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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빵집 [우산이나 양산이 필요한 빵집]

핫플레이스/빵집 & 카페

by gyaree 2017. 9. 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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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2 토요일 아침 9시 54분

go le pain 고래빵

맛없는 브랜드 케이크 싫다!

겉모습만 반지르르한 캐릭터 케이크를 먹은 뒤, 입안에 식용유를 한가득 퍼넣은 듯한 불쾌한 기분에 정말 화가 치민다. 파리바게뜨에서 파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카카오 캐릭터 케이크. 대충 어떤 맛일지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그래도 딸내미는 좋다고 잘도 먹는다. 솔직히 한 숟가락 떠먹고 쓰레기통으로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이런 케이크를 먹고 나니 맛있는 빵이 더 간절하게 생각난다. 빵을 좋아하는 나는 이미 검색 버튼을 눌렀다. 이 더러운 기분을 달래 줄 맛있는 빵을 찾아서. 




우산, 양산이 필요한 빵집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빵집을 하나 찾았다. 아침 10시까지 합창단에 가야 하는 딸내미를 내려주고 바로 빵집으로 달렸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오픈했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했다. 귓속으로 들어오는 신호음은 계속됐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직 가게를 열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일단 가보기로 결정. 내비게이션은 남은 시간 3분을 표시하고 가까운 곳에 빵집이 있다고 알려 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새로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깨끗한 빌라촌이다. 골목을 들어서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하면 바로 견인된다는 플래카드가 무색할 정도로 좁은 길바닥은 이미 차로 꽉 차 있었다. 다행히 빵집에서 가까운 곳에 한 곳이 비어있어 주차할 수 있었다. 

아! 그런데... 사람들의 줄이 보인다.

빌라 두 동에 걸쳐 줄 서 있는 사람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가게가 오픈하지 않았을 거라는 염려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게 진짜 빵을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인지 궁금해 줄 맨 앞으로 갔다. 정확히 빵집이 맞았다. 이상한 것은 이 빵집에 간판이 없다. 그 흔한 베이커리 라든가, 빵이라는 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 10시가 못 된 시각.



저 줄이 언제 줄어들까?

기다림

한결같이 손에 들려있는 우산들. 빨간색, 검은색, 파란색, 베이지색.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이 우산이나 양산을 쓰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쬔 뜨거운 햇볕에 우산을 쓰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을. 이 줄이 길어봐야 얼마나 걸리겠어 하는 마음에 그냥 줄을 섰다. 앞에 선 아줌마의 한 마디에 바로 차에서 우산을 꺼내왔다. 이 자리까지 오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는 것이다. 우산을 쓰고 쑤시는 다리를 참으며 기다려 보지만 뜨거운 햇살을 막기엔 역부족. 빵 하나 먹으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짜증이 밀려온다. 



빵집 간판은 어디로?

줄 서시오!

바로 앞에 선 아줌마의 수다가 시작됐다. 친구들의 소개로 평일 날 1시가 조금 넘어서 왔는데 빵이 다 팔려 닫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와서 줄을 서게 됐다는. 도대체 어떤 빵집이기에 이리도 사람이 많을까? 내 평생 빵집에서 줄을 서본 것은 처음 있는 일. 관광지에 그 유명하다는 빵집도 이렇게 줄을 서지는 않았다. 이런 빌라촌의 빵집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으니. 이런 긴 줄에 보행기를 끌고 온 족히 팔십은 넘어 보이는 백발 할머니도 참여하고 있다. 허리가 굽은 작은 할머니도 보행기를 끌고 이 집 빵을 사려고 줄에 서 있다. 이 뙤약볕에 힘드실 텐데 걱정되던 차에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제가 자리 지켜드릴 테니 안쪽에 들어가서 앉아 계세요." 아저씨의 착한 마음씨에 할머니가 쉴 수 있었다면, 잔머리 굴리는 젊은 놈도 있었다. 한 시간은 기다려야 순서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던 힙합 모자에 팔과 다리에 문신한 젊은이와 여자친구가 줄을 서다 말고 벗어난다. 무언가 일을 꾸미는 듯한 몸동작을 하면서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등을 보이며 뒤를 한 번 힐끔 돌아본다. 잠시 후 빵을 사서 나온 아기 아빠에게 빵 봉투 하나를 건네받는다. 아마도 아기 아빠에게 부탁을 한 모양이다. 자신이 원하는 빵을 사다 달라고. 아기 아빠의 덕택에 문신 젊은이는 한 시간 이상을 세이브한 샘이다. '참! 젊은 놈이 할 짓이 없어서 이런 곳에서 잔머리를 굴리다니.' 이런 비겁한 장면을 나만 본 듯해서 그 젊은 놈이 더욱더 얄밉다. 빵집이 유명하니 이런 일도 벌어진다.    



