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기뻤던 일이 별로 없다. 어찌 살다 보니 무미건조한 삶이었고 특별하게 재미가 있거나,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어 주목을 받는 삶을 살지 않아서 그냥 인생이 평타 수준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의 한 사람. 그래도 살면서 제일 즐거웠던 일을 꼽자면...
눈을 감고 생각해봐도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그만큼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감성이 모자라서 그런가? 내 인생 자체에 기뻤던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 내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어 놓은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어 보니 아주 옛날 국민학교 3, 4학년 때쯤 추억 하나가 생각난다. 잠시 돌이켜 보면 내 아내에게 수차례 얘기하며 즐거워했던 그 시절의 사건이 아마도 나에겐 최고로 기뻤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닳고 닳은 책가방 바닥은 양 끄트머리에 큰 구멍이 뚫려 커다란 책이나 공책은 쏟아지지 않더라도 작은 잼 유리통이 반찬 통이었던 나의 도시락은 학교에 가다가 몇 번이고 가방 구멍에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내 반찬 통은 항상 손에 세게 힘을 주어 뚜껑을 돌려야 하는 가게에서 파는 잼 통이었다. 다 먹고 씻어서 재사용하는 유리병엔 뜯다 만 상표가 삼 분의 일쯤 남아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이쁜 도시락통에서 꺼내는 밥과 반찬 통은 매번 볼 때마다 부러움의 눈은 감출 수 없었다.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나는 가방을 마음대로 흔들거나 빨리 뛰지는 못했다. 구멍 난 가방에서 혹시라도 반찬 통이 떨어질까 싶어 아주 조심조심 신줏단지 모시듯이 정성스럽게 메고 다녔다. 그때 메던 가방이 ‘쓰리세븐 책가방’으로 기억한다. 집안 형편상 새것을 산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엄마가 누가 쓰던 것을 받아 와서 내가 들고 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가방 줄은 너덜너덜하고 줄과 가방이 붙어 있는 부분도 찢겨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 그래도 그 시절 ‘쓰리세븐 책가방’은 책가방계의 나이키쯤 되는 브랜드라서 어린 나는 무조건 좋았다.
그런데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던 중 교문 앞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달랑달랑 위태하던 책가방 바닥 뚫린 구멍에 걸쳐 있던 반찬 통이 밑으로 쏙 빠지면서 유리통 반찬 통이 깨지고 그 안에 먹다 남은 김치가 깨진 유리와 함께 바닥에 튀었다. 뒤에 따라오던 같은 반 친구 놈 한 녀석이 드디어 놀릴 감이 생긴마냥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쟤 가방 빵꾸 났대요”
“빵꾸 났대요오오”
“빵꾸 났대요오오”
하면서 놀렸던 것 같다.
반찬으로 싸간 김치마저 땅바닥에 흩뿌려졌으니 누가 놀리지 않아도 충분히 창피했다. 내 도시락 반찬은 거의 매일 김치였으니. 그때는 나도 너무 열 받아 내 인생에 첫 싸움이 시작됐다. 놀리던 친구를 붙잡고 둘이서 학교 교문 앞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그 시절 싸움이야 무조건 잡고 땅바닥에 뒹구는 정도였던 것 같다. 나의 모든 힘을 쏟아 친구를 붙잡고 울면서 주먹을 날렸지만, 그놈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친구들의 중재로 싸움은 금방 끝이 났지만 둘의 옷은 흙먼지로 범벅되고 얼굴은 눈물 자국이 흙먼지와 섞여 그야말로 꾀죄죄한 몰골.
나의 도시락 반찬은 여전히 김치. 그런데 오늘은 볶음 김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반찬이 볶음 김치다. 이 볶음 김치는 겉모습이 시커멓고 정말 맛없어 보이는 비주얼이지만 맛 하나는 끝내준다. 당시 아파트에 살던 그놈이 또 내 반찬을 보더니 놀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철길 하나를 두고 한쪽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잘 사는 아이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허름한 주택가의 못 사는 사람들의 동네로 극명하게 대조가 되었던 곳이다.
“아유 그런 거 어떻게 먹어?”
“시커멓고 맛없는 거”
그놈의 반찬은 주로 비싼 햄 소시지에 나는 뭔지도 모를 고급스러운 반찬만 싸 왔었다. 그러니 내가 먹는 시커먼 볶음 김치가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도 다시 열 받아
“너는 먹지 마”
“너한텐 절대 안 줄 거야”
“먹기만 해봐”
하면서 받아쳤다.
그리고 내가 너무 맛있게 먹고 다른 친구들도 맛있다는 소리를 하니 그놈도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기 도시락은 먹지 않고 계속 내 도시락만 쳐다보고서는 나에게 한 입만 달라고 했다. 약이 오른 나는 다른 친구에게 먹으라고 나눠주며 그놈만 주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재차 한 입만 달라고 애걸 구걸하는 형상으로 바뀌었다. 하는 수 없이 한마디 했다.
“먹을 거면 너는 돈 내고 먹어”
“돈 내면 줄게”
“돈 안 내면 넌 못 먹어”
시커먼 볶음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던 그놈은 얼마냐고 물었다.
“한 번에 백 원”
“한 젓갈에 백 원이야”
“아니면 말고”
설마 돈 주고 사 먹겠어하는 생각으로 그냥 질러본 말이었다.
그러자 진짜 나에게 백 원을 내밀었다. 한 입 먹더니 또 백 원을 내밀었다.
“우하하하하”
나는 그 백 원에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통쾌하고 그놈을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볶음 김치가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매일매일 반찬이 김치였던 나에게 김치는 창피한 존재였다. 그러던 존재가 나를 가장 놀려먹은 그놈에게 돈을 받고 먹게 해주는 금치(金치)가 된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뻤다. 엄마가 그렇게 매일매일 싸주던 창피했던 김치로 돈을 벌게 되었으니. 더군다나 나에게 굴욕을 안겨준 그놈에게 복수를 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로 웃긴 해프닝이다. 친구 도시락 반찬을 돈을 내고 사 먹다니. 정말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36년이 지난 지금 와이프한테 자주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감히 내 생애 최고로 기뻤던 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도 나의 가난함을 무시하고 놀렸던 친구에게 그 분함을 참지 못해 김치를 파는 용기는 어디서 생겼을까? 대동강 물을 팔던 봉이 김선달이 문득 떠오른다.
백 원에 볶음 김치를 사 먹던 그놈(친구)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날 받은 돈은 총 500원이었던 기억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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