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걷기 전, 자전거도 후보 중 하나였다. 자전거보다 걷기를 먼저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자유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 빨리 가는 것도 물론 좋지만 느림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원해서였다. 버스에 있는 동안 유리창에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바깥세상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랄까. 조금 더 알고 싶은데 그럴 처지가 안돼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 항상 여운이 남은 채로 지나쳤던 많은 장소와 동네에 대한 호기심은 풀리지 않고 쌓여만 갔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공부와 비교한다면 수박 겉핥기 같은. 내면 깊은 곳은 알지도 못한 채, 대충대충 윤곽만 맛보는 느낌이랄까. 내가 걷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조금 더 관심을 주고 싶었다. 어떤 사물이 되었건 빨리빨리보다는 느릿느릿 천천히. 어찌 됐든 이 비루한 몸이 따라주지 못하니 차선책을 모색했다.
자전거.
양재천에 사람 다음 많은 건 자전거다. 발목이 또 꺾일까 두려워 일단 걷기는 일시 정지. 정지가 아니다. 잠시 일시 정지라는 것. 하루에 15km 이상 걷지 않을 뿐 아예 걷기를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집에 내 자전거가 없으니 서울시 따릉이밖에 없다. 자전거를 계속 탈지 어떨지 몰라 섣불리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시 따릉이 서비스가 이제 꽤 자리 잡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선택의 이유다. 나는 이렇게 공유 자전거의 세계로 들어왔다.
서울시 따릉이에 접속하거나 앱으로 가입한 후 이용권을 구매한다. 이용권은 정기권, 일일권, 단체권, 선물하기(정기권), 선물하기(일일권)로 나뉜다. 처음부터 정기권을 구매하지 말고 시험 삼아 일일권 2시간권 구매를 추천한다. 금액은 2,000원. 1시간권은 1,000원. 하루 타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자신이 있는 장소를 검색해서 자전거 대여 장소를 찾는다. 지도에서 대여소는 색깔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회색(0대), 빨간색(1~3대), 노란색(4~6대), 녹색(7대 이상), 검은색(임시 폐업) 이 중 가장 가까운 대여소로 간다.
지도에서 자신이 가까운 대여소를 클릭하면 대여가능 자전거가 숫자로 표시된다. 아래 대여 버튼을 클릭하고 들어간다. 또는 'QR코드대여' 아이콘을 눌러 자전거 거치대 오른쪽 QR코드 스티커를 카메라로 찍어 대여할 수도 있다.
대여 자전거 화면이 나타나면 대여할 자전거 번호를 선택하고 아래 '대여' 버튼을 클릭한다.
자전거 단말기 화면 아래 있는 버튼을 1.5초 정도 누르면 비밀번호 네 자리 입력 화면이 뜬다. 자신이 설정한 비밀번호 입력 후 오른쪽 잠금장치를 떼어낸다. 안장 높이를 자신의 키에 맞게 조절. 많은 사람이 안장 높이를 조정하지 않고 타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상당히 힘들고 특히 엉덩이 고통의 주범이다.
양재천 영동 4교 앞 생태 이동 통로 구간. 아침부터 시골에서 농사지을 때나 볼 수 있는 중장비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곳은 120m 생태 이동 구간을 조성해 모내기를 체험하는 장소다. 벼가 쑥쑥 자라 가을 추수가 기다려진다.
아침 자전거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바람이다. 걷기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바람을 가르는 맛. 바로 이 맛이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느낌이 좋아서 그럴지도. 양재천을 걷다가 오늘부터 자전거에 올라탔다. 왜냐고? 걷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으므로. 30도까지 올라갔던 기온이 아침에 뚝 떨어져 18도를 표시했다. 얇은 점퍼를 걸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걸을 때, 바람은 흘린 땀을 말려주기도 하고 시원하고 좋다.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바람의 세기는 선풍기로 치자면 미풍 다음으로 센 약풍 정도는 되어야 한다. 미약한 바람은 걷기에 시원한 효과를 주지 않는다. 반면에 자전거는 섭씨 20도를 넘지 않는 아침 기온에서도 충분히 시원하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바람을 가른다'라는 의미를 몸소 느낀 아침.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달려가니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공기가 내 얼굴에, 내 팔에, 착착 감기는 감촉에 시원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얼굴과 피부는 마음껏 바람의 기운을 들이마신다. 걷기와 비교하면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길 수는 없어도 기분을 좋게 하는 쾌감이 더해져 상쾌 지수는 크게 올라간다. 반면에 걷기 코스와 비교하면 회사까지 거리는 더 늘어났어도 체력적으로 본다면 자전거가 훨씬 수월한 편이다. 2.5km를 더 가는데도 몸의 고단함은 걷기에 반도 안 된다. 오르막길이 나타나면 다시 반대가 되는데 18kg이 넘는 자전거를 내 다리의 힘만으로는 쉽게 밀어 올리기 힘들다. 걸을 때보다 몇 곱절은 힘이 들어간다. 안타깝게도 따릉이는 고작 3단 기어라서 오르막길에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로지 다리의 근육만 필요할 뿐. 평평한 길에서는 바람을 가르지만 이런 오르막길에서는 내 다리 근육이 갈라진다. 끙차! 끙차! 앞바퀴가 흔들흔들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자전거 출근 첫날. 따릉이 대여하는데 조금 헤매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난 남자에게 도움받아 페달에 발을 올렸다. 내가 안 가본 길의 여정이 다시 시작됐다. 자전거 길은 걷기 코스와 다르다. 대치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져 탄천교를 건너가 가락동으로 이어진다. 처음 가는 길에 대한 설렘. 모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 내가 걸어서 처음 회사로 갔던 날이 떠오른다. 막다른 길에서 주춤거렸던 기억. 핸드폰으로 자전거 길을 보면서 달리지만, 이 길 또한 새로운 길. 또다시 막다른 길에서 멈춰 설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엔 괜찮다. 길이 없으면 다시 찾으면 되고 어차피 길은 뚫려 있으므로. 당황하지 말고 즐기면서 페달을 밟으면 그만이다. 또 어디서 험한 길이 나타난다 해도 상관없다. 알지 못하는 길은 한 번 가봐야 하므로. 페달을 밟아야 알 수 있다. 앞으로의 삶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페달을 힘차게 돌려야 한다. 끊어진 길인지 외길인지는 가봐야 아니까. 내리막길이 있는가 하면 오르막길, 울퉁불퉁 거친 길도 나타난다. 그래도 열심히 밟는다. 다리가 튼튼해지고 내 발목이 다시 튼튼해져 15km 아니 20km도 너끈히 걸을 수 있게.
2019/06/14 - [일상/하루하루] - 양재천 걷기는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걷는 아저씨, 30일
2019/06/12 - [일상/하루하루] - 양재천 밤길, 달은 말했다. 걷는 아저씨, 29일
2019/06/11 - [일상/하루하루] - 버스 파업 날, 나는 양재천에서 즐겁다. 걷는 아저씨, 28일
2019/06/10 - [일상/하루하루] - 양재천을 걸으며 얻는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 걷는 아저씨, 27일
|
|
양재천 오리 가족 (0) | 2021.01.04 |
---|---|
양재천 걷기는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걷는 아저씨, 30일 (0) | 2019.06.14 |
양재천 밤길, 달은 말했다. 걷는 아저씨, 29일 (0) | 2019.06.12 |
버스 파업 날, 나는 양재천에서 즐겁다. 걷는 아저씨, 28일 (0) | 2019.06.11 |
양재천을 걸으며 얻는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 걷는 아저씨, 27일 (0) | 2019.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