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뛰어놀고 싶다.
아침에 출근 버스를 타는 길. 공터에 굴착기 한 대가 땅을 파내고 있다. 아침부터 타타타 시멘트를 찍어대는 중장비 기사들. 그 공터는 배드민턴 네트가 세워져 있고 평시엔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거나 뛰노는 공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공터에 굴착기가 나타나더니 면적이 반으로 줄었다. 대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아이들이 뛰놀지 못하는 삭막한 땅덩어리로 변신했다. 아이들이 뛰놀던 공간이 나무숲으로 바뀐 이유는 소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시끄러워 고통을 호소하는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 없앴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졌다. 여기에서 양측의 입장 차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민의 시끄러움에서 해방될 권리 그리고 아이들의 맘대로 뛰어놀 수 있는 운동권에 대한 두 논리다. 공터가 조성된 목적은 주민의 보다 윤택한 생활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지나가다 이웃사촌끼리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배드민턴도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이 인라인이나 킥보드를 타며 뛰노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써 볼 때마다 활기차고 건강한 삶들이 느껴졌다. 이 공간이 있어 참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공터와 가깝게 아파트가 있다 보니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많은 불쾌감을 주지 않았을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주민이 아니라 일부 주민의 불만으로 이 공터를 없애지 않았을까에 대해 의심이 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남을 의심하는 건 좋지 않다. 생각해보면 이 동네에 공터는 여기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 어느 집에서나 들린다. 나무숲으로 바뀐 이곳은 이 동네에서 제일 좋게 조성된 공간이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타 공터보다 더 좋아하는 놀이터가 됐다. 맞다. 동네 놀이터는 따로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놀면 된다는 어른들의 이기적인 마인드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개개인이 소음을 받아들이는 기준은 다르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공터가 있어 행복했던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뭉개버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나무만 심어놓은 황량한 땅으로 바꿔버린 것이 아쉽다. 자신의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컴퓨터나 만지며 놀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지 않을까. 밖에 나가서 손톱에 때가 끼도록 흙도 파보고 뛰놀며 힘차게 어울리는 모습이 더 풍요로운 그림이 아닐는지.
어릴 적 동네 어귀에 아이들이 놀기 좋은 아주 적당한 공터가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동네 모든 아이의 집합장소였다. 적당한 물기를 머금은 길게 이어진 땅은 그야말로 구슬치기 공식 구장으로서 훌륭했다. 그런데 가끔은 집 담벼락에서 아줌마나 아저씨가 튀어나와 시끄럽다고 성질을 부리며 쌍욕을 해대는 어른들이 있었다. 하기야 공터 땅 옆으로 집 담벼락이 길게 늘어서 대문 밖이 바로 우리가 놀던 아지트였으니 말이다. 남의 집 창문 앞에서 떠들어대니 어느 누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어른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한 번쯤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공터는 '空'이 아니라 '共'을 써서 '共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어있는 땅,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군가는 예민해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공터가 두려움의 '恐'터가 되지 않는 어른들의 조그마한 배려로 모두가 즐거운 공터로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유아적인 마인드일까.
동네에 사람 발길이 끊기고 자꾸만 사라지는 공터를 보며 시끄러워서 피해를 입는 주민들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관점에서도 한 번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리를 내고 싶다. 어차피 모든 결정은 어른들이 내리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너희들은 조용히 있어.'라는 방식으로 사라진 공터. 조금은 시끄러워도 활기찼던 동네의 옛 모습이 더 좋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오늘 아침 공터를 무너뜨리는 굴착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이들이나 나나 많은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문득 그 옛날 빗자루를 들고 튀어나와 시끄럽다고 꺼지라고 외치는 아줌마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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