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자리가 부러웠을까. 나한테 다가온다.
"뭐지? 왜 나한테 오는 거야?"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든다. 녀석의 움직임도 신중하다. 내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사람이라고 판단한 건지.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더니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마치 제 주인 품으로 파고들 듯이 자리를 잡는다. 왠지 얼떨떨하다.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도 없고 개나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 달려온 고양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아마도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서였을까. 허벅지에 올라와서 빙그르르 돌더니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앉았다. 땅바닥에 앉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고양이 발이 내 허벅지를 누르는 느낌이 묘하다. 적당한 압박감과 따스한 기운이 섞여 나쁘지만은 않다. 녀석도 내 허벅지가 그러했을지도.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고 궁둥이를 밀착시킨다. 허락한 적도 없는데 남의 허벅지를 이불로 만드는 녀석.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가 되어 녀석의 바닥이 되어주었다. 손으로 한번 쓰다듬어주지도 못했다. 인간의 손길을 아는 녀석이라 내 품을 파고들었을 텐데. 나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혹시나 이 녀석이 내 바지에 오줌이라도 싸지는 않을까. 귀엽다는 생각보다 그런 걱정이 앞섰다. 빨리 내 허벅지에서 내려가 주기를. 길고양이 하나 따뜻하게 품어줄 아량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따뜻하게 품어준 기억이 없다. 마냥 혼자가 편했고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이 귀찮고 싫어서 피해왔다. 내가 먼저 따스한 손길을 뻗어본 적이 없었다. 이 길고양이에게조차 내 품을 흔쾌히 허락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따스한 품이 그리워 찾아온 고양이를 내칠 수 없어 허벅지를 내주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한 번이 어렵지 다음에 또 만난다면 내 허벅지를 내어 줄게 고양아!
다시 내 옆에 왔어. 내가 좋은 거야?
바이바이! 나중에 또 보자.
2018.10.29
|
|
성폭행피해 부부 자살사건 (0) | 2018.10.31 |
---|---|
어차피 읽을 거 최고의 작품을 읽어라! (0) | 2018.10.30 |
다시 꿈 (0) | 2018.10.29 |
봄과 가을과 여름의 차이 (0) | 2018.10.24 |
나무가 됐다 (0) | 2018.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