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내 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했던 동물은 딱 두 종의 동물이 전부다.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두 마리의 동물을 소개한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교문을 나와 조금 걷다 보면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반가운 소리가 희미하게 저 멀리서 들려온다.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달음박질이 시작된다. 한 손에는 실내화 가방을 들고 등 뒤에 맨 가방이 왼쪽 오른쪽 덜렁덜렁하며 소리의 진원지로 달린다.
작았던 소리는 점점 크고 정확한 소리로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삐약, 삐약.
이미 학교 담벼락 모퉁이엔 동작 빠른 아이들로 둥글게 벽이 만들어져 있다. 내가 한 걸음 늦었다. 살짝 벌어진 조그마한 틈바구니를 비집고 비집어 머리를 쑤셔 넣는다. 일단 머리만 집어넣으면 몸이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 꾸역꾸역 드디어 아저씨의 얼굴이 보인다.
삐약, 삐약, 삐약.
아저씨는 손바닥에 병아리 한 마리를 올려놓는다. 아마도 몇십 마리 중에 가장 건강한 놈이 어떤 놈인지 아는 듯. 목소리도 청아하고, 눈알도 앞으로 톡 튀어나와 이쁜 눈, 건강해 보이는 노란색의 햇병아리는 아저씨의 손바닥 위에서 위용을 뽐낸다. 아저씨의 손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날지도 못하는 날개를 푸드덕푸드덕.
삐약, 삐약. 삐약, 삐약.
햇병아리들은 윗부분이 열려 있는 과일 상자 비슷한 종이 박스에 빼곡히 담겨있다. 상자의 네 면에는 병아리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려는 듯 동그란 구멍이 뻥뻥뻥 뚫려있다. 뚜껑이 없는 상자 속에는 움직일 틈도 없어 너무 좁다고 말하는 듯 ‘삐약삐약 삐약’ 소리가 거세진다. 그중엔 답답하고 조그만 상자 안에 있기 싫어하는 병아리가 파닥파닥 날아오른다. 난다기보다는 점프에 가깝다. 상자를 뛰어넘어 밖으로 탈출하지만, 아저씨의 손은 더 빠르다. 잽싸게 낚아채는 아저씨의 손에 잡힌 병아리. 다시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공간으로 떨어진다.
‘아! 잡히지 말고 그냥 도망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저씨는 손바닥 위에 있는 병아리를 우리 얼굴 앞으로 휘이휘이 왔다 갔다 하며 팔팔하다고 자랑한다. 약장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허리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를 꼬이듯.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너무 귀여워 병아리를 만지기라도 하면 아저씨 입에서 “이놈” 소리가 나온다.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신호다. 어린 병아리는 함부로 손대는 거 아니라면서. 아이들의 구매 욕구는 점점 더 올라간다. 아저씨의 손 위에서 노는 병아리의 삐약 삐약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 부잣집 아이가 먹는 아이스크림을 쳐다보며 군침만 질질 흘리는 꼴이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돈을 내밀더니 병아리 한 마리 달라고 하는 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 아이의 손 위에 있는 병아리를 너도나도 한번 만져보자는 아우성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자그마한 손들이 돌진한다. 놀란 병아리는 작은 날개를 파닥파닥 거린다. 갑자기 들이닥친 고사리 같은 손이 병아리에겐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작은 병아리의 보드라운 깃털이나마 만져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 건 그 아이의 친한 친구들뿐.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가격은 기억에 없지만 아마도 몇백 원은 하지 않았을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우리 집에서는 용돈을 받을 수 없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팔려나가는 병아리를 보며 바닥이 드러나는 박스 안으로 애처로운 눈빛을 떨어뜨린다. 나도 삐약이 한 마리 사서 집에 가져갔으면….
