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가치랑 보수는 딱히 일치하지 않으니까, 신경 안 쓰는 게 나아."
"그런가요?"
"잘 버는 놈들일수록 제대로 된 일 안 해. 거만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아 뽁뽁거리며 버튼이나 누르고 사람을 아랫사람 부리듯이 부려먹고. 그보다는 짐 나르고 물건 만드는 사람들이 훨씬 훌륭한데 말이지."
살면서 일의 가치랑 보수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작은 회사만 다니다 보니 정말 절절하게 느끼면서 살아간다. 속이 문드러지고 짜증이 나는 일이다. 내가 바라보는 내 일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기술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왔고,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게 했다. 사람이란 게 항상 자기와 타인을 비교하게 된다.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울하고 짜증도 나고. 세상엔 너무나 많은 뉴스거리가 있어서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사실 앞에서 절망감을 느끼곤 한다. 그냥 아무런 기술도 없이 좋은 기업에서 단순 노동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윤택한 생활을 한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내가 가진 기술을 익히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그 속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시간은 회사의 규모 앞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며칠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일과 2, 3년은 배워야 할 수 있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일의 가치를 단순히 단순 노동이냐 아니냐로 판단할 수 없지만 어렵게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로 괜찮은 보수를 받는 것을 볼 때면 조금은 우울해진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워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업무가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복지가 좋은 큰 회사에서 하다못해 물품 박스를 나르는 일이 자신이 오랜 시간 해온 일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뉴스를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뭐 그 회사는 원래 크니까 그렇지, 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인정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일의 가치와 보수는 정말이지 털끝만치도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일의 가치를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둘 수는 없다. 사회가 정한 가치가 일의 기준이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에 딱히 반격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혼자서 분할뿐. 내가 익히고 배운 기술로는 사회가 바라보는 일의 가치에 합당한 보수를 받을 수 없다는 현실. 20년을 넘게 일해도 도시근로자 평균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사람의 넋두리라 해두자. "뛰쳐나가! 왜 그런데 있어?" 라고 말한다면, 솔직히 제대로 된 반론을 펼칠 수 없다.
"그냥..... 갈 곳이 없어서"라고......
"되돌릴 생각이세요?"
"가능하다면."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 게 나아요." 나는 스스로 인식하기도 전에 말하고 있었다. "과거만 돌아보고 있어봐야 의미 없어요. 차만 해도, 계속 백미러만 보고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사고가 난다고요. 진행 방향을 똑바로 보고 운전해야지. 지나온 길은 이따금 확인해보는 정도가 딱 좋아요."
이제 내일이 오면 가족은 해체다. 자신의 잘못으로 와이프와 이혼하고 딸과도 헤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야사카는 과거에 좋았던 시절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살아보니 그렇다. 자꾸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고, 돈 벌지 않아도 되는 아이 때가 좋았고, 아무 생각 없이 룰루랄라 친구들과 즐기고 놀았던 때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미래에 내가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게 열심히 살았을까. 마흔일곱의 중년 아저씨도 모르는 것을 젊은 청년 오카다는 이미 알고 있다. 과거만 돌아보고 있어봐야 의미 없다는 것을. 인생이 나이가 중요하지는 않다. 과거를 돌이켜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이라도 앞에 놓인 장애물에 다치지 않게 똑바로 바라보고 살라고. 지나온 길은 이따금 돌이켜 보라고.
"발전적인 해체니까." 어머니가 나를 봤다. "이건 끝이 아니라,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내일부터는 전부 휴가." 오카다 씨는 또 그 말을 한다.
"휴가 좋죠." 어머니가 바로 반응했다. "그래, 나도 아빠도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내일부터는 휴가라는 기분으로."
엄마는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는 것을 '휴가'라고 한다. 이혼은 휴가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으면 이런 말이 나올까.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내일부터는 휴가"라고 결론 내린다. 가족에서 이제는 혼자가 되는 것이 휴가가 된 것이다. 어떤 사연으로 남편 하야사카가 바람을 피워 가족 해체까지 이르는 상황이 됐는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 가족으로서 마지막 여행이 끝나면 내일부터는 휴가라고 말하는 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으면 제멋대로 앞으로 간다는 말." 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왠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기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앞으로는 가게 되는 거야."
과연 그럴까, 하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내 몸에 달려 있을, 보이지 않는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어본다.
운전하지 못 하는 사키와 엄마. 오카다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자동차 운전하는 법을 알려주고 떠난다. 기어만 드라이브에 넣으면 움직이는 자동차. 기를 쓰고 살아도 어려운 것이 삶이다. 그런데 기어만 넣으면 제멋대로 움직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기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앞으로는 가게 되는 거야." 이 대사에서 '앞으로는'의 '는'에 엄마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다. 힘들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남편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냥 모든 걸 용서하고 가족이 해체되지 않는 상황을 바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표면적으로는 남편이 바람 핀 사실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 모든 걸 내려놓고 용서한다면 그래도 가족으로 남을 수 있다는 바람이 엄마의 진짜 속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는.
"예를 들면 어딘가 곤란한 사람이 있을 때 도와주자는 마음과 어차피 곤란한 게 나도 아니고, 하는 마음 두 개가 있어."
"무슨 뜻이야."
"게다가 곤란한 사람이나 힘든 사람들은 세상에 많이 있잖아. 어차피 모두 다 도울 수는 없으니까 남을 돕는다는 건 의미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 남을 돕는다는 게 애초에 잘난 체하는 것도 같고."
초등학교 4학년인 오카다가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를 보며 과연 초등학교 4학년이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면 오카다는 나보다 훨씬 정신적으로 성숙한 아이다. 곤란한 사람을 보고 두 가지의 생각이 있다는 것. 예전 그 또래에 엄마 따라 시장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시장에 가면 항상 보이는 사람이 있다. 좁은 길바닥에 누운 채로 기어 다니며 한 푼 달라는 사람. 그런 아저씨를 보고 나는 그냥 '불쌍해'라고만 했다. "엄마 저 아저씨 불쌍해"라고 하면 엄마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더 불쌍하거든." 쓰잘머리 없는 생각하지 말라는 꾸중을 듣곤 했다. 이 상황을 분석해 보면 내가 '불쌍해'라고 했던 말은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의 감정이고, 엄마의 '우리가 더 불쌍하거든'이라는 대답은 남을 돕는 건 의미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 데 누구를 도와" 주로 이런 말이 내가 어릴 때 듣고 자랐던 장면이다. 그래서일까 곤란한 사람을 돕는다는 건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어릴 때부터 굳이 배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에 밴 듯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불우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일지도.... 오카다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곤란한 사람을 보고 두 가지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옛날을 돌이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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