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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

책소개/소설

by gyaree 2017. 10. 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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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김영하오직 두 사람

이 소설은 일곱 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 이야기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소설의 제목이 아닌 [아이를 찾습니다] 편이다. 책의 뒤 커버에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이 있다."라는 문구가 처음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닥칠 미래는 누구에게나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삶이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그런 삶이 행복할 거로 예측하는 사람도 있고 불행할 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윤석은 잃어버린 아들 석민이만 찾으면 행복한 삶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강한 신념 하나로 십일 년을 버티며 살아왔다. 아들이 유괴당한 후 정신병에 걸린 아내는 그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세는 점점 기울고 단칸방의 더러운 집에 아들을 찾는 전단지만 벽을 도배하고 남을 정도의 피폐한 삶이 이어진다. 정신병으로 매일매일 뛰쳐나가 헤매지만, 그런 아내라도 옆에 있는 것이 윤석에게 버티는 힘의 근간이었다. 아들만 돌아오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리란 기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은 아들을 잃어버리고 시작된다. 십일 년이 지나 돌아온 아들. 그렇게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던 유괴된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을 유괴해 혼자 기르다 지친 여자는 자살을 하고 유서 한 장을 남긴다. 석민의 진짜 부모를 찾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죄한다는. 자신을 기른 엄마가 유괴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석민은 경찰과 함께 진짜 엄마 아빠의 품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은 또다시 시작한다. 아들이 돌아와 행복하리란 예상은 빗나간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산 아들과 아빠의 간극은 좁혀질 수 없다. 자신의 진짜 부모를 만났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정신 나간 아줌마를 엄마로 불러야 하는 상황,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 서로의 믿음이 없는 관계에서 정신병에 걸린 아내를 아들에게 맡기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 석민. 진짜 엄마이지만 엄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석민은 엄마를 혼자 남겨두고 나가버린다. 회사에서 경찰의 전화를 받고 동네 산 중턱에 갔지만, 아내는 이미 절벽에서 미끄러 죽고 말았다.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오면 당연히 행복한 삶을 누릴 거라는 예측은 석민뿐 아니라 어떤 부모도 공감할 것이다. 아들을 잃어버린 칠흑 같던 시절이 끝나고 행복의 길로 들어서야 하지만, 그들에게 닥친 현실은 불행하기만 하다. 재난과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을 위해 오로지 참고 견뎌내야 하는 일만 남았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닥치면, 이들에게 남아있는 옵션은 참아내고 견디는 일뿐이라는 것.        


페이지 36 / 오직 두 사람

오직 두 사람

언니, 수학에 이런 방정식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3x+4xy+6xyz=8이라고 해요. 그럼 좌변에서 x를 괄호 밖으로 빼낼 수 있잖아요? x(3+4y=6yz)=8. 여기서 x가 아빠예요. 아빠를 괄호 밖으로 빼내면 수식은 참 단순해져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예요. 수식을 잘 보세요. 괄호 밖에서 x가 모두를 가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현정이나 엄마가 아빠 얘기를 싫어하니까 저는 아빠에 대한 생각을 혼자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문득, 엄마와 동생이 절 어떻게 보는지 깨달았어요. 그들은 저를 아빠라는 저개발 독재국가로부터 탈출한 난민쯤으로 보고 있는 거였어요.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을 거라 짐작하고 그 화제를 피해준 거였어요. 저는 그들이 아빠 얘기를 피한다고 생각해서 꺼내지 않은 거였는데, 사실은 그들이 저를 불쌍히 여겨서 배려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마 제가 없었다면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빠 흉을 보고, 아빠에게 붙들려 살아가는 저를 한심해하고 그랬을 것 같더라고요.