기운 빠져 어깨가 축 늘어진 채 집이 있는 골목으로 내려온다. 삐약 삐약 소리만 귓가에 맴돌고 머릿속은 온통 병아리의 날갯짓만이 그득하다. 나무문으로 되어 있는 집 근처에 다다르면 집안으로 무사히 들어가기 위한 혼자만의 전쟁이 시작된다. 우리 집 대문은 황토색 나무로 길게 이어 붙인 민속촌에 있을법한 옛날 문이었다. 문 위로는 검은 기왓장이 얹어져 있다. 그리고 문 왼쪽 위로는 장독대가 놓여있다. 문 바깥은 동그란 쇠고랑이 문고리에 달려있고, 안쪽으로는 문 가운데 부분에 긴 나무가 가로로 자물쇠 역할을 하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문밖에서는 드문드문 벌어진 문 틈새로 집 마당을 볼 수 있었다.
나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집안 쪽에서 나무문을 긁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일부러 도둑놈처럼 조심조심 문으로 접근했는데 어떻게 알아챘는지 나의 존재를 들키고 말았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 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저 문을 무사히 통과해야 하는데, 문 긁는 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본다. 안 그래도 병아리를 못 사서 침울한 마당에 ’저놈’하고 한판 떠야 한다. 문에서 조금 떨어져 지켜본다. 나무 긁는 소리가 잦아든다.
“됐다.”
“지금이 문을 열 타이밍이다.”
살금살금 걸어가 나무문을 발로 차서 열어두고 잽싸게 뒤로 물러선다. 그러지 않으면 큰일을 치러야 하므로. 문이 열리자마자 목에 쇠줄이 감긴 똥개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뛰쳐나온다.
아으!… 우리 집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놈이 들어온 이후로 나의 귀갓길에 걸림돌이 생겼다. 쉽고 간단하게 들어갈 수 있었던 집인데, 매일매일 문 앞에서 ‘저놈’과 나의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개들도 어린아이들은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 아빠는 전혀 문제없이 저 문을 통과한다. 그런데 유독 나의 냄새를 알고 있는 ‘재롱이’는 나를 반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촘촘히 박힌 이빨을 드러내며 목에 걸린 쇠줄이 끊어질 기세로 달려든다. 그렇다고 나를 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는 저 이빨이, 드러난 빨간 잇몸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섭다. 그래서 먼저 발로 뻥 차서 문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잠시 재롱이와 대치 상황이 전개된다.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봐서는 나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재롱이도 지쳤는지 집안 마당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나도 슬슬 움직이며 재롱이 눈치를 보고 잽싸게 집안으로 달린다.
“앗!”
“지지직… 지지직…”
재롱이를 피해 빨리 달렸지만 어느샌가 내 뒷다리를 물어 바지가 찢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참담한 결과가 나와야 재롱이와 나와의 1차 전쟁은 끝이 난다.
어느 날인가 아빠가 데리고 온 암컷 똥개 한 마리. 나는 ‘재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벌써 36년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애완견이나 반려견이라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다. 동네에서 주로 보던 개들은 전부 똥개에다 잡종이었으니까. 지금처럼 방에서 가족처럼 같이 지내거나 기르지 않았다. 어쩌다 안방에라도 한번 발을 들여놓는 일이 생기면 아빠의 몽둥이는 가차 없이 날아갔다. 어디 개 주제에 방에 들어오냐는 식이다. 부잣집이야 같이 방을 썼을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가난한 집에서는 애완견이 아니라 집을 지키는 정도였다. 강아지만의 집을 지어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안 쓰는 창고가 있으면 그곳에 목줄을 매달아 놓고 창고가 강아지 집이었다. 목줄을 풀어놓으면 어디서 놀다 오는지 몰라도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재롱이를 잃어버려도 그만인지 하루 중 대부분 줄을 풀어놓았다. 그 시대가 차라리 개들에겐 더 많은 자유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똥개라는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개를 기른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개 사료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개 사료를 따로 준 적이 없었다. 그냥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먹다 남은 음식이 재롱이 식사였다. 밥을 먹으면 밥을 주고, 라면을 먹으면 라면을 줬다. 주로 라면을 제일 많이 줬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은 쌀이 떨어진 날이 많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았다. 재롱이의 찌그러진 노란색 양은 밥그릇엔 항상 라면이 담겨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불쌍하기 그지없다. 가난한 집에 와서 라면만 먹었으니 말이다.
