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부부에게 작지만 아주 큰 첫 발을 내딛는 일요일 오후였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동네 카페에서. 이렇게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 뒤에 예전의 일이 스쳐 지나간다.
결혼하고 7년 만에 아이들이 태어나고, 백일이 지나고, 첫 돌이 지나고,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가고, 겨우겨우 3학년이 되었다.
병원에서 멘탈 붕괴
아이들이 태어난 삼성의료원의 시스템은 보호자에게는 극악무도한 환경이었다. 2.6kg, 2.8kg 의 쌍둥이가 태어나던 날. 간호사들이 쌍둥이를 목욕만 시키고 와이프가 누워있는 침대로 데리고 온 건 불과 두서너 시간 뒤였다. 처음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패닉에 가까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능수능란하게 갓난아기를 다루는 간호사들의 아기 다루는 솜씨에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다. 두 명의 간호사의 양 팔에 완벽한 자세로 감싼 하얀색 포대기 안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 살며시 와이프의 침대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간단한 설명이 이어진다. 지금부터 우리 두 부부가 이 아이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의 아이니까 우리가 돌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빠가 처음인 내게는 청천벽력과 같다.
"허걱!"
"뭐라고!?"
"이런 갓난아기를 우리가 돌봐야 한다고?"
"병원에서 해주는 거 아니었어!?"
"와이프는 침대에 누워있으니 내가 전적으로 돌봐야 한다고. 그것도 둘이나....."
간호사가 가르쳐 준 것은 단지 아기를 안는 방법뿐이었다.
"한 번 해보세요. 조심조심"
"두 팔을 아래로 내밀고."
얼떨결에 내 두 팔을 아래로 뻗었다. 왜 그렇게 덜덜 떨릴까. 잘못해서 아기를 떨어뜨릴 것 같은 무서움이 엄습했다. 저렇게 조그마한 생명체를 조심스럽게 안아야 하는 과제 앞에서 온 몸이 달달달 떨렸다. 절대 실수는 용납될 수 없는 상황. 간호사가 안은 것과 똑같이 아기에게 안정감을 줘야 한다.
"양손을 아래에 잘 받치고, 아기의 목 부분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켜야 해요."
"좋아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 2.6kg의 무게감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무거웠다. 기껏해야 아령 하나밖에 안 되는 아기가 내 두 팔을 덜덜덜 떨게 할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잘못해서 다칠까 걱정이 앞서며 이마에 진땀이 흘러내렸다. 아기를 싼 하얀 포대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힘줄이 터질 만큼 나의 모든 근육에 힘을 실었다. 아기를 처음 본 아빠의 기쁜 감정보다는 이 작은 생명체를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 막막함이 앞섰다. 이렇게 아빠로서의 위치는 이틀 밤을 새우며 쌍둥이와 침대에 누워있는 와이프를 살피며 다크서클이 짙어지며 시작됐다.
이곳은 천국이야!
2주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들어간 산후조리원.
이곳은 나에게 천국이었다. 아기들은 저 너머 유리창에 있는 아기 전문 케어실에 있다. 2~30명의 아기가 바퀴가 달린 케이스에 곤히 잠들어 있다. 아기들을 돌보는 여자들은 엄마에게서 짠 모유를 조심조심 아기가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엄마 모유를 다 먹은 아기는 등을 슬어내리며 트림도 시켜주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병원에서 모든 걸 내가 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이곳은 정말 천국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저 유리창 밖에서 지켜보며 아기가 눈을 떴는지, 잠을 자는지 확인만 하며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
다시 지옥으로
천국이었던 2주 산후조리원을 끝내고 다시 지옥의 시작.
