 이제는 조금은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어떤 버스에는 뒷문에 두 개 붙어있는 교통카드 단말기 중 하나는 버스 뒤쪽으로 향하고 있는 때도 있다.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에게 이런 조그만 배려 하나가 상당히 편리함을 준다. 보통은 단말기 화면이 앞쪽으로 향하고 있어 교통 카드를 찍는 것이 불편할 때가 많았는데. 마찬가지 버스 제일 뒷자리에 붙은 하차 벨은 누군가의 승객에게 많은 만족감을 준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