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수 없는 사탕
너는 느닷없이 식탁 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이름을 연거푸 두 번 부른다.
"미나야! 미나야!"
4인용 식탁에는 다섯 명이 앉아 있다. 너의 바로 오른쪽 옆에 친구 영화, 오른쪽 반시계 방향으로 이 집의 세대주이자 친구 경호, 반대편에 두 여자 중 오른쪽은 너의 아내, 그리고 바로 맞은편에 경호의 아내 미나가 앉아 있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 회포를 풀려고 고이 간직해 둔 일본 술을 마시며 즐거운 수다가 이어지는 밤. 모두 즐겁게 얘기하던 중 너의 큰 목소리에 집중한다.
"미나야! 내가 모르고......"
"뭐? 뭔데?"
"내가..... 그.... 있잖아. 사.... 탕! 모르고 먹었어."
"뭐?! 뭐라구?"
즐겁게 얘기가 오가던 분위기에서 일순간 미나의 얼굴은 경직됐다. "사탕을 먹었다"는 말에서 얼굴은 1초 만에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지... 진짜, 진짜, 먹었어? 정말? 어머 어머 어떡해! 그게 어떤 건대?!"
"내가 모르고... 장식장에 있길래 애들 건 줄 알고... 어떡하지"
"오빠, 껍질은 어쨌어? 껍질은, 껍질은 남겼어? 어떡해 어떡해!.... 그게 어떤 물건인데..."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미나의 분노의 화살은 남편 경호에게 쏟아졌다. 그게 어떤 물건인데 친구가 먹는 걸 그대로 보고만 있었냐고. 즐거운 술자리가 삽시간에 얼어버렸다. 30년 지기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와 오랜만에 갖은 저녁 시간. 애들이나 좋아하는 츄파춥스 사탕 하나를 먹어버린 너의 행동으로 벌어진 사태는 30년 우정을 깰지도 모를 분위기로 변해갔다.
그 사탕은 단순한 사탕이 아니었다. 경호 집에 도착했을 때, 미나는 없었고 경호 혼자 집에 있었다. 집안을 돌아보던 중 경호가 이게 '그' 사탕이라고 말했다. 미나가 이미 카톡으로 자랑했기에 그 사탕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었다. 영화 시사회에서(지금 만나러 갑니다) 소지섭에게 직접 받은 사탕이다. 일명 '소지섭 사탕'이다. 영화 팸플릿과 함께 장식장에 고이 장식해둔 막대 사탕 하나. 미나가 좋아하는 배우 소지섭과 눈빛까지 교환하며 받았던 사탕이다. 그야말로 보물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영화관에 모인 관람객 중 유일하게 혼자만 받은 사탕이기에 미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사탕은 이미 사탕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식탁에서 술잔이 돌며 분위기도 오르고 지나간 옛이야기에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순간. 별안간 너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미나야! 미나야!"라고 부른 뒤, 벌어진 사태는 위와 같이 됐다. 너의 몰래카메라에 진실을 모른 사람은 딱 두 사람. 미나와 영화뿐이다. 영화는 사탕의 존재에 대해 아예 몰랐기 때문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덩달아 당황해했다. 순식간에 일은 벌어졌지만 너와 너의 아내, 경호는 서로 눈치로 사인을 주고받아 사태를 즐기려 했다. 이미 이때 미나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장난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로지 소지섭의 사탕이 사라졌다는 절망감 외엔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껍질만이라도 남아 있길 바라는 심정뿐. 극도로 흥분한 상태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의 30년 지기 친구가 먹었으니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미나의 이런 반응에 몰래카메라는 길게 끌기 힘들었다. 더 끌었다가는 큰 사단이 벌어질지도 모를 불안감에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몰래카메라는 막을 내렸다. 속는 사람보다 속이는 사람이 더 가슴이 두근거렸던 순간이다. 한바탕 소동은 미나에게는 지옥이었다면 그 외 다른 사람에게는 천당과도 같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건에 어떤 의미를 담느냐에 따라서 그 물건은 보물이 될 수도 그저 그런 하찮은 물건이 될 수도 있다. 남들이 볼 때 애들이나 좋아하는 막대 사탕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사탕 속엔 소지섭의 향기와 온기가 고스란히 담긴 다이아몬드나 마찬가지다. 감히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김춘수의 '꽃'에서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의미가 바로 이럴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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