역시 돈은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는 진리는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산후조리원을 나와 이제는 정말 우리 두 부부만이 이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첫걸음이 시작됐다. 집안 사정상 양쪽 집의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을 처지가 아니어서 외로운 육아는 시작됐다. 쌍둥이를 살피는 일은 나에게 와이프에게도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젖을 먹는 시간이 일치하지 않은 쌍둥이는 두 시간 텀으로 수유를 해야 했다. 하나가 먹고 잠들면 한두 시간 지나 또 하나가 밥 달라고 칭얼대기 시작. 밤새 내내 잠을 자지 못하고 두 명에게 번갈아 가며 두 시간마다 젖을 줘야 하니 와이프나 나나 피골이 상접하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짜도 짜도 잘 나오지 않는 모유를 짜내기 위한 처절하고 힘든 시간. 차라리 하나였으면 하는 생각이 매시간, 매분, 매초 잦아지는 것은 나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힘들어 산후 우울증 증세도 있었던 와이프. 오로지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우울증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는 생활. 회사 동료가 아이 하나 키우는데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꺼내다가도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쏙 들어간다. "쌍둥이는 정말로 힘들다." 누구의 도움 없이 엄마 아빠 홀로 키운다는 것은. 특히 와이프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홀로 쌍둥이를 돌보느라 나보다 갑절 이상은 힘들고 지친 시간의 연속이다.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는 와이프의 넋두리. 돈 잘 버는 남편이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과 나 또한 힘든지라 따뜻한 위로의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뭐라 할 말이 없고 미안하기만 하다.
탈출할 수 있을까?
이렇게 쌍둥이는 백일이 지나고, 돌이 지나 유치원에 갈 나이까지 무사히 자랐다. 물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우리 둘만의 힘으로 버틴 시간이다. 최근 '효리네 민박'에서 2박 3일 휴가로 온 2년 차 신혼부부가 부럽다. 아기는 부모님에게 맡긴 채 단 둘이만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에 왜 그리도 부러운지. 우리 부부는 그런 형편이 아니라서 더더욱 부럽기만 하다. 아니, 그런 그림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현실이 더 분하고 얄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을 하루가 됐건, 몇 시간이 됐건 봐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10년이 흘렀다.
이 10년 동안 아이들만 남겨놓고 우리 부부 단 둘이서 외부에 나가본 적은 없다. 단 둘만의 시간은 결혼 후 6년 만에 끝이 났다.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고 기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없는 둘만의 또 다른 행복한 시간을 누려보고 싶다는 작은 열망. 이것이 욕심이라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 결혼 전에 누렸던 그 흔한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이 10년이라는 시간의 창고에 가두어 두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10년을 열지 못한 채 잠가두었던 우리 부부의 추억상자. 이젠 자물쇠를 풀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어디에 놓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열쇠를 겨우겨우 찾아 자물쇠 구멍에 꽂아본다.
"철커덕" 창고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나와 와이프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아이들에게 한 마디!
"너희들 숙제하고 있어."
"엄마 아빠 잠깐 바람 쐬고 올게."
바닐라 라테 & 아이스 아메리카노
10년 만의 외출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렇게 찾아간 곳은 동네 개천 너머에 있는 화원을 개조한 카페. 동네 밖을 벗어나는 것은 첫발을 디딘 우리에겐 아직은 무리. 간편한 차림으로 카페에 도착해 문고리를 잡았더니 열리지 않는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카페가 문을 닫았다. 위풍당당하게 아이들에게 바람 쐬고 오겠다고 한 기세는 바로 꺾이고 말았다.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다.'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저쪽에 가면 일요일에도 오픈한 카페가 있다는 와이프의 말을 따라 슬리퍼를 신은 둘의 발걸음이 떨어졌다. 다행히 고맙게도 카페 하나가 문을 열어놓았다. 이렇게 반갑던 카페는 내 인생 처음이다. 문 밖 의자에 앉아있는 커플을 빼고는 카페 안은 주인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실내 반은 흡연실이 마련된 오히려 비흡연 공간은 더 작은 카페. 5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점원이 돌아와 바닐라 라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10년 만의 탈출에서 얻은 보상은 라테와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충분했다.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어서 맛이 아니라,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기분이 든다.
와이프의 목소리에서 즐거운 마음이 보인다.
"오빠, 이렇게 걷는 것만도 좋아."
아무 볼품없는 동네 한 바퀴. 슬리퍼 질질 끌고 아이 하나 뛰어놀지 않는 조용한 골목을 돌아 돌아 찾은 자그마한 카페. 거창한 해외여행이 아니어서 미안하고, 무드 있는 호텔 커피숍의 비싼 커피가 아니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 3.500원짜리 라테 한 잔에 즐거워하는 와이프.
| 아이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로 우리의 10년 만의 탈출은 고작 두 시간에 끝났다. |
바닐라 라테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찾은 자유. 엄마 아빠를 위해 두 시간을 참아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