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엘리베이터는 도둑고양이다.
아파트 단지
아마도 국민학교 3학년쯤이었다.
“야! 따라와”
“어디 가는 데?”
“따라와 보면 알아.”
“어디 가는 데?”
옆에 있던 오갱도 “어디 어디 어디 가는 데?” 묻는다. 요강은 오줌 누는 통이다. 친구의 별명은 오강이었고, 우리는 ‘오갱’또는 ‘오줌’이라 불렀다. 그 옆에 있던 애꾸도 따라서 궁금한 듯 “어디 뭐야?”물어본다. 왼쪽 오른쪽 눈 크기가 달라서 붙여진 별명 ‘짝눈’ 우리는 그 녀석을 ‘애꾸’라 불렀다. 어딘가로 가자고 하는 그 녀석은 병팔이다. 그냥 이름에 ‘병’ 자가 들어가서 ‘병팔이’이라 불렀다.
그럼 내 별명은 뭐냐고?
음….
음….
좀 창피하지만…. ‘똥개’다.
아! 너무 억울하다. 난 내 별명이 너무 싫다. ‘오갱’이가 붙여준 별명이었는데 도대체 왜? ‘똥개’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 이름에 ‘개’ 자나 그렇다고 ‘똥’ 비스무래한 글자가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그놈은 나를 부를 때 ‘똥개’ 또는 ‘개똥’이라 부르며 너무 좋아했다. 바지에 똥을 쌌다거나, 방귀를 잘 뀐다거나, 아니면 개처럼 혀를 빼고 ‘헥헥’ 거린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별명이지만, 밑도 끝도 없이 내 별명은 그냥 ‘똥개’다.
하여튼 병팔이, 똥개(나), 오갱, 애꾸 이렇게 넷이 동네 우물 옆에 모여 있었다.
병팔이가 제일 처음 꺼낸 “야 따라와!” 한마디에 우리는 궁금했다.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건지.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항상 동네 어귀에 모여 저녁밥을 먹기 전까지 하루 종일 놀다가 밥 먹으라는 엄마의 큰 목소리가 집 밖으로 터져 나와야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일과였다. 당연히 공부는 남의 일.
동네 입구에 파출소가 하나 있고, 그 파출소 건너편에 땡땡거리 하나가 있다. 이 땡땡거리만 건너면 한강이 바라보이는 잘 사는 동네로 진입하게 된다. 내 기준에 그때 아파트에 살면 부자라고 생각했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려면 전철이나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을 지나야 한다. 이 철길에 세워진 노란색 철로 만든 가로막이 기차가 지나가면 내려오고,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그곳을 보초 서는 아저씨가 나와서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주의를 주곤 한다. 기차가 다 지나가면 노란색 땡땡이는 올라간다. 기차가 올 때면 항상 이곳에서 ‘땡땡땡땡’하는 소리가 나서 우리는 ‘땡땡거리’라 불렀다.
우리가 사는 동네와 아파트와 맨션이 있는 부자 동네는 땡땡거리 하나로 경계선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만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다. 하지만,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우리에게도 그쪽 영역은 우리가 가서는 안 될 곳이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인지 친구들과 그곳에 가서 놀거나 하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 하나가 내가 사는 곳이었으니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네 명은 우리의 본거지를 떠나 완전히 다른 세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병팔이가 가자고 했던 곳은 바로 그곳. 부자 동네였다.
땡땡거리를 지나 드디어 아파트촌으로 방향을 잡고 이쁘게 깔린 잔디밭을 지나 어느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일렬로 똑바로 줄 선 아파트와 정리정돈이 잘 된 나무들과 잔디밭은 우리 동네와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었다.
아파트 입구 초입에서 갑자기 병팔이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무언가 감시하듯 벽에 숨어 어느 한 곳을 보면서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아무래도 이놈은 이곳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순간을 포착하려는 듯. 나머지 세 명도 병팔이 뒤에 숨어서 기다렸다. 병팔이가 감시한 곳은 아파트 경비실이었다. 경비 아저씨한테 들키면 혼나기 때문에 들키지 말아야 하는 짓을 오늘 이곳에서 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일까?
….
