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니체 -나는 왜 이렇게 멋진가나는 왜 이렇게 따뜻할까나는 왜 이렇게 잘생겼을까나는 왜 이렇게 착할까나는 왜 이렇게 다정다감할까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란 나 자신의 가치와 신념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트렌드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삶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처받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권리장전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면서 나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 주장과 주관을 뚜렷하게 표현하며 살지도 않았다. 그냥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 살다 보니 '내 인생을 이렇게 살아갈 거야'라는 메시지를 되뇐 일도 없다. 별생각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자신감이 빠진 삶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려면 제일 먼저 나의 가치와 신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 정말로 창피하다. 인간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자기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있기 마련인 것을. 고단한 삶에 지쳐 허우적거리다 보니 가치관이고 뭐고 신념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잘못됐다는 건 나이가 들면서 점차 깨닫는다. 늦었지만 나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다시 한번 정비해서 세상이 강요하는 트렌드나 경향을 무작정 따라 하지 않는 것. 내 주관대로 해석할 수 있는 해안을 기르는 것.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휴식이란 자신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훌쩍 점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요즘 들어 아니 조금 오래된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월차도 마음이 편치 않다. 쉰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왠지 등 뒤가 따갑다. 쉬든 안 쉬든 회사에서 나에 대한 존재감은 이미 바닥 수준이다. 흔히들 아는 '휴식'이라는 단어는 지친 몸을 다시 원상회복 시키는 과정이다. 회사 일이건 공부건 인생사에서 힘들고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것이 휴식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내는 사람이 있으면 여행을 떠나 스트레스를 풀어 몸에 쌓인 피로를 날려버리는 사람도 있다. '휴식'이 다른 세계로 훌쩍 점프할 기회라는 말을 지금은 놓치고 싶지 않다. 지루한 인생살이를 지금쯤은 되짚어 볼 시기다. 자신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세계를 만날 기회로 삼는 것. 휴식을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날려버려서는 안 되겠다. 허투루 살다가 남은 40년 인생 휴식할지도 모른다.
미리 겁먹을 필요 없다. 우리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 나이에 이르면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가만히 사회 초년생 때를 돌이켜 보면 많이도 걱정했던 것 같다. 상사에게 할당받은 일이 너무 많아서 그 일을 감히 완수할 자신이 없었다. 일의 양도 양이지만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갈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시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니까 어느새 그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항상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회사에 다니며 이런 불안과 걱정은 멈추지 않았는데 어느 틈인가 내게 그 업무를 감당할 능력이 자라났다. 아마도 회사에서 한 자리 한 자리 올라가며 그런 능력이 쌓인 듯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 시절의 불안함은 시간이 흐르면서 놀랍게도 사라졌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한 일이라도 하다 보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나갔다. 일이라는 건 해보기 전에 미리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시간이 알려 주었다. 내가 가진 것에 아주 조금의 자신감과 긍정적인 생각만 보탠다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도 못 할 것은 없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친구들 모임에서 학창 시절과 달리 유난히 말수와 활기가 줄어드는 이가 생긴다. 그 친구는 모임 한 귀퉁이에서 존재감 없이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발길을 끊는다. 각자가 맞이한 삶의 바람에 형편껏 나부끼느라 몸도 마음도 고단해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인생의 출발선은 비슷했건만 이제는 갈수록 경제적 차이가 벌어지는 또래들을 마주하는 것이 괴롭고 자존심 상하는 시기가. 우리는 왜 이리 자신을 들볶으며 힘들게 살아야 할까. 차라리 솔직하게 기죽고, 상큼하게 부럽다고 인정하면 좋을 것을.
인생의 출발선은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사람마다 다 다를 거야.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대학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 좋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간 친구, 아니면 대학에 안 가거나 못 들어간 친구. 대충 이렇게 갈린다. 정말 대학부터가 인생의 시작이라 한다면 출발선에서부터 차이는 벌어졌다. 그때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의 상황을 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은 안정된 기반을 구축했다. 부자 반열에는 끼이지 못하더라도 이만하면 남들 부럽지 않은 생활을 꾸려 나간다. 젊었을 때의 그 자그마한 차이가 나이가 들어가며 더 벌어지는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400m 계주 트랙 아웃코스 8번에 서 있는 주자는 가장 멀리 앞에 서야 평등하다. 그런데 인코스 1번 라인보다 뒤쪽에 서 있는 느낌. 아무리 따라잡으려 해도 내 힘으로는 1번 코스에서 뛰는 주자의 발끝을 보기도 어렵다. 열심히 달린다고는 하지만 내 자리에만 러닝머신의 벨트가 깔린 듯한 기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힘이 다하면 뒤로 나자빠지는 길 위에 서 있다. 더는 기죽지 않기 위해서 그들과의 경주를 끝내고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 나 자신이 더 초라해지지 않는 길일지도.
