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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아저씨, 12일

일상/하루하루

by gyaree 2019. 5.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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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9 / 21,472보

 


 

이곳에서 나는 객이다.

민들레 씨 눈밭

겨울엔 하늘에서 차가운 하얀 눈이 내리고 사월에는 벚나무에서 하얀 꽃눈이 하늘하늘 날린다. 겨울 눈이 가슴 설렌다면 봄의 눈은 마음이 풍요롭다. 그런데 이 사월에는 짜증스러운 눈발도 있다. 땅에서 하늘로 밀어 올리는 하얀 눈발. 섀도복싱을 하듯 얼굴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걸어간다. 혹시라도 눈에 들어갈까. 반갑지 않은 사월 끄트머리의 눈발. 멀쩡하던 코는 투명한 액체를 흘리고 입은 입대로 터져 나오는 재채기를 막지 못해 힘겹다. 에취! 에취! 에취! 온몸이 비틀릴 만큼 재채기는 쏟아진다. 간질간질한 눈은 긁어달라고 아우성. 눈과 코와 입이 괴로운 계절에 그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민들레 씨

 

2003년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민들레 씨의 99.5%는 모체에서 10미터 안에 떨어진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고작 0.5%의 민들레 씨가 나를 괴롭힌다니. 벚꽃도 이미 지고 이 봄에 하얀색은 더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스한 봄날을 풍요롭게 해 준 벚꽃잎의 새하얗던 속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사월이 다가오면 그 짧게 끝나버리는 며칠의 기대감은 부풀어 오른다. 벚꽃이 활짝 핀 날 허공에 흩날리는 꽃잎이 걸어가는 내 머리 위로 살포시 떨어지면 기분도 따라서 상쾌해진다. 녹지 않는 봄의 눈. 바닥에 떨어진 꽃잎 한 장 주어 손바닥에 얹어 놓고 검지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본다. 아! 이 부드러운 촉감이란. 생각지도 않은 즐거움에 자꾸만 문질러본다. 이 기쁨은 순식간에 끝 너 버리는데.  

 

출근길 양재천 산책로를 걸어간다. 영동 4교를 지나 영동 5교가 눈에 보인다. 바닥과 허공에서 하얀 물질들이 나를 뒤덮는다. 오른쪽 천변이 하얗게 물들어 보였다. 하얀 솜뭉치들이 녹색 풀들과 아스팔트 바닥 위에 깔려있다. 민들레 씨의 사체였다. 멀리 날아가지 못한 민들레 씨는 주변 풀숲을 하얗게 바꾸어 놓았고 아스팔트가 깔린 산책로 바닥까지 침범한 채 바람에 실려 훨훨 날아다녔다. 걷는 내내 내 몸을 감싸고 눈과 코와 입을 향해 돌진해오는 민들레 씨. 피하려 애쓰지만 소용없다. 셀 수 없는 솜뭉치들의 습격. 고개를 떨구고 걷는 속도를 올릴 수밖에 없다. 몸이 스스로 공손해지는 구간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하지 않아 양재천 걷기를 포기할 만큼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다만 이 계절, 이 공간을 지날 때면 고개를 숙이고 공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 이 구간만 지나면 싱그러운 봄꽃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잠시 괴로움은 접어둔다.

애기똥풀

나를 괴롭히는 봄의 하얀 솜뭉치.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봄의 민들레는 걷고 있는 나를 못살게 군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의 구역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복잡한 도심과 대중교통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온 내가 문제지 민들레 씨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곳에서 나는 주인이 아니라 객이다. 이 구역의 주인은 엄연히 나무이고 풀이며 꽃이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 이곳으로 들어와 놓고 되레 민들레 씨에 괜한 타박만 부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 꽃가루가 내 얼굴에, 눈에, 코에, 입에 들어온다 해도 꾹 참고 걸어간다. 나는 손님이니까.  

꽃가루 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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