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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세상에 이런 의사가 어딨어!

책소개/소설

by gyaree 2017. 9. 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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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奥田英郎]


공중그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라부 이치로' 정신과 의사다. 샤프하고 엘리트의 느낌은 하나도 없는 거구에다 뚱뚱하고 배 나온 의사. 세상에 이런 의사가 세상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괴상한 인물이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에게 독특한 치료와 처방을 내린다. 현실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상황을 만들어 간다. 야쿠자, 서커스 단원, 야구 선수, 동료 정신과의, 베테랑 작가가 이라부의 병원을 찾는다. 다섯 명의 인물은 각자의 고민이 심각해 병원을 찾지만 이상한 의사에게 이상한 처치를 받아 병을 고치는 건지 의심을 하게 된다. 야쿠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라부, 서커스단에 입단해 공중그네를 시연하는 이라부, 프로야구 선수와 야구를 하는 이라부, 동료 의사와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이라부, 작가가 되겠다고 떼를 쓰는 이라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병원에 방문한 환자를 의사로서 대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 같이 즐기는 주인공을 보게 된다.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 말 한마디 하기 싫어서 빨리 쫓아내려는 의사를 수 없이 만났다. 의사에게 병의 원인이 무언지 물어보고 싶어도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어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쫓겨나야만 했던 병원들. 정작 아파서 찾은 병원에서 마음의 병만 얻어 나오는 꼴이었다. 이라부는 다르다. 자기 환자의 상황을 직접 같이 느낀다. 가슴에 청진기만 대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통의 근원지를 찾아 같이 즐긴다. 절대 치료하는 개념은 없다.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들이 보통 사람들에겐 정말 이상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나도 "저런 의사가 어딨어."라는 말이 나오게 하니. 그런데 병든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고쳐주는 이라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이 이야기에 나오지 않은 다른 병이 있는 사람이 이라부를 찾았더라면 과연 어떤 처방이 내려질까?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인물이지만 꼭 현실 어딘가에는 이런 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판타지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이라부의 단짝인 간호사 '마유미 짱'의 섹시한 옷차림과 무조건 찌르고 보는 주사는 웃음을 준다. 의사 자격증이나 있을까 싶은 이라부와 간호사 자격증이나 있을까 싶은 마유미 짱의 환상적인 조합도 이 이야기의 묘미다. 



페이지 30 / 고슴도치

"야쿠자 일이라는 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은 거잖아. 항상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그런 일은 누구든 지치게 마련이니, 그 반대급부로 끝이 뾰족하거나 예리한 물건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됐는지도....."

"선생님, 사람 우습게 보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물러터지진 않았다구요."

"실은 둥그스름한 물건을 좋아하는 스타일인지도...."

"이거 보세요, 여중생이 아니라구요."

'선단 공포증' 뾰족한 물건을 보면 두려움에 떠는 증상. 야쿠자 중간 보스인 세이지. 어느 날부터 뾰족한 물건만 보면 땀이 흐르고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야쿠자 체면이 말이 아니다. 빌려준 돈을 받아내는 데는 선수다. 포악한 말씨와 칼끝을 들이미는 행동이 매일매일의 일과. 이런 야쿠자가 칼이 무서워진다. 아니 뾰족한 연필심만 봐도 심장이 벌렁벌렁.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아 괴상한 의사 이라부를 만난다. 항상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야쿠자의 특성. 자신의 약한 속내를 숨기고 뾰족한 침을 들어내는 고슴도치와 같다고 말하는 의사 이라부. 이런 야쿠자를 전혀 겁내지 않은 의사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겁은커녕 힘으로 제압당해 뾰족한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다. 명색이 야쿠자 중간 보스인데.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의사에게 끌려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야쿠자의 상담사가 되어 버린 의사 이라부. 


  

페이지 61 / 고슴도치

"블랭킷..... 증후군?"

"그래. 스누피 만화에 늘 담요 끌고 다니는 라이너스라는 남자애 나오지. 거기에서 생긴 명칭."

세이지의 동거녀가 상대파 구역에 룸살롱(클럽)을 오픈하려다 상대파에게 들통이 난다. 상대파 야쿠자 요시야스와 담판을 지으려 만나게 되는데... 혹시 벌어질지 모를 칼부림을 대비해 의사 이라부에게 부탁해 거물 야쿠자인 양 위장하고 동행한다. 서로의 몸수색을 하고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은 저 멀리 치운다. '블랭킷 증후군' 라이너스가 담요가 손에 없으면 불안해서 견디질 못하는 것처럼, 요시야스도 칼이 자기 몸에 없으면 불안해서 안정하지 못한다. 담판을 지으려 만난 야쿠자 둘. 한 사람은 선단 공포증, 한 사람은 블랭킷 증후군. 약점을 들어내는 순간 뒤로 밀리는 것이 야쿠자의 습성이라 약점을 숨기려 하지만 들통나고 만다. 그래도 같은 처지에 있는 세이지와 요시야스는 의사 이라부틀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블랭킷 증후군에 좋은 약이 있다며 요시야스에게 너스레를 떠는 이라부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다.  


