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시장 칼국수 냉면 골목 거제식당
회현역 5번 출구를 나오면 남대문 시장을 본격적으로 구경하기에 앞서 꼭 들리는 곳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시장 입구 바로 아래 10m 정도만 걸어 내려가면 왼쪽으로 좁은 골목이 시작된다. 두 사람이 나란히 편안하게 걷기도 힘든 좁은 골목. 이곳은 칼국수와 냉면, 보리밥을 파는 골목이다. 번듯한 식당을 기대했다간 큰코다친다. 밝은 대낮 바깥의 시장 길거리와는 달리 백열전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노란색 불빛으로 가득한 곳. 한낮에 찾아와도 저녁이 되어버린 느낌을 준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아줌마들의 호객 행위가 시작된다.
"이쪽으로 와봐요. 맛있고 싸."
"많이 줄게."
"여기 자리 있어요."
그렇다. 이곳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그러니 자리가 비는 대로 아줌마들의 목청은 터진다. 이미 가게는 손님으로 꽉 들어찼건만 호객의 외침은 멈추지 않는다.
"빈자리 있어요."
"어서 들어와요."
아유! 지나다닐 통로도 없어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렇게 비좁은 곳에서 먹을 생각을 하니 목이 켁 막히는 기분이다. 그것도 바로 뒤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입으로 빨아들여야 한다. 아줌마가 음식을 만드는 조리대는 아줌마 혼자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아주 협소한 공간이다. 그 앞으로 50센티 정도 넓이의 철판에 음식 재료가 놓여있고 국수 그릇 하나 얹어 놓을 공간이 손님들의 공간이다. 어떻게 이런 공간에서 음식을 팔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매번 골목 입구를 틀어막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떠오른다.
아내의 20년 단골집 / 거제식당
가격도 저렴
단골집
결혼 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오빠, 나 냉면 맛있게 하는데 아는데 거기 갈래?"
"거기 있잖아, 칼국수 시키면 냉면도 줘."
"정말 맛있어."
"가격도 싸고."
그렇게 따라간 곳이 남대문 시장 초입에 있는 거제식당. 골목 안으로 중간쯤 되는 곳에 있는 이 식당, 아니 식당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식당 문도 없고, 번듯한 테이블도 없으며, 편하고 안락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철제 의자에 앉아서 젓가락질을 하다 옆사람의 옆구리를 찌르기도 하는 곳. 칼국수, 냉면, 보리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 뒤에 서면 이 가게 대장처럼 보이는 아줌마가 아내를 보자 한 마디 던진다.
"왔나!"
"조금만 기다리라."
경상도 억양의 주인아줌마는 오래돼 곳곳이 찌그러진 큰 양은솥에 칼국수 국물을 끌이며 냉면 면발을 가위로 자르고, 동시에 아내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 바쁜 와중에 멀티태스킹을 한다. 이곳은 아내가 스무 살 때부터 다닌 단골집. 칼국수 두 그릇을 시키고 아줌마 바로 앞에 앉았다. 잠시 뒤 칼국수가 나오더니 정말로 비빔냉면이 따라 나온다. 볼품없이 중국집 단무지 그릇에 담아주는 냉면. 이쁜 그릇은 이런 식당과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다. 칼국수의 양도 남자가 먹기에 모자라지 않은데 덤으로 냉면까지 주니 일석이조다. 다리도 뻗지 못하고 옆사람과 다닥다닥 들러붙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맛과 양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주인아줌마와의 교감은 점심 한 끼 때우고 나오는 회사 근처의 그렇고 그런 식당과는 견줄 수 없는 친밀함까지 먹고 나온 만족감이 있다. 오랜만에 왔다고 그 많은 손님 중에 얼굴을 외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센스 있는 아줌마. 이런 묘미가 있어 단골집을 찾아오는 것 같다.
글로벌화 / 중국어와 일본어로 쓴 메뉴판
단골집을 가는 이유
'특정한 무당과 신도 관계를 맺고 있는 신도들'에서 유래한 단골. 또는 전라도에서는 세습 무녀를 일컫는 말이다. 예로부터 무당과 신도들은 정기적인 관계와 비정기적인 관계를 통해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정기적으로는 사월 초파일과 단오가 해당하며, 비정기적으로는 아프거나, 결혼하거나, 죽거나 했을 때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다가 힘들고 난처한 일에 처했을 때 자주 찾아가 고민 상담을 하고 난제를 풀어줌으로써 깊은 신뢰감을 쌓을 수 있는 관계. 아마도 '단골'이라는 말은 신뢰감으로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음양, 자석의 플러스 마이너스처럼 단골도 두 가지가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무당과 신도의 관계처럼 어느 한쪽만 있어서는 관계 유지가 되지 않는다. 찾아가는 사람은 단골, 단골이 찾아가는 장소 단골집. 단골집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식당이다. 사람에 따라선 옷가게일 수도 있고, 편의점이나 액세서리 판매점일 수도 있다. 대부분 먹는 것과 관련 있는 식당이지 않을까.
만약에 식당이 단골집이라면, 왜 그곳에 갈까? 아주 맛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식당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단골집엔 무언가 특별함이 있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식당이니까 맛이 단골집이 되는 제1의 조건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단골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기본적인 요소는 경제(돈)다. 무당을 찾아가 신과의 조우를 하는 것도 신도의 재물이 받쳐져야 가능하다. 이렇듯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 맛난 음식을 즐기는 것도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경제)이 기본 요소일 수는 있지만, 단골집이라 부를 만한 곳은 돈 이외의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단골의 대표적인 예라 말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항상 같은 사람들이다. 때론 새로운 인물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각자 나름의 고민들을 안고 늦은 밤 찾아온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는 것이 첫 번째 이유라면,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 또는 옆에 있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항상 먹던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우마이(맛있다)" "우마이"라 말한다. 단골집의 제1의 요소인 '맛'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 심야식당의 주인장 마스터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살갑게 느껴지지 않지만 찾아온 손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손님들의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면서도 단골을 하나하나 신경 쓰는 마스터.
아내와 처음 찾아간 정말 불편했던 시장 골목의 주인아줌마가 아내에게 보여준 살가운 몇 마디의 말. 심야식당의 주인장 마스터를 만난 느낌이었다. 분명한 것은 돈, 맛, 분위기, 청결함이 있다고 해서 단골집이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 가게와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곳이 '단골집'이지 않을까.
남대문 칼국수 골목
칼국수 면 반죽 | 보리밥에 올라가는 나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