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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의외의 곳에서

일상

by gyaree 2017. 7. 1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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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 향상음악회


과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


잠깐의 정적을 깨트린 아이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모두의 합창으로 이어진 노래는 무대에 있는 소년에게 용기를 주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이 아이들 덕분에 처음 가보는 장소가 차곡차곡 하나씩 늘어난다. 좋든 싫든 저절로 행동반경이 바뀌게  된다. 때로는 힘들고 귀찮고 적어도 주말에는 쉬고 싶기도 하지만, 또 주말이 아니면 이 아이들은 또다시 집안에만 갇혀있는 신세가 되니 금요일 저녁이 되면 


"내일 어디로 가지?" 

"내일 뭐해?" 


매번 딱히 갈 곳이 없어 와이프의 핸드폰은 바삐 움직인다. 아줌마들에게 인기 카페인 땡땡맘 카페에 들어가 어디 어디가 아이들한테 짱 좋다는 글을 검색한다. 어디 놀러 갔더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라든가, 다행히 정말 싼 가격에 하루 종일 재미나게 놀 수 있다는 글을 발견하면 바로 디테일한 검색으로 이어진다. 카페에 올라온 글보다 더 싸고 편안하게 놀 방법을 모든 검색 기술을 동원한 와이프의 터치 기술이 가동된다. 이렇게 해서라도 주말에 갈 곳이 생기면 그나마 다행이다. 맞벌이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좀 더 신경을 쓰지 못하는 미안함이 커서인지 주말이라도 아이들에게 더 좋은 곳을 데리고 가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반면 배짱이 같은 나는 그냥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속 깊은 곳에 깔려있지만, 절대 표출하면 안 된다. 안 그래도 좋은 아빠 축에 끼지도 못하면서 그런 투정을 부렸다간 큰일 난다. 왠지 모르게 주말에 아무 곳에도 가지 않으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주도적으로 어디를 가자고 하는 쪽은 아니고 와이프가 모든 것을 챙긴다. 나는 그냥 따라만 가는 어린이에 불과해 미안함은 항상 내 등 뒤에 달라붙어있다. 

과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 _ 향상음악회




이번 주말은 와이프가 근무하는 날이라 나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음악회를 가야 한다. 

아유후우! 한숨부터 나온다

그런데 이곳에서 뜻밖의 좋은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딸내미가 다니는 ‘과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서 그동안 배우고 연습한 노래를 가족을 초대해 선보이는 자리다. 거기에 맛있는 음식이 빠지면 서운한 일. 각각 알아서 음식을 챙겨 오라는 합창단의 요구에 엄마·아빠의 손에는 다양한 음식이 들려있다. 치킨, 김밥, 떡볶이, 과자, 과일, 빵, 케이크, 주스, 사탕 등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간소한 뷔페가 차려졌다. 우리는 달랑 자두 두 봉지를 챙겼다.


공연 시간이 되니 합창단 아이들을 제외하고 가족들 숫자만 해도 대략 50 정도는 보인다. 교실엔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로 가족들이 계단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니 정말 작은 소극장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화려한 무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포커스를 받는 아이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감과 압박이 밀려왔으리라 생각한다. 대중 앞에 서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내 입장에선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떨릴까. 혹시라도 가사라도 잊어버리거나 삑사리가 나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특히나 살면서 노래방에 가 본 기억도 겨우 몇 번밖에 없는 내게는 더 떨리는 상황이다. 그런 무대에 내 딸내미가 선다니 그냥 자랑스럽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아빠는 용기가 없어 그런 무대에 올라설 생각조차 못 하는데 그래도 딸은 나보다 용기가 있어 천만 대행이다. 


합창단 지휘자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공연 시작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


“저의 두 손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각자의 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훌륭하고 멋진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합니다.” 


독창으로 시작된 무대는 저학년 아이부터 시작해 고등학생 아이들 순서로 이어졌다. 

씩씩하고 당차게 목청 높여 부르는 아이, 중간중간 가사를 까먹어 당황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해 무대를 끝내고 우는 아이,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이쁜 소리를 내는 아이, 뭔지 모를 외국 노래를 부르는 아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이, 턱시도에 멋진 양복을 빼입은 신사 등등 각자의 실력을 최대한 뽐낼 수 있는 의상을 준비한 아이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쳐다보는 앞에서 씩씩하게 자신의 무대를 꾸밀 수 있는지 놀랍고 대단하다. 나이가 어린 저학년의 아이들에겐 자신을 보는 시선이 많아 더 큰 중압감을 느꼈을 텐데 조금씩은 가사가 틀리고 삑사리가 나더라도 훌륭히 자신의 무대를 마친다. 노래 실력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런 무대에 홀로 서서 노래하는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내 자식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저절로 내 손바닥은 짝짝 부딪친다. 누구나 자기 자식의 무대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겠지만, 이날의 무대는 누구에게 더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던 , 중학생 남자아이의 순서가 왔다. 노래는 시작됐고 쉰듯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지금 한창 변성기 중인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당황했는지 가사까지 까먹어 어쩔 몰라 표정이 금세 어두워지고 공간엔 피아노 소리만 울려 퍼진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져 홀로 떨고 있을 아이를 위해 선생님이 같이 합창하자는 사인이 떨어지고 앞에 앉은 아이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아! 정말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울컥거린다. 2~30명 아이의 합창이 아저씨의 눈에서 눈물을 빼게 한다. 잠깐 정적을 만들었던 공간은 아이들의 합창으로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고 무언가 말 못 할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합창이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공연 시작 전 지휘자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그제야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저의 손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각자의 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훌륭하고 멋진 소리를 만들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합니다.” 

그렇다. 합창은 뭉클함이 있다. 그 뭉클함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자기 무대를 마친 아이의 힘없는 고개 인사에 모든 가족의 큰 박수는 거짓이 없는 그야말로 마음속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많은 박수로 이어졌다. 값비싼 공연을 보면 뛰어난 아티스트의 실력으로 감동을 하거나, 훌륭한 연출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라서 감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더군다나 지금 노래를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의 단출한 무대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 파도 같은 여운을 주는 감동은 더 마음속을 깊게 파고든다. 


이런 것이 혼자가 아닌 합창이 주는 힘인 것 같다. 나 하나의 힘은 미미해도 몇십 명의 입이 하나 된 소리는 TV로만 보던 합창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울컥함을 알게 해 준 무대였다. 서로가 도움 주며 하나의 소리로 합쳐지는 울려 퍼짐에 가슴이 뭉클해지듯 감동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했을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드는 것은 아닐까.


감동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태어나는 것.



아! 우리 딸내미의 무대는 어땠냐고? 최고였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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