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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집에서 나는 소리

핫플레이스/빵집 & 카페

by gyaree 2018. 12. 1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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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소리



나는 빵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모든 빵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맛'있는 빵을 좋아한다. 

뭔 당연한 소리를 지껄이냐고? 

맞다. 하나마나한 뻔한 말이다. 맛없는 빵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난, 껌껌한 새벽에 눈을 떴다.

왜? 

당연하고 뻔한 맛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세수도 이도 닦지 않은 채 운동복 바지에 운동복 윗도리 하나 걸치고 두꺼운 파카 하나 덮어쓰고 현관을 나섰다.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다행이다. 바깥에 인간이 만든 줄이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추운 날,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바로 이곳에 서 있다.



자, 그럼 이곳의 소리를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이곳에서 처음 들리는 소리는 유리 현관문이 닫힐 때 들린다. 문이 열리고 닫히려는 순간, 딱 오 센티 정도의 틈이 남았을 때 '씨이익'하는 쇳소리가 들린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 소리들이 어우러지는데. 그중에 나의 귀를 사로잡는 가장 경쾌한 소리는 종이이다. 이 소리는 다른 집에서는 들리지 않던 소리다. 내게는 그 하얀 종이가 습자지처럼 보인다. 글씨를 적당히 베껴쓰기 편안한 투명도를 가진 얇은 반투명 하연 종이. 하지만 이 종이에는 글씨가 담기지 않고 맛과 향이 스며든다. 설날 어린 딸에게 고운 한복을 입히는 엄마의 분주한 손놀림. 하얀 속치마가 딸의 몸을 감싸는 것처럼 객이 주문한 빵을 하얀 종이에 정성껏 담는다. 사그작사그작, 뽀시락 뽀시락, 갓 나온 빵이 종이와 함께 상쾌한 소리를 낸다.   

널찍한 나무 도마 위에서는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기다란 빵칼이 딱딱한 깜빠뉴 빵껍질을 자르면 이내 부드러운 속 살이 살살살 잘리는 매끄러운 소리가 난다. 


폭신하고 매끈한 속살의 유혹을 참을 수 없는 젊은 언니들. 집으로 가져갈 누런 종이봉투에 담긴 하얀 종이 꾸러미를 다시 풀어낸다. 빠스락 빠스락 소리와 동시에 드러난 먹음직스러운 자태. 한입 베어 물기 전에 일제히 꺼내 든 핸드폰 카메라에서 찰칵찰칵 그 순간을 오려간다. 와삭와삭 달콤한 빵을 뜯어 먹으며 언니들의 입에서는 낄낄낄 웃음소리가 퍼져나간다. 한 사람에 두 개만 살 수 있는 도마 위에 올려놓은 고래버터에 긴 칼이 들어가며 쓰삭쓰삭. 많이 살 수 없어 객들의 입에서는 아쉬운 탄성이.

 

"저거는 뭐예요? 마망 나왔나요? 스콘 나왔나요?" 

자신들이 좋아하는 빵을 하나라도 더 사기 위한 객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스피커에서는 재즈 음악이 흐르고 에스프레소 머신의 그라인더도 그에 호응한다. 

차깍차깍  치치치깍찌깍. 

곱게 갈린 원두를 포터 필터에 담아 커피 머신에 끼우면 지이잉지이잉 소리가 나고 초콜릿색의 에스프레소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러면 매장 내부는 빵 굽는 향기와 커피 향과 재즈 음악이 결합해 흠뻑 취하게 만든다. 소리와 향기와 음악이 서로가 리듬을 타며 객은 즐겁다.

 

옆 테이블에서도 건너 테이블에서도 바로 앞자리에서도 갓 나온 시식 빵을 받아 들고 놀랍다는 듯 재잘재잘. 흥겹게 씹어대는 쩝쩝쩝 소리.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어떤 남자 손님이 함께 온 아버지에게 하는 말. 기다림은 지루하지만, 불평 소리 하나 없는 공간.


"마망 나왔어요." 

"캄파뉴 나왔어요."

 빵이 나왔음을 알리는 직원의 목소리에 객들은 분주해진다. 너도나도 웅성웅성.


"다음 분 이쪽으로 오시면 도와드릴게요."

신용카드 포스기에서는 돈이 쌓이는 틱틱틱 전자음이 멈추지 않는다.


나무 도마에서는 그칠 줄 모르는 빵가루를 쓸어내는 스그극 스그극 소리가 나면, 빵 진열대는 다양한 빵이 담긴 스테인리스 쟁반이 들어가며 스르륵 소리를 낸다. 셰프의 손에서 오븐 여닫는 퍽! 소리도 맞장구를 친다.


"마망 끝났어요."

직원의 외마디 외침에 아아! 하는 탄식이 객들의 입에서 터진다.

시식용 빵 크기 보소! 표고버섯빵

이곳은 주인장과 객이 함께 소리를 만든다.

객은 씹는 소리, 주인장은 빵 굽는 소리. 

조화롭다.

이 소리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주말 아침 늦잠 자는 아저씨를 깨우는 소리. 

어떤 음악 소리보다 기분 좋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함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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