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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소지섭길에서 만난 '팬'과 '편'. 걷는 아저씨, 25일

일상/하루하루

by gyaree 2019. 6. 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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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과 편의 차이

소지섭숲 1호 / 영동 6교 근처

 

양재천 대치교에서 영동 6교 방향으로 걸어오다가 2시 방향 산책로에서 우연히 발견한 길. 영동 6교에 거의 다다랐을 때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이 팻말이 세워진 건 3년 전이라서 페인트가 지워져 잘 알아볼 수는 없어도 배우 소지섭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에서 소지섭이라는 이름을 보고 흠칫 놀랐다. 표지에 쓰인 문구를 눈으로 훑었다. 배우 소지섭 데뷔 20주년과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대만 팬클럽이 조성한 소지섭숲 1호라고 쓰여 있다. 다시 한번 한류의 파급효과를 느낀 순간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우리나라 배우 소지섭을 기리기 위해 배우 이름을 딴 숲을 만들었다니 흥미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이곳은 정말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산책로다. 다른 곳보다 산책로 폭이 좁기도 하고 조금은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풍기며 사람이 붐비는 것이 싫다면 아주 최적의 코스다. 혼자 조용히 걷고 싶다면 이 길을 추천한다. 

 

살아가면서 일반인이 팬을 얻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팬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대는 연예인이 아닐까. 스포츠 선수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스타다. 무릇 팬이라 하면 역시 연예인과 스타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가수가 됐건 배우가 됐건 아니면 스포츠 선수가 됐건 스타에 팬은 자연적으로 따라붙는 단어가 됐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의 시대에서 팬을 갖는 건 오직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뿐이었다. 일반인에게 팬이 생긴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스타 반열에 오른 '박막례 할머니' 영상을 봤다. 이 할머니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미 많은 팬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팬을 '편'이라고 부른다. 영어 발음이 서툰 할머니에게 팬은 편으로 바뀌어 재탄생했다. 나는 지금까지 팬을 '편'으로 해석한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박막례 할머니는 분명히 편이라고 발음했다. 할머니의 사투리 때문인지 아니면 영어 발음이 어려워서 그런 것인지 '팬'은 할머니의 입을 통해 '편'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편'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정감 있게 다가왔다.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호응해 주기 때문에 같은 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할머니가 의도적으로 '편'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일컬어 팬이라고 한다. 이건 전 세계 공통어이자 영어이다.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영상에서 할머니는 항상 "편들아!" "편들아!"라고 말한다. 그 어감이 팬보다는 편이 훨씬 좋게 다가온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 즉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편'이라는 얘기다. 내 팬이 아니라 내 편. 이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살면서 내 편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다. 내가 불행해지거나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주변에 내 편이 있다는 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보석이나 다름없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게는 팬이 어울린다면, 이 할머니나 평범한 일반인에게는 '편'이 그 무엇보다도 잘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불특정 다수를 내 팬이 아닌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조차 내 편을 만드는 일은 정말로 버겁고 어렵다. 팬이 나와 조금 더 동떨어진 느낌이라면 편은 한 발짝 내 앞으로 다가서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내 편이다. 나는 박막례 할머니처럼 유튜브 스타는 아니지만 내게는 강력한 세 명의 편이 있다. 아내와 딸과 아들. 이들은 나에게 영원토록 편이 되어줄 사람이다. 나 또한 그들의 편이고. 

 

"내 편들아! 사랑한다."

 

소지섭 무궁화길을 걸으면서 '팬'이 아닌 '편'을 생각한다. 인생에서 내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진리를 배운다. 배우 소지섭길은 팬이 만들어 주었다면, 내 가족의 행복은 내 편과 함께 만들어나간다.     

소지섭 무궁화길(좌) / 소지섭 나무 51(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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