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도움을 주려는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내고 저렇게 말하는 거야. 위험하니까 차에 타라고 한 것뿐인데 말이야. 남의 호의를 무시한 채 아저씨는 그냥 제 갈 길을 걸어갔어.
동화 같은 이야기다. 사노 요코의 [문제가 있습니다]에서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꼽는다면 그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좀머 씨 이야기]라고 했다. 동화를 그려 왔던 저자가 인생의 책이라고 했던 바로 그 책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살면서 어릴 때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를 때가 있다. 나에게도 판타지에서 나오는 마법사 같은 인물이 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쯤 일이다. 엄마 손을 잡고 동네에 있는 어떤 집으로 가면 그곳에서 맛있는 단팥죽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집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은 작은 문이 있었고, 그 작은 네모난 문이 열리면 그곳에서 조그마한 그릇에 담긴 단팥죽 한 그릇이 나왔다. 마치 요술 상자 같았다. 엄마는 항상 나를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단팥죽을 사줬다. 단팥죽을 만들어 파는 아저씨가 어린아이에게는 환상의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게 간판도 없는 곳에서 작은 나무문이 열리면 맛있는 단팥죽이 나오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단팥죽을 좋아한다. 단팥죽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항상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좀머 아저씨 이야기] 또한 아이의 어릴 적 기억으로 쓰인 이야기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마을의 이상한 아저씨의 존재는 아이의 시각에서는 신비로웠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린 거라고 그래서 걷는 거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는 그런 아저씨가 신경 쓰인다. 결국, 아저씨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데 그 광경을 유일하게 지켜본 아이. 아무에게도 아저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솔직히 아저씨가 왜 걸어 다녀야 했는지 알려주길 바랐지만, 이 책에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동네의 이상한 아저씨를 동화처럼 역어 놓았다.
어릴 적 기억을 토대로 써 나간 '좀머 씨 이야기'에서 삽화의 힘은 정말 강력했다. 이 책의 삽화를 그린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없었다면 큰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다. 중간중간 나오는 그의 그림과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이야기는 정말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낸다. '내가 지금 동화책을 읽고 있나?' 이런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림을 감상하며 글의 의미가 명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좀머 아저씨는 나의 어릴 적 추억, 단팥죽 아저씨를 떠오르게 할 만큼 인상 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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