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다친 오른쪽 발목. 여기서 오래전이라 함은 4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참! 나도 오래 살았구나. 과거를 떠올리려면 몇십 년까지 되짚어봐야 하니. 아무튼 나는 초등학교 때 자주 오른쪽 발목을 접질리곤 했다. 걷다가도 삐걱! 달리다가도 삐걱! 멍하게 걷다가도 삐걱!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오른쪽 발목이었다. 걷다가 뚝! 하는가 동시에 비명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왼쪽 발목은 멀쩡한데 항상 오른쪽이 문제였다. 오른발을 다치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유독 오른쪽은 삐끗 그렸다. 발목에 뼈가 없는 인형처럼 쉽게 꺾였다. 발목이 꺾일 때의 아픔은 모두가 알 것이다. 다리가 부러질 듯한 고통. 그런데 신기한 건 조금 시간이 흐르면 괜찮다는 것. 다리 한번 삐끗한 것 때문에 병원을 찾아가거나 침을 맞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았으므로. 이렇게 내 오른발목은 삐걱삐걱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오른쪽 복숭아뼈가 왼쪽보다 커져 있다는 걸 알았다. 짝짝이 발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죽을 만큼 아프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고통은 일시적이었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다시 괜찮아지고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심각하지도 않았으므로. 무던하게도 내 오른발을 방치해둔 채 몇십 년이 지났다. 언젠가는 내 몸의 한 부분이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을 터인데, 지금의 걷기가 그렇다. 다리는 무엇보다도 지금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 것을. 살짝 다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느새 한 달, 꾸역꾸역 걸었다. 양재천에서 내 두 다리는 삼십 일을 버텨냈다. 양재천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기 며칠 전, 나는 땅에 주저앉았다. 일어설 수 없는 고통이 오른쪽 발목으로 파고들었다. 여지없이 약한 발목이 다시 접질리고 말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심하게 접질린 날이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시큰거리는 발목을 부여잡고 살살 주물러봐도 쉽사리 고통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런 상태로 절룩절룩하며 걸어 다녔다. 왜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아직도 오른쪽 발목이 그 옛날 어렸을 때의 쌩쌩한 발목이라고 착각했다. 옛날부터 그래 왔으니까 대수롭지 않겠거니 여겼다. 며칠이 지나도 고통이 가라앉지 않으면 병원에 가볼 요량으로 참았다. 이놈에 신기한 발목은 며칠 지나니 다시 괜찮아졌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발목을 살짝 비틀기라도 하면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뭐 걸을 때 별문제 없으니 상관하지 않았다. 왼쪽 복숭아뼈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도 하루에 많게는 4시간 넘게 걸은 날도 있다. 속에서는 곪아 터지고 있었는데 몸의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러다 양재천을 걷다가 다시 또 한 번 꺾이고 말았다. 두말할 필요 없이 오른쪽. 만약에 발과 다리를 연결하는 끈이나 기관이 있다면, 그 끈이 찌지직하고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이 다리에서 시작해 머리끝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이 상태로 계속 걸어도 괜찮을지 걱정이 앞섰다. 자칫하다가는 양재천 걷기도 끝내야 할 상황. 발목이 아프다는 사실보다 양재천 걷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사태가 더 가슴을 저미었다. 고심 끝에 병원 문을 두드렸다.
나: 선생님, 발목을 살짝 비틀어도 아파요. 보동 때는 괜찮은데요....
의사: 일단 엑스레이 찍어보죠.
의사: 많이 상했는데요. 이대로 놔두면 나중에 통증이 심해질 수도 있어요.
나: 헉! 정말요?
의사 :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여기 보세요. 왼쪽 다리하고 아주 다르죠. 심하게 다쳤는데요. 언제 다친 거예요?
나: 한두 달 전이요. 그리고 또 며칠 전에요. 어릴 때부터 오른쪽만 그랬어요. 선생님, 제가 하루에 15~18km 정도 걷는데, 걸어도 괜찮을까요?
의사: 아니요. 그렇게 많이 걸으면 안 됩니다. 지금 상태로는 안 돼요. 축구 선수들이 무릎이 좋을 거 같아요? 육상 선수들 무릎이 어떨 거 같아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좋지 않아요. 그 정도 걷는 건 무리예요. 정 걷고 싶다면 그냥 5km 정도만 걸으세요. 가볍게. 무리하면 안 됩니다. 차라리 자전거를 타세요.
나: 하아... 이제야 좀 걸어보려고 했는데.
나는 발목 보호대 처방만 받고 병원에서 나왔다. 이제 양재천 걷기도 끝인가. 이곳보다 걷기 좋은 곳은 없을뿐더러 한참 걷기에 재미가 붙었거늘. 이대로 포기해야 한다니 아쉽고 아쉽다. 오늘부로 걷기도 한 달 천하로 끝나고 마는 것인지.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게는 많은 깨달음과 즐거움을 선사했는데. 육체적인 문제로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왔다. 곪아 터진 상처를 방치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던 삶의 자세가 그러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이한 태도. 이런 자세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결국에는 좋지 않은 결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금 이렇게 걷기에 대한 짜릿한 맛을 알게 된 지 채 일 개월도 지나지 않았건만. 오래된 낡은 습관 때문에 내 걷기는 위기에 봉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중요한 순간, 몸이 따라주지 않는 불행은 어쩌면 인과응보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따릉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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