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도 현금 단말기 앞에 섰다. 단말기 화면에 표시된 버튼 열두 개 중 내가 누르는 버튼은 단 두 개뿐이다. '예금 출금' 또는 '신용카드' 버튼. 카드를 밀어 넣고 항상 똑같은 동작이 시작된다. 마치 공장 로봇 팔이 정확한 위치에 부품을 꽂아 넣듯이 한 치에 오차도 없이 '예금 출금' 버튼을 누른다. 단말기에 표시된 '입금' 버튼을 눌러본 기억이 언제인가 생각해봤더니 중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 아빠나 친척 어른들에게 용돈 받아서 은행에 가서 눌러봤던 기억이 유일하다. 그 뒤로 내가 은행에서 입금 버튼을 누르는 날은 거의 없었다.
이틀이나 삼일 간격을 두고 아침마다 은행의 단말기 앞에 선다. 점심값으로 딱 2만 원. 단말기 화면에 나타난 버튼을 열 번도 안 되는 클릭으로 그날의 점심값이 나오기만 기다린다. 기계에서 돈을 세는 소리가 들린다. "끼이익 끼이익" "꺼어억 꺼어억"하고 쇠가 갈리는 듯한 마찰음이 끝나면 "철커덕"하고 스테인리스 재질 문이 열린다. 돈 2만 원을 끄집어낸다. 이렇게 하는 시간은 단 1분도 걸리지 않고 끝난다. 옆으로 이어진 단말기 앞에 선 사람들. 저마다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단말기의 버튼을 누른다. 돈다발을 집어넣는 아줌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는 어르신, 통장에 얼마나 많은 돈이 있기에 통장 정리를 하는 아저씨. 이들 모두 기계 앞에서 꾀나 긴 시간 머문다. 누군가는 돈을 빼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단말기, 또 누군가는 돈을 집어넣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 분명히 둘 중 하나다. 나는 오로지 이 기계에서 돈을 빼기만 한다.
정말 매일매일 '입금' 버튼을 눌러보고 싶다.
그런데 까칠한 삶이 '예금 출금'에서 점점 더 '신용카드' 버튼을 누르는 횟수가 늘어간다. 이 단말기가 나에게 언제까지 그 철문을 열어 줄까. "끼이익 끼이익" "꺼어억 꺼어억"하는 듣기 싫은 쇠 갈리는 소음이라도 좋으니 그 시간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 삼 일이면 사라지는 2만 원이라도 좋다. 잔고가 부족하다는 말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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