깨끗하고 정갈한 가게 안

가게 바깥에서

프랑스풍의 누런 종이봉투

가게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입구 옆 유리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다. 빵 굽는 향기가 입구로 빠져나와 침이 떨어질 지경이다. 빵을 주문하는 사람들로 가게 안은 꽉 들어차 있고, 하얀 종이에 빵을 고이 싸서 누런색 종이봉투에 집어넣는 점원의 손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서양 영화에서 봤던 누런 종이봉투에 빵을 담는 모습은 제대로 된 빵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과 고급스러움이 풍기기에 충분했다.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파리바게뜨나 여타 브랜드 빵집에서는 맛보지 못한 신선함이 묻어난다. 나도 이 봉투를 받으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은 아주 조금은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테이블이 있는 공간의 인테리어

총 직원 4명. 깨끗한 주방이 신뢰감 업!

오픈 주방

가게 주방은 시원하게 오픈된 공간에 빵을 썰고 포장하는 큼지막한 통나무 테이블이 있고, 그 뒤로 갓 구워진 빵들이 손님의 입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차례를 기다린다. 구워낸 빵들은 유리 진열대에 넣을 새도 없이 손님들의 손에 딸려 사라지고, 아마도 파티시에로 보이는 남자만이 반죽이 된 밀가루를 오븐에 담아 나르고 나른다. 점원 네 명 전부 쉴 틈 없이 빵을 자르고, 계산하고, 포장하고, 굽는다. 반투명한 하얀 종이로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포장한 빵은 보고만 있어도 믿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쁜 와중에 밖에서 땡볕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시식 빵을 준비하기도 하며 누구 하나 서두르는 기색 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이 집 빵은 크다.

이 집에서 구워진 빵은 대체로 크다. 작은 빵을 찾아볼 수가 없다. 큼지막한 빵은 내 지갑에 있는 돈이 나가도 아깝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나름 고급 빵집이라는 곳에 가면 아주 작디 작은 빵이 얼토당토 않은 가격표를 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비싼만큼 맛이 증명하면 괜찮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 이름값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유명 빵집에 비해 커다란 빵을 내놓으면서도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는다.



이 집에서 가장 비싼 빵. 녹차 케이크 만 원.




왼쪽 줄은 일반 손님오른쪽의 줄은 임산부들의 줄

주인장의 따뜻한 배려

1시간 40분을 기다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카운터 오른쪽으로 임산부들이 또 다른 줄을 만들고 있다. 무얼까? 궁금하던 차에 이 가게는 임산부에게는 줄을 세우지 않는다고 다른 손님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매일매일 밖에서 한 시간 이상을 줄 서는 손님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 임산부나 갓난아기와 동반한 엄마들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빵을 구매할 수 있다. 어느 빵집에서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한 가지 더 놀라웠던 것은 팔십이 넘어 보였던 백발 할머니에게 빵이 가득 담긴 봉투 하나를 그냥 주었다. 오래 기다리게 한 어르신에게 배려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프랑스 독일 밀가루

이곳의 또 다른 점은 프랑스 밀가루와 독일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다는 것이다. 빵을 한입 물었을 때 제일 먼저 밀가루 맛과 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산 밀가루에 길들어진지 오래. 빵의 맛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브랜드 빵집에서 판매하는 빵의 질감과 촉감이 아닌 혀와 맛으로 느낄 수 있는 차이를 보인다.







달걀 파동 걱정 뚝

빵에는 전부 달걀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던 문외한에게 의외로 달걀 없이 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공지. 

치즈고래, 여행용 케이크, 크루아상. 세 종류에만 달걀 첨가. 그렇다고 크루아상을 먹지 않는다면 큰 후회라는 것.




고메버터브레드포카치아치즈 치아바타

고메버터 브레드 & 포카치아

빵을 싫어하는 아들내미와 와이프가 앉은 자리에서 꿀꺽한 고메버터 브레드는 밀가루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준 빵이다. 그 안에 듬뿍 바른 버터크림은 느끼하지 않으며 달달한 맛이 종이에 묻은 크림까지 빨아먹게 하는 매력이 있다.
포카치아는 이곳의 특제 토마토소스와 곁들이면 최고다. 매운맛을 좋아한다면 할라피뇨 포카치아 최선. 이곳의 시그니처 빵을 맛보려면 적어도 9시 전에는 줄 서야 한다.  



이날 세 봉투 구매열심히 포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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