'사막의 날'은 하이데마리가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없이 순간순간에 충실해 보는 날에 붙인 이름인데, 한마디로 마음 가는 대로 해 보는 날을 뜻한다. 무작정 집을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기차역이 보이면 기차를, 버스가 보이면 버스에 올라서 내리고 싶은 곳에 내린다. 동물원에 가 보기도 하고, 수영장을 찾아 느긋하게 벤치에 누워 보기도 한다. 예쁜 화분을 하나 사서 누군가를 찾아가 깜짝 선물을 해도 된다. 남들의 시선과 자의식, 수줍음 같은 건 멀리 귀양 보내고 자신에게 최대한 자유를 주기. 사막의 날을 자신에게 주는 자유이용권처럼 선물하는 것도 살아가는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볼까. 그냥 버스에 올라타서 그 버스 종점까지 가 보기. 혹은 지하철을 타고 모든 역이 있는 동네를 돌아 보기. 훌쩍 기차를 타고 아무 데나 가 보기. 땅바닥에 누워 파란 하늘 쳐다 보기. '사막의 날'은 자신에게 주는 자유이용권이라는 저자의 말. 그런데 이 자유이용권 하나 사용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지만 좀처럼 행동을 옮기지 못 한다. 저자의 말 그대로 나에게 주는 자유이용권인데도 선뜻 나서지 못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결국은 포기한다. 쓰잘머리 없는 짓이라고 단언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이 자유이용권을 쓴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는 게 아니므로 주저 말고 하루 종일 놀아 보자. 가끔은 삶에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엊그제 운동화를 세탁점에 맡기러 갔다. (중략) 일상적으로 했던 소소한 일들이 이제는 자본주의의 체계 안으로 수렴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중략) 그러나 운동화를 빠는 귀찮음과 수고를 누군가 대신 해 줬다고 해서 그 시간에 내가 더 가치 있은 일을 한 건 아니었다. 빈자리에 행복이 채워지지도 않았다. 사람은 몸을 움직여 얻은 작은 성취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본능이 있다. 몸을 덜 움직이는 대신 소비의 편리함을 잠깐 누렸을 뿐이다.
일상에서 자본주의가 주는 편리함에 가장 한스러울 때가 전화번호다. 내 핸드폰이 수중에 없어 다른 사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 상대방 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방법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수첩에 적힌 이름과 번호를 찾아 전화기의 숫자 버튼을 눌러야 내가 원하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스마트폰에 저장된 이름을 검색해서 상대방 이름만 누르면 전화가 걸리는 세상을 바뀌었다. 이제 더는 상대방의 전화번호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스마트폰에 저장된 이름을 찾을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간혹 핸드폰을 분실해서 다른 사람의 전화기로 가족에게 알려야 할 때 갑자기 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떨어진 건가 오직 '나이'만 탓할 뿐이다. 그러나 나이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고 편리한 생활만 하려는 일상들의 결과물이다. 편리한데 일일이 번호를 누를 필요가 없다. 단 한 번의 터치만으로 끝나는 일을 번거롭게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왠지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 이런 편리함과 행복은 별개인데. 간편하고 편리해진 세상이 행복을 준다고 믿는다. 오히려 아날로그 세상이 가져다준 번거로움이 때로는 행복이고 보람이었다는 걸 회상할 날은 찾아온다.
"사는 게 참 지루하다"
"우리에겐 심심할 권리, 빈둥거릴 권리가 있어. 그 지루함을 한번 끝까지 파고들어 보는 것도 괜찮아. 지루함 속에 살맛나게 하는 것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기도 하니까."
"오빠랑 사는 게 지루하고 참 재미없어" 이런 말이 아내의 입에서 나온다. 일단 원인 제공은 전부 나이니까 뭐라 반박할 말도 딱히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아내에게 "우리에겐 심심할 권리가 있어! 그 지루함을 끝까지 파고들어 봐!"라고 말한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날아올까. 아마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솔직히 이런 말을 아내에게 들을 때가 제일 난감하다. 나는 원래 이런 놈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사는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지루함 속에 살맛나는 보석을 찾는 일은 깊은 사고(思考) 없이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겐 찾을 길이 없다. 딸린 식구가 없다면 모를까 매일매일 네건 내 것이고 내건 내 것이라 싸우는 아이들, 그리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루함을 끝까지 파고들 용기를 가진 아빠는 없다. 그런데 정말 '심심할 권리'는 탐나도록 누려보고 싶다. 나 혼자라면....
돈벌이가 안 되는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아내는 없다. 이렇게까지 단정 지어 말하면 안 되지만 적어도 남편이 밖에 나가 뻘짓하고 다니는 꼴을 좋아할 여자는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나 애들한테 애정을 더 쏟으라는 잔소리만 들릴 뿐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내버려 둔 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용기 있는 남편들. 이런 남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아내의 잔소리야 어떻든 주말만 되면 밖으로 나가는 남편들을 동네 아줌마들의 입을 통해서 아내의 입으로 듣게 된다. 남편들아! 혼자 나갈 놀 거면 돈이라도 벌어 와라! 이런 요구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남자들이라도 주말 시간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당당하게 나갈 이는 몇이나 될까. 돈벌이도 안 되는데 혼자만의 여흥을 즐기러 나간다면 그건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를 위해서 산에 계단을 만든 남자, 가족을 위해서 큰 돈벌이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계속 노력하는 남자. 설령 그 모습이 한심스럽고 입에선 쯔쯔쯔 혀를 찰망정 누군가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잔소리보다는 칭찬 한마디라도 해주면 어떨까. 남자는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많다. 특히 아내에게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깨는 축 늘어지고 만다. 그런 무익해 보이는 일이 언젠가는 삶의 중요한 의미가 될 때가 있다는 것. |
"돈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에너지를 사업 말고 다른 활동에 쏟는 쪽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현금이 아닌 다른 것에서 부유해졌다는 뜻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기하면서도 약 오르는 사실 하나는 아예 안 읽으면 모를까, 책은 보면 볼수록 읽어야 할 목록이 점점 많아진다는 점이다.
책을 읽지 않았을 때와 읽을 때의 가장 큰 차이는 서점에서 깨달았다. 책을 읽지 않았을 때 서점에 가면 수많은 책더미에서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도대체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다가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며 서점에 갔을 때, 비로소 읽고 싶은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신기했다. 책을 알아가니까 더 많은 책이 눈에 들어온다. "책은 보면 볼수록 읽어야 할 목록이 점점 많아진다는 점"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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