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겠다는 의지 하나가 다이내믹한 일상을 만들어주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오늘은 걷기 어려울 듯. 어제 기상 예보에 오늘은 비가 내린다고 했다. 바깥에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가는지 궁금했다. 베란다 난간에는 이미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일기예보는 적중했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다만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다. 비가 내리면 언제든지 펼치려고 손에 꼭 쥐고서 걸어간다. 버스를 타고 갈까? 걸어갈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의 뇌는 왜 이런지. 이런 일에도 뇌가 간단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걸어갈 것이냐, 타고 갈 것이냐를 놓고 결정하지 못한다. 우산을 들고 가자니 계속 내릴 비는 아니라고 했고, 안 쓰고 회사까지 간다면 온몸이 축축할 걸 예상하니 이것도 싫고. 두 가지 중 하나 선택하는 게 참으로 어렵다. 이 별것도 아닌 것을.
확답을 주지 않는 나의 뇌 대신 손을 믿어보기로 했다. 자! 이제 마지막 결정이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손을 뻗는다. 손바닥이 젖는다면 오늘은 버스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다. 손이 젖는다면 걷는 거고. 하늘은 뿌옇고 흐리지만, 손은 젖지 않았다. 나는 눈과 뇌보다 촉감을 따랐다. 이게 다 나이 든 탓일까. 확실히 쏟아지는 비는 보여도 내리는 둥 마는 둥 하는 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이 창밖으로 나간다. 그다음 결정할 문제는 우산이다. 우산을 챙길 것이냐 말 것이냐. 아침에 조금 내리다가 그친다고 했으니 일기 예보를 믿어보기로 했다. 모든 결정은 끝났다.
오늘은 걷는다, 우산 없이.
불안한 마음을 안고 걷는데 한두 방울 떨어진다. 머리를 적시는 느낌이 든다. 앞에 걷던 사람들이 하나둘 씩 우산을 펼쳤다.
'이대로 걸을까? 조금 걷다 보면 그치겠지. 아니야!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잖아. 자칫하다가는 홀딱 젖는다고. 빨리 결정해! 어떻게 할 건지.'
다시 갈팡질팡이 시작된다. 그래도 걸어가겠다는 다리의 의지를 뇌는 가만두지 않는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접고 발길을 돌려 버스 길로 향했다. 좁은 도로는 역시 자동차 주차장이 되어 있다. 내 눈앞에 버스가 보이는데도 정류장까지 오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릴 만큼 사람들의 바쁜 하루는 시작됐다. 어디론가 먹고살기 위해 집을 나서는 사람들. 나 또한 그중 하나다. 더 밝은 미래를 한 움큼 집어서 돌아오기 위해 아침마다 집을 나선다. 가벼웠던 아침 발걸음. 내리는 비에 다시 무거워진다.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던 버스에 몸을 싣는다. 비가 내리는 날은 유난히 버스 안이 꽉 찬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다리를 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바로 옆에 붙은 여자의 발에서 힘을 주는 느낌이 내 신발에 전달된다. 여자의 발은 내 쪽으로 밀고 있다. 조금 더 발을 벌려 편하게 서고 싶다는 뜻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서로서로가 좁은 공간에서 이렇게 내 두 다리 사이도 가까워진다. 바깥의 습한 공기까지 더해져 불쾌지수는 점점 올라가고. 이런 와중에 너무도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아마도 내 나이쯤 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노래였다. 반갑기도 하고 내가 이 노래를 안다는 것이 꽤나 긴 세월을 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핸드폰에서 낭랑하게 울린 전화벨. 그 소리는 참으로 우렁차게 귀로 들어왔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양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할아버지의 핸드폰은 아직도 1970년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나만 그 벨 소리를 들었을까. 아니 내 귀에만 들어오기에는 너무도 데시벨이 큰 소리였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알지 못하거나 타인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자들이거나. 왠지 나만 아는 것 같은 느낌. 내 나이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할아버지의 벨 소리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갑갑함과 불쾌감이 밀려오던 찰나에 속에서는 '피식' 하고 웃음이 올라왔으므로.
버스에서 내렸다. 다시 걷기 위해.
비가 그친 듯했다. 여차하면 비를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버스가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걷기도 잠시. 다시 후드득. 장난꾸러기 같은 하늘. 다시 버스에 올라타라고 떠민다.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지금은 초등학교. 여자 아이들의 고무줄을 끊으며 도망치곤 했던 장난꾸러기가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던 고무줄놀이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고무줄을 끊고 달아난 개구쟁이 녀석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쫓겨 다녔다. 그 시절 고무줄을 끊던 소년처럼 하늘도 내게 장난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걸으면 비를 내리고 잠시 피했다가 다시 걸으면 또다시 비를 뿌리니. 줄 끊고 도망치는 개구쟁이와 다를 게 무언가. 그런 개구쟁이는 따라가서 잡으면 그만이지만 하늘은 따라갈 수 없는 존재다. 하늘에 대고 소리쳐봐야 소용없는 일. 내 발걸음에 딴지를 거는 하늘. 저 멀리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셔츠에도 조금씩 물기가 스며들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안도감. 바로 앞에 비를 피할 수 있는 목표가 보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걸으며 또 한 가지를 깨닫는다. 내 앞에 목표가 있다면 불안함은 저 멀리 사라지고 오히려 하고자 하는 의지가 타오른다는 것.
지금 내가 걷는 목적은 딱 한 가지다.
꾸준함.
꾸준한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다.
내게는 꾸준함이 부족했다.
무언가를 꾸준하게 하는 행위.
적어도 걷기만이라도.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피해서 비 오는 날씨에 걷다가 버스에 탔다가 다시 걷다가 또다시 버스에 몸을 싣는 이상했던 하루.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말해도 좋다. 그래도 내게는 아주 다이내믹한 하루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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