일단 따라왔으니까 우리는 병팔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야! 애꾸 너 더 숙여! 안 그럼 보이잖아~”
“오갱! 너는 덩치가 크니까 더 숙여 인마!”
“떠들지 마!”
병팔이의 목소리는 크지도 않고 작게 소리쳤다.
경비실에 아저씨가 없는 것이 확인됐던지 병팔이의 신호가 떨어졌다.
“뛰자!”
“뛰어!”
“빨리!”
병팔이가 제일 먼저 뛰어나가고 나, 오갱, 애꾸가 등을 90도로 구부리고 아저씨에게 혹시라도 들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잽싸게 달려 들어간 곳은 아파트 현관 입구. 우리의 몰골은 딱 봐도 아파트에 사는 애들과는 거리가 먼 행색이라 경비 아저씨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일단 1차 관문은 무사히 통과했다.
이렇게 힘들게 왜 여기에 왔을까?
무사히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니 그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TV에서만 봤던 그 엘리베이터가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병팔이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이 ‘엘리베이터’였다. 병팔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니까 조금 있다가 문이 열렸다. 여러 번 해본 솜씨라서 뽐내면서 자랑 아닌 자랑이 시작됐다.
“봤지?”
“봤지?”
“이런 거야.”
이거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야 _ made by ToonBoom Harmony
나머지 세 명이야 처음 보는 광경이니 그저 신비롭고 놀이동산의 놀이기구 같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도둑고양이마냥 조용조용히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안엔 우리 네 명뿐이었다. 병팔이의 능수능란한 조작으로 층마다 멈추는 엘리베이터 놀이는 시작됐다. 층마다 버튼을 전부 눌렀으니 아파트 주민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우리는 혼쭐이 나고도 남았을 텐데 그날은 행운이 깃든 날이었다. 제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어리둥절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나, 오갱, 애꾸도 엘리베이터 운전을 해볼 기회가 왔다. 처음엔 병팔이를 제외하고 신기하고 놀라서 병팔이가 하는 대로만 따랐지만 몇 번 타고나니 엘리베이터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나는 3층, 오갱은 5층, 애꾸는 7층… 이렇게 아파트 전 층의 버튼을 또 한 번 누르고 말았다. 자동으로 열리고 자동을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도 신기했고 위잉 소리를 내며 하늘 위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꼭대기 층에 서자 병팔이가 다 내리라고 했다.
이번엔 더 재미난 걸 보여준다고…
“뭐야?” (나)
“뭐야?” (오갱)
“뭐야아?” (애꾸)
이번엔 저 문에 달린 벨을 누르고 밑으로 달리는 거야.
벌써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런 짓은 처음 해보는 거라 겁부터 났다.
“벨을 누른다고?” (나, 오갱, 애꾸)
“어. 조용히 말해.” (병팔이)
“내가 저기 초인종 누르면 빨리 계단으로 뛰어.”
“하나, 두울~~, 세엣~ 누른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나자마자 우리 넷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서너 층을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고 다른 집으로 가서 이번엔 내가 그 집 초인종을 누르고 다시 ‘다다다다’ 계단으로 달렸다. 다음엔 오갱, 또 다음 아래층은 애꾸가 이렇게 1층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네 명 모두 이마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두려웠지만, 이상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못된 짓이 더 재밌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무사히 엘리베이터 놀이는 끝이 나고 이제 마지막 관문. 다시 경비실 아저씨의 눈을 피해서 도망치는 일만 남았다. 이번엔 누구라고 말 안 해도 모두 경비실 아저씨가 이쪽을 보고 있는지 망을 보면서 들키지 않게 몰래 빠져나왔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부잣집 엘리베이터로 놀러 가서 무사히 놀기도 했고 경비실 아저씨에게 붙들려 쫓겨나기도 여러 번 반복됐다.
병팔이의 창의적인 생각 덕택에 우리 네 명은 정말 재밌는 엘리베이터 놀이를 경험했다. 그 어떤 놀이동산의 놀이 기구보다도 스릴 있고 짜릿하고 진땀 빼는 놀이. 가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밖에 없는데 많은 층의 버튼에 불이 켜있는 걸 보면 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지금 병팔이, 오갱, 애꾸는 무얼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