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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무지개 다리 추억은 사라졌다. 걷는 아저씨, 13일

일상/하루하루

by gyaree 2019. 5. 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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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30 / 25,527보


 

 

무지개 다리 추억은 사라졌다.

사라진 무지개 다리

지금 양재천은 파헤쳐지기도 하고 심어지고 자라기도 한다. 파헤친다는 건 말 그대로 무언가 있던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오랜 시간을 두고 쌓아왔던 행복한 추억이 깡그리 사라진다는 뜻이다. 사라진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좋은 의미로 다가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곳엔 커다란 둥근 아치 모양의 돌다리가 있던 자리다. 일명 무지개 다리. 양재천에 몇 안 되는 보도교였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건너 양재 시민의 숲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숲의 좋은 공기를 마시러 들어가는 길. 지친 몸에 맑은 공기와 좋은 향기를 공급받기 위해 건너가는 다리였다. 한 마디로 치유의 장소로  이어주는 돌다리였다. 둥그런 아치 모양의 돌길을 걸어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평평하고 밋밋한 길에서 맛볼 수 없는 울퉁불퉁한 곡선 길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곳.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디디며 걷는 길은 마치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별 B612를 발로 돌리며 걷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내가 본 양재천 보도교 중에서 가장 이쁜 다리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어느 날, 다리에 장막이 덧씌워지더니 다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곳은 흙먼지 자욱한 장막으로 덮여 있었고 다리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그 주변으로 대형 덤프트럭이 오가더니 며칠도 지나지 않아 장막도 완전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다리에 뭔가 마음이 허전했다. 이 세상에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태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순간이었다. 그 거대한 다리는 정말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상반신을 아래로 구부려 양재천을 헤엄치는 커다란 잉어도 구경했다. 달리던 자전거에 내려 시원한 경치도 감상했었다. 봄이면 벚꽃 구경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던 다리. 일상에서 편안하게 누렸던 기쁨과 안식이 한둘씩 파헤쳐진다.

 

그 사람들은 알까?

 

내가 이 다리 위에서 하염없이 내려다본 헤엄치던 잉어를.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본 양재천의 경치를. 개발이라는 목적하에 무너지는 따스했던 감정들, 파헤쳐짐으로써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이곳을 거닐 때면 헛헛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 돌다리. 터벅터벅 걸으며 다리가 있던 곳을 바라본다. 다리가 사라진 허공에 수많은 사람이 건너가던 모습이 오버랩되어 아른거린다. 이제는 그 모습을 내 눈이 아닌 머릿속 어딘가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더는 발바닥에 닿는 돌의 감촉을 느낄 수 없을뿐더러 연인들의 다정한 셀프 카메라 찍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그곳은 흙바닥으로 변해버렸다. 덤프트럭에서 휘날리는 흙먼지를 뚫고 다리가 있던 곳을 지나간다. 걸음은 빨라진다. 다리를 쳐다보며 즐기며 천천히 걸었던 곳에서 나도 모르게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까. 점점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한참을 빨리 걷다가 서서히 내 걸음 속도로 돌아왔다. 

 

내 발이 멈추었다.

 

시선이 노란색 테두리 안에 4색으로 쓰인 '꽃심기' 글자에 멈춰 섰다. 이 팻말 옆으로 작은 화분에 심어놓은 봄꽃들이 플랫폼에 작은 기차처럼 보였다. 사라진 다리 때문에 파헤쳐졌던 나의 감정에 노란 팻말 하나가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파헤치고 있는데 여기 이곳은 아름다운 생명체를 심으려고 하니. 아마도 아이들을 데려와 꽃을 심는 장소인 듯했다. 한편에서는 파헤쳐지고 사라지지만 또 한 곳에서는 태어나는 현장. "고마워 이런 자리에 있어 줘서." 사라져 버린 다리에 대한 아쉬움을 대변하듯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특히나 사오월 봄의 꽃들을 보면 눈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긴 듯이 투명하고 더 화사해지는 기분이 든다. 즐거운 위안이 되는 형형색색의 정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쌓인 피로감은 날아간다. 꽃을 심으려고 골을 파놓은 자리마다 생기가 전해졌다.

 

지금 양재천은 전쟁 중이다. 커다란 중장비들이 땅을 파고 땅 깊숙이 철심을 뚜드려 박고 사람이 다니던 길을 막으며 장막을 친다. 사람들이 행복한 추억을 쌓았던 장소를 부수고 걷어내고 파헤친다. 나도 그러하듯 다른 사람도 또 다른 곳을 찾아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아침마다 시끌시끌한 양재천 길. 이런 전쟁 통이라도 새롭게 돋아나는 생명도 있으니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다.    

꽃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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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추(흰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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