페이지 79 / 공중그네

"중요한 건 훈련입니다. 지상 5센티미터 높이에서 건너는 평균대를 지상 10미터에서도 건널 수 있느냐, 그게 일반 사람과 서커스 단원의 차이니까 넘어서야 할 건 기술이라기보다 오히려 공포감이라고 해야겠죠."

서커스의 꽃인 공중그네를 도전하겠다는 100kg 거구의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일반인이 공중그네를 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서커스단의 최고참 고헤이는 말한다. 중요한 건 훈련. 공중그네를 하기 위해선 기술도 중요하지만 먼저 공포감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이 공포감은 꾸준한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일에 부닥치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익숙하거나 잘 해내는 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새로운 상황이 닥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만 할 때, 두려움과 공포감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에 따라선 낯설고 새로운 일이라도 거뜬히 해내는 이가 있고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늘 해왔던 대로 나에게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두려움과 공포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훈련으로 가는 한 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장롱면허가 딱 이 경우에 어울리는 예가 아닐까. 자동차 운전을 잘 하기 위해선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주변 상황도 신경을 써야 하고. 앞쪽만 봐서는 안 되고 주의 깊게 챙겨야 할 사방이 존재한다. 당연히 기술을 익혀야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먼저 두려움과 공포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한 제1의 전제조건은 '훈련'. 꾸준한 연습만이 두려움을 떨쳐내는 길이라는 것을 머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두려움의 세포가 연습, 훈련 세포를 꼼작 못하게 잡아놓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단순히 겁쟁이라 표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가는 연습, 훈련 세포가 두려움 세포를 짓누르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페이지 107 / 공중그네

"뭐, 그러면 또 어때. 주위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성격이 소중한 거지."

내 주변에도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처럼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하고 편하게 대한다.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불편하지 않게 느끼게 해주는 묘한 능력이 있다. 고헤이는 어릴 때부터 서커스단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 서커스단의 특성상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옮겨 다녔던 인생. 친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닫아버린다. 자신에게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벽을 쌓으면서. 새로 입단한 젊은 서커스 단원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단순히 나이차가 난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친다. 자신에게 두꺼운 장막을 치고 상대방이 접근하는 길을 차단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꾸만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면증으로 찾아간 의사 이라부는 자기 단원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위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성격이 소중하다"는 그의 아내의 한 마디. 먼저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 주위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 자신을 먼저 열어 보이는 행위가 참! 쉽지가 않다. 살면서 나의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진솔하게 얘기해본 적은 없던 것 같다. 나도 이 소설 속의 고헤이와 거의 흡사할 정도로 똑같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먼저 여는 자세. 오픈 마인드가 주위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는 사실.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말로 병을 고쳐주지 않고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마음을 열어라"    



페이지 119 / 공중그네

"난 아무래도 허리가 굽어지는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주사 자국을 문지르며 말했다. "다른 사람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어요."

아내가 촬영한 자신의 공중그네 나는 모습을 본 고헤이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동안 일부러 자신을 괴롭힌 것이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사실. "다른 사람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어요." 자신의 잘못은 모른 채 상대를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온 한 문장. 다른 사람과 같이 동화될 수 없다는 감정이 드러난다. 공중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잡아주지 않을 거라는 불신. 고헤이 자신이 만들어낸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평생을 해왔던 공중그네에서 떨어지고 만다. 열린 마음이 다른 사람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페이지 272

아이코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구토증에 강박증이라는 혹까지 덧붙이다니. 도대체 자기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걸까.

"한동안 쉬는 게 어때? 겉보기엔 부자 같은데. 1, 2년 놀면서 생활하는 것도 좋지 않겠어."

"속 편한 소리 하지 마세요. 곧바로 잊히는 세계라구요."

입을 삐죽이며 항변했다. 사실이 그렇다. 전열(戰列)에서 벗어난 인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업계는 의자 차지하기 게임이나 다를 바 없다.

언젠가 '작가는 잊히는 존재'라 말한 작가가 있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나에겐 확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두려움. 8년 차 베테랑 소설 작가 '아이코'도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소설이 인기가 없어 기운이 빠지고 힘들어한다. 이렇게 독자에게서 잊히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잘 쓰던 이야기도 문득 언젠가 쓴듯한 느낌을 받아 도중에 포기하고 만다. 글을 쓰기가 두려워진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는 모습에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작가만은 아닐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에게도 비슷한 두려움이 있다. 작가가 느끼는 것과 아주 똑같지는 않더라도. 회사는 다니고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상사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동료로부터 무시당하는 사람들. 자신이 일처리를 못한다거나 능력 부족이라면 최소한 억울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들의 잘못된 틀에 맞춰 행동하지 않거나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작가가 불틀정 다수에게 잊히는 존재라면 직장인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잊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작가가 느끼는 잊히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직장인으로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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