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술년. 해가 바뀌었다는 것을 자주 가던 식당에서 깨달았다.
해를 넘겨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도 이제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진 지 꽤나 긴 시간이 흐른 듯하다. 예전에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연말이면 무언가 들뜬 마음에 내년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되네였던 적이 있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좋을 거라는 기대감. 그렇다고 남보다 열심히 살아서 내년엔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특별한 노력도 하지 않은 주제에 무슨 자신감이 있어 청사진을 바랐는지 내 입에서도 어이가 없을 정도니 말이다. 젊음의 단순한 뜨거운 혈기가 가슴마저 뜨겁게 만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한 살 두 살 먹다 보니 해가 넘어가는 것에 별다른 의미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감정이 무뎌진 건지, 세상살이가 더 힘들어서 그런지. 아마도 후자로 인한 전자의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해 아침, 달력의 끝자리 수가 바뀐 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은 다름 아닌 나의 단골집. 단골집까지는 아니어도 생각나면 가고픈 식당. 빡빡한 월급에 조금이라도 저렴하고 맛있고 양이 많은 식당을 찾게 된다. 그러다 나의 이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식당이 나타나면 바로 그곳이 단골이 된다. 나에게 있어서 단골의 첫 번째 조건은 가격이다. 한 마디로 돈이다. 맛, 깨끗함, 좋은 서비스, 남들의 평판. 이 모든 요소보다 음식의 가격이 내겐 제일 중요한 점심밥의 선택 요소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말. 나는 싼 비지떡을 찾아서 동네 동네를 돌아다닌다. 내가 일하는 동네 근처의 점심값은 5천 원에서 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표를 달고 식당 주인이 손님을 유혹한다. 5천 원짜리 식당이라고 해서 밥이 형편없거나 맛없지도 않고 만 원짜리 음식을 점심 메뉴로 내놨다고 해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음식에 중국산 식재료가 들어간다는 것만 빼면 그다지 둘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종업원이 많은 곳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인테리어가 낫다고 할 수 있겠다. 직장의 점심이라는 것이 연인끼리 먹으러 가는 것도 아니어서 화려하게 치장을 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식당엔 갈 필요가 없다. 동료들과 무드 잡을 일은 없으니까. 회사에서 점심값을 지원해 좋은 음식을 먹어도 된다면 모를까.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박봉에 허덕이는 사람에겐 그저 싼 집이 최고다. 만 원을 내서 천 원짜리 네댓 장은 거슬러 받을 수 있는 식당. 어떤 세상인데 너무 큰 욕심 부리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참! 쪼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식당에서 점심 하나 먹는 걸 뭐 그렇게 청승 떨듯 얘기하냐고. 그래서 아주 가끔은 만 원짜리 한 장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식당에 가는 날도 있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삼기도 한다.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처량하게 보이려고 이러는 것도 아니고 동정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2018년 1월 2일은 휴일이 아니므로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다. 새해 첫날 자주 가는 식당의 벽에 A4 용지로 프린트한 하얀색 종이에 "올해부터 1, 000원 올랐습니다."라는 문구에 나의 눈이 10초 정도 머문다. '아, 해가 바뀌었구나!' 이제야 해가 바뀌었다는 현실을 직감했다. 새로운 해가 시작돼서 월급이 오른 것이 아니라 나의 단골집에서 그것도 1, 000원이나 가격을 올렸다는 주인장의 소심하게 작은 글씨체로 프린트한 종이에서 2018년 무술년을 시작했다. 주인장도 미안했던지 크고 눈에 띄는 서체로 프린트하지 않고 흐리고 작은 글씨로 음식값의 인상을 알렸다. 최저 임금도 올랐으니 음식값의 인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새해 첫날의 점심을 마주했다. 단골집에서의 1, 000원 인상된 금액이 다음에 이 가게를 다시 와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만든다. 아마도 일주일에 두 번은 방문했던 곳이 한 번으로 바뀌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식에 대한 만족감이 인상 금액을 압도하는 힘으로 찾는 횟수는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식당에서 찾았다는 것이 너무 소인배적 기질 때문인가. 남들은 승진이나 두둑한 월급으로 세월이 바뀌는 것을 직감하는 시대에 점심 한 끼 먹으면서 새해는 밝았다. 올해도 저렴하고 맛있고 주인장의 인심이 좋은 식당을 찾아 헤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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