문 앞에서 나의 귀갓길에 항상 걸림돌이었지만, 마당에 들어오면 꼬리 치며 나를 좋아했다. 나도 그런 재롱이가 좋아 항상 재롱이 입을 벌리고 혓바닥을 만지며 놀았다. 이상하게 개의 긴 혓바닥을 잡고 놀면 재미가 있었다. 재롱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서 서로 장난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병아리는 못 샀지만 재롱이가 있어 심심하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친구들이 가진 병아리의 부러움은 지워지지 않아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서 한 마리를 겨우 살 수 있었다. 아저씨 상자 속에서는 그렇게 팔팔하고 삐약 삐약 삐약 힘찬 소리를 내던 것이 우리 집에선 나날이 쇠약해져 갔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병아리가 원래 그런 것인지. 병아리 엄마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재롱이도 들어오지 못하던 뜨뜻한 안방에서 애지중지 보살폈다. 결국, 며칠 지나서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나는 그때 아저씨가 분명 병에 걸린 놈을 나에게 팔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수는 없는 것. 그런데 다른 아이들 병아리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병아리를 제대로 키운 아이는 없었다. 병아리와 지낸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작은 햇병아리를 손바닥 위에 올렸을 때 전해진 촉감은 아직도 기억한다. 닭이 되길 바랐지만, 병아리에서 끝난 아쉬움은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병아리가 떠나고 몇 주가 지났을까. 집 골목으로 내려오는 길. 오늘도 집으로 들어가려면 재롱이와 한판 떠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슬금슬금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고 집 문 근처에 도착했다. 이쯤 되면 문 안에서 벅벅 긁는 소리가 나야하는데 오늘은 왠지 조용하다. 나의 냄새를 맡았을 텐데. 재롱이가 자고 있나? 다시 슬금슬금 벌어진 문 틈새로 안을 봤다. 그런데도 문을 긁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일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앞으로 달려 ‘뻥’하는 소리를 내며 발로 문을 찼다. 그래도 아무 인기척도 없다. 아니, 견기척이지. 빨리 달려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나 조용하다.
나의 바지를 물어 찢어버린 재롱이가 보이질 않는다.
창고 안을 들여다보지만 재롱이는 없다.
마당에는 찌그러진 재롱이의 밥그릇만 뒹굴 뿐.
“재롱아! 재롱아! 재롱아!”
“…….”
득달같이 달려들던 그놈이 없어졌다.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재롱이 어디 갔어?”
“어…. 어….?”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은 믿을 수 없었다. 아빠가 재롱이를 팔았다는 것이다. 내가 학교 간 바로 그날 아침에 팔았다는 것이다. 너무나 큰 충격에 한동안 우두망찰 서 있었다. 어떻게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팔아버릴 수가 있을까. 아무리 똥개라지만, 그래도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나는 울며불며 소리를 질렀다. 재롱이 내놓으라고. 재롱이를 아무리 불러봐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에겐 그저 그런 식용 똥개 한 마리였을지 모른다. 애초에 가지고 올 때부터 어느 정도 자라면 팔 생각이었던 똥개. 그런 똥개가 나의 다리를 물고 늘어져 바지까지 찢는 앙숙과 같은 관계였지만, 나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였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알았더라면 이름도 붙여주지 않았을 것을. 일부러 정을 주지 않았을 것을. 아빠는 무심하게도 똥개라는 이유로 팔아버렸다. 아빠가 미웠다. 그리고 또 미웠다.
내 인생의 첫 동물 친구였던 ‘재롱이’. 그 어떤 비싸고 혈통 있는 개보다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의 순수한 감정으로. 지금의 애완견, 반려동물처럼 좋은 대우는 해주지 못했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동물을 키워 본 적은 없다.
앞으론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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