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리쬐는 땡볕은 정말 뜨겁다. 조금이라도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 있다면 돌아가는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양재천 곳곳을 샅샅이 훑으며 걸어간다. 따라서 걷는 길이는 늘어나고 시간은 더 걸린다. 따가운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서 이 정도 불편함쯤은 일도 아니다. 피부 보호 차원에서 양재천 돌다리를 여러 번 건너서 나무가 있는 그늘 길로 들어간다. 참으로 번거로운 아침 출근길이다. 버스를 타거나 자동차로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며 출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궁색 맞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단하고 느린 길이 좋아지려고 한다.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이 길이 좋아서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내 몸을 맡기면 내 몸이 움직일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밀려오는 답답함이 자유로운 사색을 차단한다. 숨 막힐 듯 꽉 조이는 갑갑함에 머릿속은 짜증이라는 단어로만 가득 채워진 채 자유롭게 사색할 따위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 Wanderlust: A History of Walking]에서 저자는 걷기에 관한 이야기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한 대목을 예로 든다.
([오만과 편견]의 남주인공) 다아시 씨가 보기에도, 또 작가와 독자가 보기에도, 홀로 걷는다는 것은 독립의 표현이다. 홀로 걸을 때,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저택과 저택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적 영역을 벗어나서 생각할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넓고 고독한 세계로 들어선다. 걷는다는 것은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 모두를 뚜렷이 표현한다.
이렇듯, 걷기는 우리를 억압된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자 그럼 넓은 의미의 '우리'에서 더 좁은 '나'로 들어가 보자.
첫 번째, 나에게 신체적 자유는 무엇인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벗어나 이 골목 저 골목을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이다. 그로 인해 얻는 것은 제일 먼저는 모르던 길을 알게 되고, 다음으로 사물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허투루 보고 지나쳤던 수많은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걸 안다고 해서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거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나가는 재미는 그 사물과 다시 만났을 때 깨닫게 된다. 몰랐던 과거가 비로소 아는 현실로 바뀌는 경험에서 기쁜 희열을 맛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모름의 과거에서 앎의 현재로 탈바꿈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걷기는 신체적 자유를 보장해 주고 그 결과는 지식의 습득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두 번째, 정신적 자유는 나에게 무엇인가?
한 마디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다. 대중교통이나 자동차에 몸을 싣는 순간, 생각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속도가 빠를수록 사고의 시간은 줄어든다. 회사까지 빨리 갈 수 있는 이점은 분명히 버스나 자동차가 압도적으로 크다. 하지만 무언가 실타래처럼 꼬인 일을 풀기 위해서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말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지 않게 신경 써야 하고 자동차 운전의 경우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곳이 많다.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리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멀티가 되는 사람들이 참 부러울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멀티가 안 되니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그리하여 나는 걷는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생각하기. 걸으며 이것저것 상상하며 웃기도 한다. 또는 의도치 않은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걷는 내내 머릿속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된다. 이게 바로 정신적 자유가 아닐는지. 하루에 적게는 두 시간 많으면 네 시간까지 걷는다. 얼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다리는 아프고 허리가 쑤셔도 마음만은 가볍고 힘이 생기는 이유다.
오월 중순의 아침 햇볕을 피해 들어온 길에서 새로 짓고 있는 양재천 도서관 건물을 보았다. 이 동네 없었던 시설이 들어선다니 반갑다. 무엇보다도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공시설이라서. 이 동네에서 딱 한 가지 불만이었던 도서관. 그런 까닭에 다른 구나 경기도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곤 했다. 출판 산업에 도움이 되려면 책을 구매해서 읽어야 하지만 나는 주로 도서관을 이용한다. 내가 읽고 싶은 신간은 신청하면 도서관에서 구매해주기 때문에 최대한 이런 장점을 이용한다. 걷다가 발견한 미래에 들어설 도서관. 걷다 보니 도서관도 걷기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윗글을 읽은 독자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정신적 자유'다. 책을 읽으면 사색할 수 있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것처럼 걷기 또한 마찬가지다. 무한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내가 걸어서 얻는 아주 작은 소득이다. 예컨대 평탄한 길이 지루해질 때쯤 나타나는 징검다리는 안일했던 마음을 다잡게 해 준다. 발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조심 한 걸음씩 심혈을 기울여 발을 옮긴다. 그냥 걸을 때의 리듬과 전혀 다른 몸의 움직임에 내 마음도 덩달아 신이 나고, 어릴 때 징검다리 위를 통통통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렇듯 걷기는 내게 두 가지 자유를 주었다. 양재천에서 돌다리를 건너고 시원한 그늘을 찾아 나서는 신체적 자유이고, 조용하고 시원한 숲길을 걸으며 복잡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정신적 자유를 얻었다.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사색하는 시간. 나는 양재천에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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