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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파업 날, 나는 양재천에서 즐겁다. 걷는 아저씨, 28일

일상/하루하루

by gyaree 2019. 6. 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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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5 / 20,717보

 

 


 

버스 파업 날, 나는 양재천에서 즐겁다.

송파구 무료셔틀버스 임시운영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미안합니다."

 

나는 오늘 같은 날 걷는 보람을 느낀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어야 하는 날. 나는 마음이 홀가분하고 좋다. 오늘부터 버스 파업이 시작됐다. 몇몇 곳은 다행히도 잘 해결되어 파업을 면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다. 걷지 않은 모든 사람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도 걷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아침부터 고민이 되었을 터인데, 많은 이들이 짜증스럽던 날 나는 오히려 마음이 가뿐하다. 그리하여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버스가 다니지 않건 지하철이 다니지 않건 지금의 나에게는 상관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번 버스 파업으로 힘들어할 대중들 사이에 나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운 좋게도 그 그룹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됐다. 이게 다 걸어서 생긴 결과이다. 편리함을 벗어버리고 굳이 고단함을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기계에서 독립해 혼자가 되었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나 홀로 걷기. 그것에는 다양성이 존재하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걷기는 이제야 내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걷기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치르는 연례행사가 아닌 나의 흔한 일상으로 들어왔다.

 

정해진 정류장에서 매일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며, 같은 코스로 이루어지는 생활. 그런 생활 패턴에서는 다양성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다. 정해진 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의 틀 안에서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오랜 시간 고정되고 고착된 생활 규칙 아래에선 내가 스스로 결정할 것들이 많지 않다.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행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많지 않다. 내리거나 타거나 기껏해야 두 가지 정도.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어쩌면 이런 단순한 생활 패턴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얽히고 얽힌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건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다. 현대인의 생활은 갈수록 단순해지고 간편해져 간다. 복잡하고 선택할 항목이 많은 걸 꺼려서 일까. 예컨대 배달 앱만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다. 이 앱을 클릭하면 음식을 주문하는 일은 정말로 간편하고 단순하다. 치킨, 피자, 돈가스를 비롯해 중식, 일식, 한식, 양식까지 메뉴는 다양하지만, 선택과 주문은 아주 쉽다. 일일이 전단을 찾아 전화번호를 입력해 상대방과 통화하면서 내가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간편한 걸 원하며 복잡하고 선택지가 많은 걸 힘들어한다.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편하고 단순한 걸 싫어할 사람은 없으므로.

 

회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 업무가 편해지고 생산성이 향상되지만, 사람들은 그 자체가 싫다. 지금 자신이 보유한 기술로도 회사 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는 복잡한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힘들고 복잡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더 두려워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처럼 타거나 내리거나. 사지선다도 아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에 익숙하다. 괜한 고생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주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기존에 해왔던 대로 행하는 것. 이 자체가 이상할 건 전혀 없다.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해왔던 일을 단순화하고 모든 걸 편한 쪽으로 흘러가게 하므로. 오히려 이런 행동은 무리에서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나는 요즘 이런 단순하고 닫힌 공간에 갈증을 느낀다. 타거나 내리는 행동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걷기를 선택했다.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야 다양성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버스 안에서 혹은 지하철 안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위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희미한 바깥을 바라보거나 컴컴한 터널의 연속뿐이었다. 암흑이거나 블러 처리된 흐릿한 세상이 전부였다. 양재천으로 나가면서 내 인생에 많은 단어가 들어왔다. 그전에 없던 단어들. 생전 처음 알게 되는 국화과에 속하는 마거리트도 그렇고 나무 쑥갓도 그렇고 이팝나무, 조팝나무, 찔레꽃은 어떤가. 이렇게 생소하고 이쁜 단어가 그곳에는 가득했다. 간편하고 단순화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느리고 고단한 걷기를 선택한 결과는 나를 더 풍족하게 만든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내 몸을 개운하게 해주는 좋은 영양분이 매일매일 몸에 스며든다. 

 

회사에 도착하니 버스 파업에 대한 이야기들로 떠들썩했다. 너도나도 불편하다는 말은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 속에서 나는 혼자서 즐거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는 단지 힘들 뿐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거리트 / 양재천 영동 1교 가기 전
영동 5교 체육 시설 14개 기종 (좌) / 영동 5교 산책로 현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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