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 대지진
서울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내가 이곳 서울에서 지진을 경험하기는 처음이다. 2017년 11월 15일. 수능을 하루 앞둔 날. 핸드폰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린다. 진동으로 해놓은 핸드폰에서 시끄럽게 사이렌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앞에 앉은 회사 직원들의 핸드폰에서도 동시에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6km 지역에서 규모 5.5의 지진 발생이라는 문자가 보였다. 문자가 도착하고 30초가 지났을까. 앉아있던 의자 아래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진동하는 느낌이 전달됐다. 동시에 회사에 있던 직원들의 입에서 “느꼈어? 느꼈어?”라며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떠드는 목소리. 아마도 나처럼 서울에서만 살았던 그들에게 이번 지진이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지진을 직접 첫 경한 사람들의 1차적인 반응은 ‘무섭다’가 아니라 ‘신기하다’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한민국 대부분 사람은 지진에 관련된 어떠한 교육도 받지 않고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발전해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지진에 관련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처음 지진 교육을 받은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옆 나라 일본이다. 그것도 24년 전의 일이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도 지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이런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진에 관련한 학문과 지진 발생 후의 대처 방법이 발달해 있다.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연구해야 하니 당연히 그러해야만 했을 것이다.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일본 땅이지만 어떤 면에선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지진에 관련된 학문의 깊이가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 그리도 또한 그에 대처하는 자세도 우리와는 판이하다. 자국민을 위한 지진 교육은 필수로 잘 꾸려져 있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그 나라에 머무는 외국인에게도 지진 교육을 하는 나라다. 개개인이 지진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간단한 조치부터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동네의 안전한 장소가 어디 있는지도 교육을 받는다. 당황하지 말고 제일 먼저 해야 할 행동으로 모든 문을 열어두라 교육한다. 무조건 외부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초 교육이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동경에서 일본어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지진 예방 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간 곳은 어떤 구에서 운영하는 지진 센터였다. 지진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한국인 유학생에게는 더없이 설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 들뜬 마음이 앞섰다. 지진을 겪어보지 못한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기억한다. 과연 지진이 어떤 것일까. 센터 안에는 모형으로 만들어진 방이 서너 개가 일렬로 있었다.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있게 유리로 되어있는 구조에 방 아래는 지진을 일으키는 기계 장치가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각각의 방문에는 지진의 진도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가 붙어있다. 마그니츄도 3~4, 5~6, 7 이상. 지진의 세기에 따라서 체험해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제일 오른쪽에 있는 방엔 상하로 흔들리는 지진을 경험할 수 있는 방이 하나 있다. 지진이 두 종류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과 상하로 흔들리는 지진이 있다는 것이다. 상하로 흔들리는 지진이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는 지진의 세기에 따른 경험을 모두 체험했다. 가짜 지진이라서 그랬는지 너무나 재미난 체험이었고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진도 5를 넘어가는 방에서는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고, 진도 7 이상의 상하로 흔들리는 지진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실제로 이런 지진이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진을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내게 이 교육은 재미에 불과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나의 방에서 잠자던 중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건이 살짝 침대 밑으로 떨어질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실제로 겪은 지진은 더는 재미난 경험이 아니었다. 교육받은 대로 제일 먼저 창문과 현관문을 열었다. 옆 방에 있던 같은 학교 형도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냥 재미로만 알았던 지진 체험이 나에게 일어나니 무서움과 공포감이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다행히 지진은 금방 멈추고 끝났다. 떨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올리며 그날 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인에게 지진은 먼 나라의 일이다. 이렇게 치부하며 40년 이상을 살았다. 지진이 발생한 곳과 400km 떨어진 곳에서 직접 지진을 경험하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뉴스에서 가장 많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빌라를 받치고 있는 부서진 필라(교각)이다. ‘저러다 건물 무너질 텐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일본에 있을 때 고베 지진이 일어났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었다. 지진 대비가 잘 되어있는 일본도 속수무책이었다. 15층짜리 아파트가 1, 2층 사이에서 딱 꺾여 앞으로 부러진 영상도 보았다. 지진의 여파로 번진 불은 16차선 도로를 넘어 다른 동네로 번지는 영상도 봤다.
이제는 우리도 지진을 그냥 웃어넘길 재미난 경험 거리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이번 포항의 지진이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는 꾸준한 지진 대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제발 건물도 지진에 대응하는 설계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특히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건물의 내진 설계 비율이 20% 정도라는 사실. 일본은 지진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그다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주변 공공건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만큼 지진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있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학교나 공공건물은 안전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공공건물은 그렇지 못하다. 지진 경험이 없는 나라의 국민이 이런 재난을 겪는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할 것은 뻔하다. 실제로 이번 지진으로 포항을 떠나는 차량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을 알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솔직히 우리나라에 지진 전문학자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반가웠던 것은 지진 발생하고 긴급재난 문자가 바로 왔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된다. 정부가 바뀌어 하나씩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포항 지진이었다. 이 재난 문자에 그치지 말고 국민에겐 지진 교육을 건설 업계엔 내진 설계에 대한 의식을 바로 잡아나가는 국가의 방침을 정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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