'보고 싶은 언니에게' 주인공 현주는 어떤 언니에게 자신의 깊은 내면 속 이야기를 쓴다. 그 언니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가족이었던 엄마, 동생, 오빠보다도 더 보고 싶다는 애틋한 감정이 묻어있다. 오직 장녀만을 사랑하고 편애했던 아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오직 둘만 떨어져 그들만의 세상을 산 아빠와 딸(현주). 그로 인해 가족은 해체되고 만다. 엄마와 여동생은 미국으로 떠나고, 아빠와 현주는 반쪽짜리 가족이 된다. 지구 상에서 언어가 통하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두 명. 만약 이 둘 중 하나가 죽으면 그 언어도 사라진다고 상상하는 현주. 세상에 홀로 남아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 이 말은 유일하게 자신을 알아주던 아빠가 이 세상을 떠나면 혼자만 남게 되는 현주 자신이다. 아빠가 말하는 대로만 꼭두각시처럼 인생을 살았던 현주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마흔. 아빠가 시키는 대로만 살았던 인생에 제대로 된 인간관계도 맺을 수 없었던 그녀. 이제는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미국에 있는 여동생과 엄마를 찾아간다. 하지만 수학 방정식처럼 아빠만 때 내면 간단히 그들과 섞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진다. 결국, 외로이 홀로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 병원 침대에 누워 죽음이 임박한 아빠와 다시 만난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언어가 통하는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현주. 아빠를 벗어나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인생의 시작이지만 두렵지만은 않다. 


자식은 부모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자식이 생겨 기르다 보면 부모로서 자꾸 욕심이 커진다. 내가 생각한 대로 아이들이 잘 따라줘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가끔은 아주 아주 가끔은 부모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다. 부모가 생각하는 기준은 자신들의 기준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기준인 것 같다.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으니까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오직 두 사람'의 아빠와 딸의 관계는 정말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진 아빠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딸에게 시켜야 하고,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는 딸은 더 이뻐 보이고, 그러면서 자식이 홀로서기할 수 있는 길을 원천 봉쇄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 안에서도 둘로 쪼개지는 비극적인 결과를 만든다. 아빠의 잘못된 딸에 대한 외사랑이 가족의 울타리를 불태워버린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딸을 데리고 둘만 유럽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아빠가 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이들은 비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이 넘치고 넘쳐 돈으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욕심은 버려라!     


인생의 원점페이지 92 / 인생의 원점

인생의 원점

"사랑하는 사람이 날마다 이렇게 맞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인아는 그렇게 말하는 서진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실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이십여 년만의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시절 처음 설렘을 줬던 그녀.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주먹을 휘둘러 매일매일 그녀의 몸에는 멍과 상처투성이다. 그녀의 앞에 이런 고통을 들어줄 사람이 나타났다. 어린 시절 남자 친구였던 서진. 아직 싱글인 서진에게 다가온 불행한 삶을 사는 유부녀가 된 그녀에게 끌린다. 남편의 폭력에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구출하고 싶어 하는 옛날 친구로서의 감정. 아니면 첫 설렘을 남기고 떠난 아쉬움을 사랑으로 바꾸려는 목적이었을까. 아마도 서진의 인아에 대한 감정은 후자인 듯하다. 

초등학교 때 좋은 감정이 있던 여자 친구를 성인이 되어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특히나 그녀가 불행한 삶을 산다고 한다면, 아직 결혼하지 않는 상태의 남자라면 그녀의 현재 처지가 어떻든 연민의 감정이 쉽게 가슴을 파고들지 않을까 한다. 사랑과는 좀 다른. 모든 남자의 심리가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여자 친구를 커서 만나게 되고, 그녀 또한 나에게 그때의 좋았었던 감정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할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단순한 동물이라 말하는 것처럼 뒤에 일어날 복잡한 미래에 대한 설정은 하지 않고 현재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서진도 "사랑하는 사람이 날마다 이렇게 맞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라고 하듯이 어릴 때 좋은 감정은 이미 사랑으로 변했다. 하지만 인아는 현실을 말한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르다고. 뒤에 불어닥칠 위험은 모른 채 낭만적인 옛사랑을 이어가려 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설령 서진의 인아에 대한 오래된 감정이 쌓이고 쌓여 사랑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앞뒤 가리지 않고 순간의 감정에 쏠렸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이 이야기 후반에서도 인아의 또 다른 남자의 폭력에 굴하는 모습을 보인 서진은 더는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습에서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증거다. 때 잊고 살아 기억에서 지워진 여자 친구의 불행한 모습에 끌린 연민이라 말할 수 있다.         


페이지 270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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