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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아저씨, 11일

일상/하루하루

by gyaree 2019. 5. 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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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8 / 16,079보

 

 

걷기는 과거의 문을 연다.

과천 방향 양재천

평소와 다르게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골랐다. 집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갈 것이냐 오른쪽으로 갈 것이냐를 놓고 잠시 주춤. 회사로 가려면 왼쪽. 일요일인 오늘은 굳이 몸을 왼쪽으로 틀어야 할 명분이 없다. 살아내려고 지겹도록 한 방향으로만 돌렸던 몸. 삶에서 필요한 걸 얻기 위해 무던히도 한 방향으로만 몸을 움직였다. 비탈길을 걷듯이 항상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이것이 순리대로 사는 인생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아침에는 잠에서 깨어나야 하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아침 끼니를 챙겨 먹고. 손목시계를 왼쪽 손목에 차고. 지갑을 왼쪽 안쪽 주머니에 넣고. 현관문을 나선다. 발은 정류장으로 향하고 내가 탈 버스 번호가 언제쯤 보일지 먼 곳을 쳐다본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자꾸만 다른 번호만 휙휙 지나가 버리고. 여느 때와 똑같은 따분하고 지루한 하루가 시작된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하지만 이렇게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몸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 때로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별 것 아니지만 양재천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무언가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겠다는 호기심.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몸부림치는 날에서는 느끼지 못할 거리를 찾아 나선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의 섭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람은 역행할 수도 있는 동물이다. 분수처럼 아래에서 위로 물을 쏘아 올릴 수도 있고. 중력을 무시한 채 고층 빌딩을 맨몸을 오르는 이도 있다. 그것에 비하면 내 다리 하나쯤 돌리는 행위는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다.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양재천 역행 길에 나섰다. 왼쪽으로 틀던 다리를 과천 방향 오른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누구처럼 목숨을 내놓고 위험한 고층 빌딩을 오르는 굳센 투지 따위는 필요 없다. 단지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에 불과하니까.

 

역시 길은 걸어봐야 안다. 눈에 보였던 길과 걸어본 길은 천지 차이다. 이 길은 탄천으로 이어지는 양재천 길과 달랐다. 외길이다. 보통은 양재천이 흐르고 그 양옆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만, 과천으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란 걸 알았다. 왠지 걷는 내내 편도 티켓만 사서 떠나는 여행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돈이 없었던 20대 초반 편도 비행기 표만 가지고 떠난 일본 유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돈이 없어 한국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공부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눌러 있기로. 그 시절 내 주변 친구 중 방학 때면 한국으로 돌아가 빠진 살을 다시 찌우고 돌아오는 애들이 여럿 있었다. 애초에 편도 티켓이었던 나와는 다른 부류였다. 편도 비행기 표도 겨우겨우 구매해 떠났던 '편도 티켓 유학'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하며 떠났던 외길.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외길에서, 문득 젊은 날의 한 때가 떠오른다.

 

이처럼 걷기는 내 의식이 깊숙이 묻어놓은 과거의 문을 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걸으면 걸을수록 옛일이 다시금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안심번호를 아시나요?

과천 별양동 안심번호 1번 / 과천 끝 서울이 시작되는 지점 34

아침에 나 홀로 양재천 길을 걷다 보면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앞뒤로 대략 100미터도 넘게 나 혼자일 때가 많은데. 만약에 이 거리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갑자기 걷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다면 답은 한 가지다. 119. 119로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 있는 위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어디쯤 와있는지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난감하다. 물론 산책로 바닥에 거리를 표시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만, 과천 방향 길은 조금 더 친절하다. 

 

안심번호 1 긴급신고 112, 안심번호 34 긴급신고 112

 

위와 같이 산책로 바닥에 친절하게 쓰여 있다. 긴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112로 전화를 걸어 안심번호를 말하면 구조대가 신고자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길을 걸으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걷다가 위급한 상황이 생겨도 안심할 수 있는 산책로. 과천의 양재천 길은 달랐다. 사람들의 안전을 꼼꼼히 챙기며 배려하는 시스템이 마음에 든다.   

 


 

양재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 왜가리

경기 과천시 과천동 555-3 / 왜가리

양재천에서 가장 크고 멋진 새는 왜가리다. 주로 과천 방향으로 올라가는 선바위역 근처 양재천 상류에 나타나며 때에 따라서는 영동 3교, 4교 근처에 나타나기도 한다. 일견 두루미로 보이지만 깃털에 회색빛이 돌면 왜가리다. 얕은 양재천에 긴 다리로 걸어 다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걸을 때 일정한 리듬을 섞어 S자로 구부러지는 긴 목은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다. 따라서 걷다가 이 녀석을 만나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도심에서 좀처럼 볼 수 없기에 양재천을 걸으며 얻는 수확 중 하나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자세는 작은 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고 걷다가 날개를 펴고 날아갈 때는 정말로 수려하다. 

양재천 왜가리

 


 

 

 

손만 넣어도 잡힐 듯

과천 별양동 / 잉어

과천역 별양동 근처에 다다르면 정말로 손만 담가도 잉어를 잡을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깊이라고 해봐야 고작 20여센치 정도 물에 잉어가 가득하다. 정확한 어종은 확인할 수 없지만 30센티가 넘는 잉어가 천 안에 깔려 있다. 주둥이를 물 밖으로 내밀고 버금 버금 공기를 들이마시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에서 노니는 잉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은 양재천에서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잉어 한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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